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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대통령 당선을 예견하면서 -

먼저 이 책은 출간 된 해인 2008년, 저자인 폴 크루그먼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이 책의 가치를 드높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흑인 후보가 당선됩니다. 이 세 사건은 심상치 않은 세계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경제학자로서 폴 크루그먼은 민주당 대통령 당선을 ‘가능성’ 정도로 완곡하게 말하지만, 글의 내용을 보면 거의 확신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수주의 정치냐, 진보주의 정치냐에 따라 국가의 안정과 민생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그 서두에서 밝히고, 결론에서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진보주의 운동이 성공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미국에서의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오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정치가 국민을 잘 먹이고 인간답게 잘 살게 하기 위한 길이라고 볼 때, 경제적 불평등은 최악의 정치결과 아니겠어요. 그러면 그 원인이 경제 그 자체에 있느냐, 아니면 정치적 환경에 있느냐 하는 것을 캐는 것이 크루그먼의 과제였던 것입니다.

‘기술발달과 세계화 같은 비인간적인 힘에 의해 미국 소득분배 격차가 심해지면서 극소수 엘리트집단이 생기고 공화당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한다, 그리고 그들 엘리트집단은 소수이지만 공화당 선거를 도울만한 능력과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경제가 정치를 지배했다...?’

폴 크루그먼은 보통의 경제학 논리의 인과관계를 결국은 뒤집습니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소득격차를 확대했다는 것입니다. 공화당을 장악한 급진적인 우익세력이 노조운동을 공격하면서 단체교섭능력을 약화시켰고, 경영진의 연봉을 제한을 없앴으며,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줄이고, 또 온갖 방법으로 불평등을 확대시킨 것입니다. 폴 크루그먼은 책의 전편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 이루어졌고, 경제적 불평등이 그 뒤를 따랐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미국에 전시금융통제를 통해 경제적 평등을 가까스로 이룩한 루스벨트 이후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보수주의자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먹혔습니다. 인종주의자들인 미국의 남부가 공화당을 지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보수주의 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 로날드 레이건입니다. 그는 인종차별, 반공주의, 복지비용을 빼내기 위한 부자과세 공격 등으로 자기를 부자라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습니다. 이후 공화당은 부시의 재당선까지 영화를 누리는 듯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보수주의 운동의 마지막 축제였습니다.

크루그먼은 소수 엘리트를 위한 전략만을 펼쳤던 보수주의자들이 결국은 선거에서 패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무능과 속임수가 그들의 베일을 벗겨내 버린 거지요. 그리고 미국의 유권자들은 백인이 점점 더 줄어들고, 미국이 점점 덜 인종주의적으로 돼가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이길 공산이 갈수록 적어집니다.

폴 크루그먼은 연구와 분석과 희망과 믿음으로 민주당 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바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 정치와 경제의 흐름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폴 크루그먼은 더 새로운 민주당 정부는 클린턴 정부 때보다 이념적으로 훨씬 더 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예견하면서도, 이번에도 클린턴 때처럼 흐리멍텅하고 무계획에 야리까리하게 논다면 진보주의 운동가들이 배신감을 느낄 거라는 경고를 합니다.

180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와 사회 문화의 변화를 구조적으로 연구하면서 진보주의 운동과 보수주의 운동의 역사적인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한 사람으로 폴 크루그먼이 본 것과, 또 앞으로의 전망을 과학적 사실로서 믿지 않을 수가 없어요.


- 미래의 미국이 취해야 할 새로운 정책 -

아직 대통령 선거 전이지만, 그는 소수 기득권층만을 위한 전략을 펼쳤던 공화당 정부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불가결한 정책을 과감하게 제시합니다.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나라 미국의 최첨단 이슈는 의료보험입니다. 폴 크루그먼이 제시한 새로운 시대의 정책을 단적으로 말하면, 사회안전망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진보주의적 제도, 즉 새로운 뉴딜 정책입니다. 무엇보다 21세기형 사회보장제도의 시작은 의료보험제도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것이 레이건 이후 강력하게 추진했던 부유층을 위한 감세제도 폐지입니다.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극심한 불평등이 사회와 민주주의를 파괴시키기 때문에 크루그먼은 감세제도를 폐지시켜 확보된 세수로 불평등을 막는 사회안전망을 어느 정도는,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크루그먼은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답니다. 퇴직자 연금이나 실업보험이 주가 되는 사회보장법에 국민의료보험제도를 포함시키면 된다는데요. 너무 비싼 의료비용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불안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요.

(여기에서 서구 부유한 자본주의 나라가운데 유일하게 왜 미국이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안 되어 있나 하는 기가 막힌 이유가 있는데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요. 흑인을 인간이 아닌 노예로 부렸던 백인 부자들이 민권운동에 반발하면서 돈과 조직으로 레이건 같은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을 지원했기 때문이지요. 공화당과 부유층은 실제로는 흑인을 털끝만큼도 국민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세금을 투입해 의료보험을 전국민에게 보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으니 이제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데, 바로 최소한의 해결책이라는 게 소득의 극심한 불균형을 부유층 과세를 통해 해소하면서 저소득층에 의료혜택을 주자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안이 있는데, 감세법안을 연장하지만 않는다면 연간 1,400억 달러의 세금을 확보할 수 있고 이 정도면 국민의료보험을 구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다국적기업들이 세제상의 허점을 이용해 안 내는 연간 500억 달러의 세금은 가난 구제나 내 집 마련을 돕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비용으로 충당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이런 부자감세제도 폐지와 문제 세제를 없애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크루그먼이 과감히 제안하는 것은 아예 세금을 인상하는 것입니다.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미국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낮고, 또한 유럽 국가들보다도 훨씬 낮으니 그런 근거들로써도 해볼만 하다는 것이지요.

크루그먼이 매번 제시하는 통계 자료나 숫자를 열거할 것이 없이 제가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미국이 이렇게 해도 그 어느 나라보다 소득세율이나 재산세율, 사회보장세율과 부가세율도 낮고, 사회복지비용도 낮아요. 미국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자꾸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라는 것이 점차 사라져가고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이익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기 때문에- 늘어난 세수로 중하위 소득 가정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 운명론을 바꾼 책 -

참, 불을 보듯 명확하고, 칼로 긋듯 정확하게 해결의 방안을 제시받았다는 것이 이토록 희열일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가 결코 평면적인 구조가 아니어서 단선적인 해결책은 없을뿐더러, 진즉 다층적, 다각적 구조를 넘어 분석이나 대안이 불가능한 카오스 상태로 돌아버린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양육강식, 아예 야만의 시대로 인간에게 먹히기나 환경재앙으로 공멸되기로나 종말의 시점은 비슷하다고 절망해버린 지금이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 이상이거나 몽상이냐고 이젠 나 자신에게 되물어야 하는 때가 왔어요. 그러고 보니 더욱 웃기는 것은 제가 이 세상에서 한 이십 년 더 산 결과로써 사회 불평등에 체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른 살 때의 나의 사고는 분명 이렇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 때 이런 사상을 이상이다 몽상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진정으로 혐오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카오스라든가, 야만의 시대에서 굶어죽으나 아파 죽으나 환경재앙으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는 그런 말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부터 어쩌면 나의 정서나 인식, 그리고 아주 미묘한 부분에서의 감성이 일치되는가 참으로 큰 희열과 감동을 받습니다. 이 책의 첫 두 장(障)을 읽고서, 우리 아이들부터 해서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이 책에 대해 열변을 토했습니다. 한 진보주의 경제학자가 말한 지식정보적 차원의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이 나의 최근까지의 운명론과 세계관을 뒤바꾸었노라고 말이지요.

염세적이면서도 운명론적인 세계관 -인간의 본성은 수천 년이 흘러도 어쩔 수 없기에 인간이 사는 세상은 고해일 수밖에 없고, 결국 죽음으로 이 꼴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세계관이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내면화되었더라고 말했습니다. 인간들 안에 참다운 평화나 정의가 있지 않기에, 힘을 잡으면 결국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인간 본성의 악하고 약한 면에 내가 체념하고 굴복했었노라고.

그런데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힘이 이길 수도 있고, (그런 희망사항적인 가치관이나 철학에 의해서라기보다)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서도- 한 예로 백인 유권자 수가 줄어든다든가- 진보주의 운동이 빛을 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폴 크루그먼의 말을 저는 복음처럼 퍼뜨렸던 것입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양심적인 지식인 폴 크루그먼이 그렇게 분석했고 정책까지 제시했으니까, 그리고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그 책을 정독했고 그 책의 가치를 인정했고, 이제 유리동물원처럼 다 속이 드러나 보이는 미국은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기로에 서 있게 되었으니까.

제 독서 습관 가운데 최근에 생긴 것은, 특히 경제관련 서적을 읽을 때 그 책이 아주 재미있는 책이라면 더욱, 앞 장과 뒤 장을 동시에 읽는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알고 싶은 조급함 때문입니다. 정치 변화까지 경제 변화와 맞춰 꿰뚫을 수 있는 이 뛰어나고 해밝은 사람은 정치인의 의식과 정당의 속성, 인간의 심리까지 다 파악하면서 미국 사회의 변화와 움직임을 통찰합니다. 처음에 말했듯이 크루그먼은 이미 진보주의 정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을 확신하면서, 결론에 미국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치와 방향과 정책을 분명한 어조로 제시합니다. 그래서 제가 신이 났던 것입니다.

이후, 3장을 읽으면서는 저는, ‘대압착’이라고 표현할 만큼 경제공황기 이후 소득격차의 급격한 감소에 대한 “대압착을 둘러싼 이야기는 운명론에 대해 강력한 해독제 역할을 했다” 라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제가 지난 그 몇 일 동안 “내 운명론이 뒤바뀌었다” 라고 말하고 다녔던 바로 그런 상태를 크루그먼이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4장에서 저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크루그먼이 뉴딜 정책을 실시한 용감한 리더 루스벨트가 1936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했던 연설을 들어 지금의 진보주의자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예의바른가를 놀라워하는 대목에서입니다.

“요새 최저임금 인상 또는 부유층의 세금안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으며 계급투쟁을 선포하려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막대한 부를 죄인취급하며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루스벨트의 연설은 한 인간의 양심과 정치인의 사명에 입각한 목숨을 내놓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보수기득권층의 유래없는 집중 공격을 받은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제가 그 한 달 전 아카데미의 종부세 관련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내가 종부세를 지지하는 것은 무산계급들의 혁명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에 대한 원한이 있는 사람이어서도 아닙니다.”

저는 부자과세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종부세 폐지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으로 토론을 하면서도 마치 내가 부유층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거나 여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그런 말들을 했던 것입니다. 크루그먼과 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였습니다. 크루그먼의 그 말에 제 태도가 바로 이거였구나하고 깨달았을 뿐만이 아니라 얼음물을 확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르게 말하다가는 언젠가 더 강력한 반대논리를 만나면 꼬리를 내릴 지도 모를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 진보주의 정치로 평등한 사회를 -

크루그먼은 감세조치 폐지, 국민의료보험제도 구축, 그리고 다음 단계로 조세제도에 누진세 적용 이러한 정책으로 중하위 계층에 더 많은 혜택을 줌으로써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조세제도는 혁명과도 같은데, 이러한 정책들이 과연 먹혀들어갈까요? 크루그먼은 전문성으로는 경제학자이지만 인간성으로는 진보주의자입니다. 그는 아주 어려운 작업이 될 거라고 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불가능이 없다고 예견합니다.

그의 분석은 경제, 정치 사회의 변화에 두루 통합니다. 부시가 막 재선되었을 때는 사회보장제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았지만, 지금(‘07. 말~’08. 초)는 국민의료보험제 도입도 낙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 역사로 보나, 앞에 말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로 보나 불가능하지 않다는 거예요.

진보주의 운동을 대변한 민주당이 정치를 잘만 하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랍니다. 크루그먼은 민주당의 진보주의적 안건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고, 보수주의 운동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뒤졌는지 경악을 합니다. 안건이 없는 공화당의 그들, 그들은 누가 더 레이건을 많이 팔아먹는지, 그리고 고문을 가장 잘 즐기는 사람은 누구인지 경쟁하는 것만 같다니,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보수정당의 행태는 별반 차이가 없긴 합니다.

사실, 저는 오랜 세월 국가나 지자체의 보수적이고 과거회귀적인 정책에 매번 반대론자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말해왔는데, 그때마다 놀란 것이 어쩌면 반동적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논리가 그토록 없는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들의 논리는 다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정부나 단체장이 하는 일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실 정부나 단체장을 믿는다기보다는 그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개인적 혜택, 그리고 기득권 수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거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아주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인 것처럼 믿고 있더라니까요.

지난 몇 년 사이에 우익논객이라는 말이 우리나라 정치의 디스코스에 등장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 보수주의자들은 입으로는 궤변을 말하고 조직과 돈으로써 권력을 확보해왔지만, 대표적으로 이문열 같은 글쟁이의 활약으로 궤변이 ‘논리’로 격상된 면이 있습니다. 단순히 주술관계가 맞거나 휘황찬란한 문체에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것을 논리라고 불러주는 것이라면 그들에게도 논리가 있긴 하지요.

그러나, “교육에서 경쟁이 왜 필요하냐, 김연아나 박태환이 경쟁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으면 어떻게 세계최고가 되었겠느냐” 하는 요즘 학교에 배포된 홍보물 속의 논리라면 그들은 여전히 민주주의 토론 사회에서 무논리의 두뇌로 돈과 조직으로, 그리고 사람들의 나약함을 이용하는 부도덕함과 기만성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과 그들에 부역하는 세력의 집합일 따름이지요. ‘우익논객’이라는 말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크루그먼이 보수주의자들의 여전한 실력을 말한 것을 보니 정말 얼마나 통쾌하고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미국에서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진보주의 정당의 대통령이 당선된 거요. 조직적으로 기금을 확보하고, 획일적으로 견해를 통일시켜 암묵적인 충성으로 조폭처럼 똘똘 뭉친 보수주의자들이 그와는 정반대의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패배한 것입니다.

진보주의 운동으로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것은 돈이 아닌 철학인데 이런 철학을 가진 미국인들이 불평등을 줄이고 민주주의 원칙을 수호하려는 운동을 지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크루그먼은 현실정치에 대한 한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이해를 말합니다.

“진보주의 운동은 보수주의에 맞서지 않거나,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나 이라크 증원군 파병에 굴복한 민주당의원에 대한 극악무도한 비판은 삼가고 있다.”

사실 진보주의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는 처음입니다. 저는 정당 생활을 했고 정당정치를 지향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국민의 대표적인 정치행위는 투표입니다. 아무리 민주당이 트릿하고 야리끼리하고 비겁해 보여도 민주당을 찍어야지 공화당(한나라당)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학자’로부터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민주당 정치인들이 눈물바람에 개과천선을 하지 못한다면 권력에 취하고 감정이 메마른 배은망덕한 종족들인 거지요.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당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고 싶은 말입니다.


- 미국은 변하는데 우리나라는 -

새로운 미국이 나아갈 길은 부자과세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구구절절,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민주당은 간신히 만들어 놓은 종부세도 유지시키지 못합니다.

종부세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경제전문가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의 말을 들으면, 보수꼴통 한나라당에 맞서는 야당이면서 소위 진보적인 정당이라는 민주당이 사회정의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전혀 개념이 없는 인텔리 기득권층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리 없고 맨 부자들뿐이니, 집만 있고(집은 20억짜리입니다) 수입은 없어 세금을 못내겠다는 사람들, 세금을 내는 것은 그래도 부자들인데 그들을 계속 죄인처럼 몰아부칠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사람들 불만에 솔깃하고 거기에 맞춘 것을 대안이라고 내놓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쩌다가 민주당에 발을 들여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 그 자신이나 자기가 속했던 정당의 본질을 잘 꿰뚫은 것이긴 합니다. 그동안 군부독재투쟁만 정치인 줄 알고 해오다가 민주적 선거라는 판이 비로소 벌여지니까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조직과 돈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전략을 채택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크루그먼은 미국의 민주당이 어떻게 밀렸는지, 마지막으로 클린턴 때 어떻게 우왕자왕했는지 말하지만, 그럼에도 민주당이 진보주의 운동을 대변한 당으로 의식 있는 당이라고 강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저도 지난 몇 년 동안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역설해왔지 않은가요. ‘정치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긴 글(「열린전북」에 실림)로 정리를 했고요. 저는 지난 대선을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한나라당과 비한나라당과의 싸움이라고 보았습니다. 통일, 교육, 의료, 환경, 지방분권, 경제 등 모든 정책에서 보수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표방해온 한나라당과 민주 진보세력간의 싸움이라고 보았고, 그 중심에 그래도 민주당(구민주당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선과 총선 이후 한나라당의 독주, 민주당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목격하면서 정치의 혼란으로 인한 민생파탄과 양극화는 해결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정치불신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이 책의 끝 장에 쓰인 크루그먼의 마지막 말은 그 어느 말보다 저에게 놀라운 힘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과거 프랭클린 루스벨트처럼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을 방해하는 어떤 이익집단의 증오도 개의치 않았던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더 나은 사회, 조금이라도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영구영하는 합리주의와 온건한 타협 같은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폴 크루그먼은 이익집단들, 기득권층, 소수 엘리트계층은 절대 민주주의나 인권, 저소득층의 기본권 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0여년의 정치, 경제 역사를 통해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반민주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한다”고 아예 말합니다.

설마설마 했던 정치와 권력의 비밀이 벗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도 대통령이, 정부가, 그리고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 그러니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레이건이나 부시 와 공화당, 한국의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절대 국민이 평등해지는 것을 원치 않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것을 지향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미국에서는 이미 검증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의 악법들로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요.

미국은 분명히 변합니다. 변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동안 소수의 진보언론과 촘스키를 필두로 한 미국정책의 비판자들을 통해 미국 정치와 정책의 실상이 드러났지만, 경제학자가 쓴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치는 다시 한 번 유리 상자가 되었고 유리 상자 안에서 공화당원들이 무슨 짓을 했으며 현재 하고 있는가가 극명하게 전 세계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은 장차 변화되지 않으면 로마제국의 멸망처럼 세계 속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 분명해졌어요. 미국인들이 이것을 깨닫고 보수당원들이 더 이상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유리동물원으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우리나라는 세계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 최악의 사회보장국가, 최후의 파시즘 사회로 전락할 것 같은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공포정치의 포문을 열고, 부자들을 위한 정치의 기치를 올려 숨 쉴 틈 없는 속도로 사람들을 후려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태평성대에서 진보도 우익 못지않은 기득권을 얻어서 더 이상 고달프게 싸울 필요를 못 느끼는지, 혹 공안 정국의 눈치를 보는지, 아니면 한양에서 불러주기만을 바라고 있는지 너무 조용한 통에 국민의 권리와 약자의 생존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종부세의 폐지로 사회복지가 가장 심한 타격을 입는데도 사회복지학 전문가들의 비판의 글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소득층, 여성, 노인들을 위한 단체들이 거리행진이라도 하고 전국적인 연대투쟁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기미가 없었습니다. 지방교부세의 축소로 지자체 단체장들이 삭발이라도 하고 집단농성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숨소리도 안 들렸습니다.

사회복지를 무너뜨리고 지방균형발전을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종부세 폐지를 놓고 아무 소리 안 하던 민주당이 언론악법을 놓고 전투태세를 갖추어 모질게도 대항합니다. 그들의 의지나 전략이나 힘으로 보아 승산이 있어 보이고, 제발 그것만큼은 끝까지 막아내고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회의 가장 강한 무기이자 권력이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겠다 싶어지니 비로소 발 벗고 나서는 모습으로 비치긴 하지만요.

이 화력을 모아 민주당이 환경파괴, 교육파괴, 경제파괴의 모든 정책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정신없이 당했지만, 진보주의 정치의 힘이 우리나라에도 살아있다는 믿음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필자인 이재천 씨는 제5대ㆍ6대 전주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사)청소년의안전을생각하는의사들의모임' 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재천 소장은 ‘의정활동에서 시민운동까지’, ‘지방의회 여성의원의 삶과 도전’, ‘의회의 리비히 법칙’ 등 의원활동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책을 펼쳐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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