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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식칼테러와 경제특구의 악몽

유기만( 1) 2003.04.05 17:12 추천:1

지난 3월 19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한 명이 월차를 쓰려다가 관리자에게 폭행을 당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폭행을 한 관리자는 병원까지 찾아가 누워있는 노동자를 식칼로 찔러서 아킬레스건이나가 전치 22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80년대 군사 독재 시절에 있었던 현대중공업 식칼 테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몇 주 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비정규직 문제가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지고 차별의 심각성이 부각 된지도 몇 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현장은 무법천지입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들이 몇 년간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좀처럼 잘 조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법천지 노동현장

한 공장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여러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있고 또 거기에 일용 노동자들이 있고 파견 노동자들이 있고 갈기갈기 찢긴 노동자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위치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한 덕에 정규직 활동가는 정규직 조합원조차 조직하기 힘든 상태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가 과도하게 보이기도 하고 하청 노동자들은 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 덕에 조합 활동을 하다가 불법으로 내몰려 감옥에 가기 일쑤이고 이에 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조합 활동에 눈치를 보는 형국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비정규직 투쟁이 발생하면 미묘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생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은 스스로가 비참해지고 무력해지는 구조가 되어있습니다. 어느새.... 어느새 말입니다.

이것은 노동을 유연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의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 3권의 법률적 제약과 기업별 노조 의식에 갇혀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노조운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권과 자본은 아직도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강성이라고 노동이 유연화 되어야 된다고 지껄이고 있습니다. 노조운동도 마찬가지로 상층에서 내려오는 비정규직 사업이 현장에서는 현실화하기 매우 어려운 상태입니다. 위기의식보다는 보신주의가 더욱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몇 개의 법률이 통과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나니 이렇게 비참하게 변화하고 있는데 경제 특구가 통과된 후 현실에서 보여줄 모습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합니다.

경제특구 실상보여주는 '사라진 여성들'

▲사라진 여성들
이번에 식칼 테러를 보면서 지난해에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사리진 여성들'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사라진 여성들'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 근처에 미국의 공장을 이전시켜 멕시코 사람들을 고용하여 특구로 지정한 지역에서 발생한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끔찍한 테러를 다룬 영화입니다.

몇 년 동안 수 백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사라졌습니다. 노동조합은 꿈도 꾸지 못하고 과거 시골 순이가 서울로 올라가듯 IMF를 몇 번 겪은 남미의 여성들이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특구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사려져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채 사막에서 발견됩니다. 수 백 명이 죽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습니다. 아니 멕시코 정부에서 잡을 의지조차 없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경제특구가 시행되어 근로자 파견법이 확대되고 노동삼권 보장 없이 고용허가제가 확대되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정권과 자본이 안정적으로 확보합니다.

경제특구가 아닌 지역에 공장이 있는 노동자들은 뻑 하면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협박에 혹은 이전의 현실화에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고 1000명이 일하는 공장에 약 50개 업체의 파견 노동자들과 다국의 이주노동자들이 혼재 되어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식칼테러는 시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뒤에 마피아가 있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이주 노동자들과 협박과 폭력에 비참하게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식칼 테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마당에 경제 특구가 지정되고 올 7월부터 시행되려고 합니다. 각 지자체 마다 경제 특구가 되려고 용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멕시코 사라진 여성들의 끔찍한 기억이 점점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차별 반대! 경쟁 반대! 비정규직 철폐! 경제특구 폐기!
끔찍한 미래로부터 우리를 구합시다.


* 노동자의집 소식지 [노동이즐거운세상]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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