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교육 "전북교육청 공무원의 수상한 봉사활동"

전북교육청 공무원 봉사동아리 회장의 성희롱 사건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7.12.20 16:34

“방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어요.”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돕는 봉사를 오랫동안 한 김미연(가명, 44)씨는 전주의 한 자립생활관에서 만난 A(여, 18)의 사연을 이렇게 털어놨다. 4살 때부터 전북 완주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A는 올해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립을 하게 됐다.

초기 정착 지원금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이제 오롯이 자기 삶을 책임져야 하는 A.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보내야 할 때, 김미연씨가 만난 A는 두려움과 불신을 먼저 배우고 있었다. 미연씨는 “(A가 울고 있던 5월 말에는) 학교를 안 간지 한 달이 되었다고 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자립생활관도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A의 삶은 위태로웠다. 대학을 다니고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와야만 자립생활관에서 살 수 있었다. 곧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것은 하반기 자립생활관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A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었을까? 참소리는 A와 친구 B(여, 19), 이들을 돕고 있는 김미연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A가 당시 힘들었던 배경에는 전북교육청 봉사동아리의 회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은 키다리 아저씨의 수상한 배려”

전북교육청 직원들로 구성된 봉사동아리 ‘마00’ 회장을 맡고 있던 P(남, 49)씨는 올해 초, 전주의 한 중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했다. 이 동아리는 오랫동안 A가 살던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전구를 교체하고, 고장 난 시설을 고쳐주는 봉사를 하는 마00은 보육원에 있어서 중요한 봉사단체 중 하나였다.

P회장이 본격적으로 A에게 접근한 것은 보육원을 나와 자립생활관에 입소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3월. 그때부터 P회장으로부터 오는 연락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묻기도 하고, (제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갈수록 선을 넘었어요. 4월 중순부터는 제가 하는 것에 집착을 했어요.” (A의 증언)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집에 언제 들어가는지 물었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욕을 하기도 했다. 자고 있어 전화를 받지 못한 날에는 문자가 와있었다. 심한 욕설이 담긴 내용이었다. A의 친구 B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남자랑 술집에 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는 것 같았어요. 저와 있을 때도 항상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어요. 제게도 ‘회장님에게 전화해야 해’라는 말을 하면서요. 그때 A가 P회장으로부터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A의 친구 B의 증언)

대학에 입학하고 A는 학교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었다. 과학생회에 참여하며 동기, 선배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 무렵이었다. 학과도 자신이 진로를 희망한 복지 관련 학과였다. 그러나 그 생활은 P회장의 개입으로 균열이 생겼다. 저녁 6시에서 7시께 학생회 회의나 모임이 있으면 참여를 막기도 했다.

만나는 횟수도 많았다. 공무원 일과가 끝나는 5시 이후부터 전화가 왔고, 직접 학교를 찾아왔다. 1주일에 3~4차례 만나기도 했다. 

“자신을 아빠로 소개하고 전화 해준다고 하거나, 데리러 갈 테니까 회의에 가지 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진짜 데리러 왔어요. 그러면 같이 밥을 먹었죠. 저도 이런 것이 불편하기 시작했어요. 왜 이렇게 집착을 하지 의문이 생겼죠.” (A의 증언)

만나면 옷을 사주기도 했다. 물론 A가 원한 옷이 아니었다. 차 안에 옷이 준비되어 있고 헤어질 때 입고 가라는 식이었다. 여행을 가자는 제안도 있었다. 부안에 숙소가 있다고 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떼를 썼다. 차 안에서는 A에게 포옹을 시도했다. 그럴 때면 친구 B를 만나야 한다는 핑계로 당시 상황을 모면했다.

셋.jpg

<사진 설명 - 전북교육청 봉사동아리 회장 P씨는 보육원에서 나와 사는 여성을 지원 등의 이유로 접근하여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P회장이 보낸 메시지>

“널 여자로 보고 있다? 본색을 드러내다”

3월과 4월 초, P회장은 학교를 다니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공무원 시험을 제안했다. 보육원에 있었던 작년에도 P회장은 그런 말을 했다. A는 보육원 동생에게도 P회장이 술에 취해 공무원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술에 취해 보육원 동생에게 전화를 한 P회장은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말과 함께 접근했다.

A에게는 자립생활관에서 나와 고시원 생활을 하면 편의를 봐주겠다는 뜻도 밝혔다. 휴대폰 사용도 자유롭지 않은 완주 변두리 지역의 외딴 고시원이었다. A씨는 P회장을 따라 그곳을 가보기도 했다.

“(실제로 공무원이기도 했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공무원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했죠.” (A의 증언)

그러나 A가 이렇게 결심한 4월 중순, P회장은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걸려온 전화로 ‘사랑한다’, ‘여자로 보고 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A는 점점 P회장의 집착과 폭언에 지쳐가고 있었다.

P회장의 집착은 친구인 B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손등에 작은 타투를 새긴 B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문신이 더 있는지 몸을 확인해보겠다”는 말을 꺼냈다. 아르바이트를 찾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겠다며 “출장을 가는데 따라오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등의 제안을 했다고 B는 기억했다.

고시원에 가기로 결심이 선 A는 B와 2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었다. P회장의 반대에 부딪쳤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겠다는 사정도 통하지 않았다. B는 그 상황에서 P회장이 이상하다며 고시원에 가는 것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어요. 그 사람 별로라는 말과 함께요. 그런데 그 다음 날 저녁에 전화가 왔어요. ‘걸레’라는 말부터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쏟아냈어요.” (B의 증언)

크기변환_둘.jpg

<사진 설명 - A의 친구 B에게 P회장이 보낸 메시지>

B가 집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한 일을 비꼬아 말하기도 했다.

“그때 제가 A에게 고민을 털어놨어요. 옆에서 P회장이 들은 모양이에요. 그리고 A에게 자기가 경찰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도와주겠다고 말을 했다는 거에요.” (친구 B의 증언)

그러나 도움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이렇게 폭언으로 돌아온 것이다.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면서 A는 학교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학교를 가지 않을 때는 혼자 방에서 울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자립생활관에서 걱정을 하면 조용히 학교 가는 척 나가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문뜩 살기 싫다는 위험한 생각도 했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A는 당시를 그렇게 회상했다.

그런 상황에서 P회장의 전화와 만나자는 요구는 꾸준했다. P회장은 보육원에서부터 본 어른이었다. 4월과 5월이 지나면서 P회장을 더 이상 조언자로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나.jpg

<사진 설명 - P회장은 수시로 A를 불러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기도 했다. 이에 A는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 등으로 피했다.> 

“2차 가해가 시작되다”

미연씨는 A의 이런 처지를 접하고 전북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전북교육청은 감사에 착수했고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자 P회장은 더 싸늘하게 변했다. A에게 메신저와 전화로 미연씨에 대해 험담을 늘어놨다.

“자원봉사를 하는 그 X년에게 뭔데 이야기를 하냐는 말을 했어요. 솔직히 회장님이 사과를 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모(A는 미연씨를 이모라 부름)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냐고 말을 했어요.” (A의 증언)

기혼자였던 P회장. 그의 부인도 A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합의 등의 제안이 왔다. 그러나 P회장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봉사를 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까 우려했다. A와 B는 합의를 거절했다. P회장의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이야기에 미연씨는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부인에게 연락을 했다.

“A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어요. A가 P회장에게 한턱 뜯어내려고 한 것 아니면 왜 못 만나냐고 묻더군요. 협박으로 만나자는 것도 아니고 딸 같은 마음으로 좋게 해결하려고 연락을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통화 말미에는 P회장이 얼마만큼 잘못을 했냐면서, 그만큼 옷 사주고 밥 사주고 돈을 주고 욕 한마디 못 하냐고 반문하길래 바로 연락을 끊었습니다.” (김미연씨의 증언)

피해자를 ‘꽃뱀’으로 보는 전형적인 태도.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A는 보육원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 미연씨는 사건 진행 과정에서 보육원이 보인 태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보육원은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A를 보육원으로 불렀다. A는 당시 문제를 더 이상 키우지 말라는 보육원의 태도에 상처를 받았다. 언론에 제보한 사람이 누구냐는 말에서부터 P회장이 그 언론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그 후, 보육원에서 오는 전화를 A는 피했다.

미연씨도 보육원으로부터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다. 보육원 원장이 고소 취하 등을 요구한 것.

“제가 당신의 딸이라고 하면 이 문제를 넘어갈 수 있냐고 물었어요. 3자 대면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을 보호해야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없었어요.” (김미연씨의 증언)

A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냈다. 그에게 보육원 식구들은 부모와 다름없었다. 그곳이 걱정됐다. 후원이 끊기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A는 3자 대면을 응하고자 했다. 그러나 막상 P회장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사안이 번지자 봉사동아리 마00에서도 대응에 나섰다. 마00 관계자는 미연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개인의 일로 마00과 관련이 없다. 연관시키지 말라”고 말했다. 사과부터 할 것이라고 생각한 미연씨는 이 전화를 받고 분노했다.

P회장, “지원을 했을 뿐, 대부분 부풀려졌다”

이와 같은 이야기에 대해 P회장은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P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들이 있어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한 이야기들이다”면서 “(B에게 한 폭언은) A가 B때문에 (나쁜 쪽에 빠져들까봐) 화가 나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A를 여자로 본 적은 없다면서 ‘방을 잡았다’, ‘문신 몇 개 있는지 보자’ 등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공무원 제안에 대해서는 “주변 동료들과 함께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P회장을 네 가지 혐의로 검찰에 기소했다. A와 B에게 행한 폭언 등에 대해서는 강요와 협박,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보육원 동생에게 한 행위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경찰로부터 받은 사안 중 보육원 동생에게 한 행위와 강요 부분에 대해서는 무혐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협박과 정보통신법 위반에 대해서는 혐의를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했다. 전북교육청 감사팀은 수차례 미성년자인 A를 불러내 술자리를 갖고, 폭언을 하는 등 공무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면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인사팀에 보냈다.

인사팀은 지난 11월 인사위원회를 열고 P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논의했지만 검찰의 최종 결론을 살펴보고 판단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런 가운데, P회장은 중학교를 떠나 한 교육기관을 발령받아 근무 중이다. 이들은 더 이상 P회장이 교육 관련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는 P회장의 문제가 알려지자 대응에 나섰다. 지난 14일 전북평화와인권연대와 전북지역 여성단체들은 “P회장은 자신이 공무원이고 봉사동호회 회장이며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라는 점을 이용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10대 여성들과 친밀감을 형성했다”면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비롯한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재판과 진행 과정을 면밀히 살피겠다는 입장이다.

P회장의 그릇된 행위는 내년 초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A는 미연씨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A는 “저와 같이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연씨와 함께 종종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이 당시 이야기를 꺼낼 때면 상처가 드러난다.

친구 B는 “(A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기억 자체를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요”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