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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고] 도립국악원 통폐합 논의에 대해

유제호( 1) 2009.02.10 10:03 추천:1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은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랜 전통과 성숙한 역량과 원만한 운영 체계를 겸비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예술에 대한 도민들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들과 국악인들이 합심하여 이루어낸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아주 장기적으로 전망해 볼 때도 그렇다.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의 예술혼을 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문화예술을 지역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도립국악원을 다른 지역과 더욱 더 차별화시켜 미래지향적으로 육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도청, 의회, 지역 언론을 비롯하여 도내 일각에서 도립국악원의 축소 개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도립국악원의 운영 실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축소 지향적인 통․폐합 논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심지어는 도립국악원의 존폐 문제가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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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그리고 내친 김에, 도립국악원의 파행에 대해서도--필자 나름의 ‘쓴소리’를 좀 내놓고자 한다.
(이런 논의에 있어 국악인들을 비롯한 전통예술인들의 마음가짐과 실천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른 기회에 필자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1. 도립국악원 운영의 파행

세계소리축제 및 소리문화의전당의 통․폐합 논의가 도립국악원까지 미친 여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대다수 지역민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지난 해 12월, 도립국악원의 등록 및 수강 일정에 당장 파행이 일어났다.

매년 6월과 12월에 등록을 받아 7월과 다음 해 1월에 개강하던 오랜 운영 체계가 ‘아닌 밤에 홍두깨’ 격으로 졸지에 중단되고, 아주 이례적으로 1월에 등록을 받아 2월에 개강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기존 수강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1개월 간의 짧지 않은 공백기를 강요당했다.

▲도립국악원 연수생모집 요강. 매년 1월에 개강하던 연수가 올해는 2월 2일에 개강했다.
필자가 볼 때 도립국악원의 상시 운영에 있어 ‘6월 등록-7월 개강’ 및 ‘12월 등록-익년 1월 개강’의 일정이 오래 전부터 확립된 데는, 그것이 각급 학교의 방학 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요컨대 그같은 일정이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는 국악의 대중적 입지 확보에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최근에 일어난 등록 및 수강 일정상의 갑작스러운 파행은 --이유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을 90% 가까이 일거에 대폭 교체한 것도 다방면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크나큰 파행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유발되고 그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후유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물론 교수 요원들과 예술단(관현악단, 무용단, 창극단) 단원들 간의 일정 수준의 순환 근무 체제가 어느 정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일면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같은 필요성과 장점을 대내외적으로 근거 있게 제시하고 설득한 다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그리고 예측 가능한-- 점진적인 교체를 시행했더라면 내부 갈등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서 각양각색의 수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 수업에 있어서는. 부문별 연기 및 연행 기량과는 별개의 또 다른 경륜 및 이론 체계가 상당 정도 요구된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 당장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개설 과목과 배당 시간의 대폭 축소에 따른 각종 부작용과 희소 가치를 지닌 부문의 무차별 폐강이다. 우선 수강 희망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과목 및 시간 선택의 폭이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부 시간대의 적잖은 과목에 있어서는, 분반을 하더라도 공간이 협소하고 효율적인 강의가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수강 인원이 넘쳐난다.

이와 관련하여 도립국악원에 우선 주문하고 싶은 것은, 아쟁이나 가야금병창처럼 희소 가치를 지닌 부문에 있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각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과목 개설 및 시간 편성에 있어서도, 실제로 계산해 보면 구차하기 짝이 없는 ‘돈타령’에 앞서 도립국악원 본연의 기능에 합당한 수요자 중심의 각별한 인식이 요청된다.

우리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예술의 대중적 입지 확보가 시급한 관건이라는 점에서,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 수업도 적어도 이전의 수준으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


2. 구차한 ‘돈타령’과 민족의 ‘예술혼’

도립국악원에 불어닥친 위와 같은 파행, 갈등, 후유증, 부작용을 현장에서 목도하면서 필자가 절실하게 느낀 것은, 그 모든 것이 무엇보다 앞서 이른바 ‘돈타령’ --또는 ‘경제논리’--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는, 도립국악원을 비롯한 모든 관련 기관들이 앞에서 이미 언급한 도민들의 자긍심, 민족의 예술혼, 전통예술을 매개로 하는 장기적인 지역발전 전략 등을 서로 연계시켜 전향적인 정책을 수립해야만 한다.

인구, 세입, 예산 등 거의 모든 부문에 있어 우리 지역이 차지하는 전국적인 비중이 2% 내지는 4%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통예술 공연의 질과 양에 있어서는 그 비중이 20%에 가깝다. 도내 일부 대학의 경우, 학생들에게 크나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얼마 전부터 국악 관련 강의를 졸업 필수 학점으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필자가 볼 때는, 전통예술에 대한 도민들의 남다른 자긍심과 우리 지역을 축으로 민족의 예술혼을 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역민들의 암묵적인 공감대 덕분이다.

사실 적어도 우리 지역에 있어서는, 전통예술이야말로 이른바 ‘새만금’ 사업을 능가하는 약속의 땅이다. 새만금 사업은 설령 그것이 최고 수준으로 진척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형성된 경제권이 전라북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 및 외지의 자본에 종속될 여지가 훨씬 더 높다.

그 반면에 전통예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우리 지역민들 스스로 남다른 자긍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서도 그 위상을 어느 정도 공인받고 있다. 따라서 전통예술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이 부단하게 이루어진다면, 전통예술 및 관련 부문들의 고급 문화상품 개발과 더불어 이른바 ‘돈타령’--또는 ‘경제 논리’--에도 부응하는 결실이 이루어질 것이다.


3. 도립국악원 확대 개편의 필요성

언제부턴가 ‘소리문화의전당’과 ‘세계소리축제’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더니, 근래에는 심지어 ‘도립국악원’까지 거기에 덧붙여 함께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대두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소리문화의전당은 이미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일종의 공연장이고 사업체인 반면에, 세계소리축제는 전주시가 특정의 예술적 정체성을 근간으로 주최하는 세계 규모의 행사다. 그리고 소리문화의전당은 위탁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만료된 이후의 운영 주최가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반면에, 세계소리축제는 전주시가 명실상부한 국제 행사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나가야만 한다.

애초에 세계소리축제를 개시한 전주시가 이제 와서 발뺌을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사업체에 대규모의 종합예술 행사를 일임한다는 것도 언어도단이다.

한편 도립국악원의 통․폐합과 관련하여서는, 이미 언급한 구차한 ‘돈타령’이 그 주된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심지어는 지역 내부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요컨대 도립국악원이 ‘전주’에 있는데, 그래서 전라북도 다른 시, 군의 주민들은 수강이 불가능한데, 그것이 어떻게 ‘도립’ 국악원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유아적인 발상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다. 왜 각종각급 ‘국립’ 기관들은 거의 다 서울에 있는가? 수강생들 중에 다른 전주시 이외의 다른 시, 군 주민들도 많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특히 방학 기간에는 대구, 부산, 진주 등 타도의 주민들도 전라북도 도립국악원을 찾는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만일 전주시 이외의 다른 시, 군 주민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면, 도, 시, 군의 유기적인 협력 아래 도립국악원을 오히려 ‘확대’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필자가 볼 때 도립국악원을 포함한 근래의 통․폐합 논의는 현장 감각이 결여된 탁상 행정, 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된 근시안적인 ‘돈타령’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소리문화의전당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대규모 공연장으로서 면모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전통예술 --특히 판소리-- 전용의 소공연장들을 더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소리축제는 전주시가 결자해지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행사를 단기간에 급조하는 졸속성을 버리고 적어도 3-6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하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도립국악원은 전통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장기적인 지역발전 전략 아래, 도, 시, 군에 걸쳐 유기적인 망을 형성하는 쪽으로 오히려 ‘확대’ 개편할 필요가 있다.


4. 확고한 위상 확립과 홍보전략

한편 전라북도의 경우, 장기적인 지역발전 전략에 있어서도 ‘전통문화예술’ 지역이라는 확고한 위상 확립과 이를 통한 다방면의 상승 효과 창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예술 부문에 소요되는 예산을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부담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도, 시, 군이 광역 단위로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전통문화예술’ 관련 정책과 예산을 더욱 늘려 나갈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대구경북, 경주경북, 충남공주, 진주부산, 광주전남 등이 역사, 전통문화, 전통예술 관련 입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지역들에 맞서 전주전북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의 ‘특성화’ 및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요컨대 전통문화예술의 대중화, 세계화, 고급상품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서 그 위상과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라북도, 전주시, 기타 시, 군이 유기적인 체계를 갖춰 예산을 분담하는 등, 합리적이고 조직 개편과 효율적인 운영이 요청된다.

한편 필자가 강조하는 도 차원의 지원과 관심은 재정 문제와 예산 편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내외적인 다기한 홍보 전략의 수립과 실천이다. 예를 들어, 도립국악원 예술단(관현악단, 무용단, 창극단)의 각종 공연에 대해 도가 앞장서서 폭넓은 홍보 전략을 기획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홍보가 요청되고, 나아가서는 전국에 걸치는 홍보와 각급 여행사들을 상대로 하는 더욱 더 치밀한 홍보도 요청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전통문화예술 지역으로서 전라북도의 이미지가 대내외적으로 뿌리깊게 내면화되고 폭넓게 확산되는 가운데, 그와 더불어 전통문화예술을 축으로 하는 다방면의 상승 효과가 창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5. 구체 사례: '목요국악예술무대'의 가치

더욱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도립국악원 예술단이 목요일 저녁(7:30)마다 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 내놓는 ‘목요국악예술무대’만 해도 그렇다.

▲도립국악원 목요예술무대 소개/ 도립국악원 홈페이지


필자가 보기에 이 ’무대’야말로 우선 지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알짜배기 자산이고, 나아가서는 예술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문화상품, 관광상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무대’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예술을 충실하게 전승하는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시아, 유럽, 미국, 남미 등의 예술과 적정선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그 수준이 날이 갈수록 더 향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런 ‘무대’가 애타게 관중을 ‘기다리는’ 공연, ‘일회성’의 ‘무료’ 공연으로 치러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도립국악원의 예술단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짜임새 있게 준비한 공연물을 가지고 ‘명인홀’에 안주하여 ‘일회성’의 ‘무료’ 공연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만일 도 차원의 지원과 홍보가 이루어진다면, 이 ‘무대’를 우선 우리 지역 내에서 대학 순회, 직장 순회, 시․군․읍 단위의 순회 등, 지역민들을 ‘찾아가는’ 공연으로 기획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하는 경우 또 다른 이점이 생기기도 한다. 즉 1주일 단위가 아니라 1개월 또는 1분기 단위의 공연 기획으로 소요 경비를 줄일 수 있고, 예술단원들의 심신의 부담을 줄이는 반면에 긍지를 높일 수 있고, 장기간의 치밀한 준비를 통하여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고, 나아가서 훨씬 더 많은 지역민들과 접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역민들을 설득하여 우리 지역의 전통예술 공연들을 적정가의 ‘유료’ 공연으로 정착시키는 길이 열릴 수도 있게 될 것이다.

*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전통예술과 관련한 우리 지역 중심의 대중적 입지 확보와 폭넓은 공감대 형성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다른 경쟁 지역들에 맞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하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대중화, 세계화, 상품화 정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이 도 차원의 대내외적인 홍보 전략이다. 일차적으로는 지역 내부에서, 나아가서는 전국 규모로 --특히 각종 미디어 및 여행사들을 상대로-- 도가 폭넓은 홍보 전략을 세우고 실천한다면, 우리 지역의 전통예술 관련 기관들과 공연물들이 머지않아 고급 문화상품, 고급 관광상품으로서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글쓴이 소개] 필자는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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