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노동/경제 국립대 1호, 전북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불편한 이유

"최저임금 대폭 인상 억제하기 위한 정규직화?"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7.12.28 17:44

지난 21일, 전북대 청소⦁시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두고 관련기관 두 곳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나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북본부(이하 일반노조), 다른 하나는 전북대였다. 서로 상반된 내용의 보도자료. 하루에 수 만 건의 보도자료가 소비되는 언론 사회에서 같은 주제의 상반된 내용의 보도자료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적용받는다. 결국 한 곳의 보도자료는 휴지가 되어 버렸다. 그 휴지가 된 보도자료는 노동자들의 보도자료였다.

크기변환_3.jpg

“기울어진 테이블에서 정규직 전환 논의가 시작”

같은 날 정오, 전북대 신 정문 앞에서 당시만 해도 살아있었던 보도자료를 발표한 민주일반노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120여명의 전북대 청소 노동자 중 40여명이 가입한 일반노조의 기자회견에는 전북대 재학생을 비롯해 교수와 시민사회단체 등 약 3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학교 측의 일방적인 정규직 전환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협의를 강압으로 합의를 굴복으로 바꿔 놓은 정규직 전환을 규탄한다.”

전북대가 일반노조의 참여는 물론 고용노동부가 제공하는 전문가 집단의 조력조차 차단하고 일방적으로 정규직 전환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11명의 협의기구 참여자 중 비정규직을 대변할 수 있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조 대표는 3명. 전북대 측은 대학노조 지부장과 공무원협의회 관계자도 노동자 대표 위원으로 봤지만, 일반노조는 사실상 기관 위원이라고 봤다. 이 밖에 노무사를 비롯한 전문가와 전북대 관계자로 협의기구는 구성됐다.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당사자 등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기구가 구성되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촛불 이후 사회적 화두가 된 차별, 특히 비정규직 차별이라는 노동의 적폐 중 하나를 청산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가이드라인도 이 점을 의식해 충분한 협의를 강조했다.

8:3. 노조는 협의기구의 구성 틀이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봤다. 이날 노동자들은 이점을 강조하며 “극심한 고용의 불안과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 지침은 애초부터 용도폐기 되었다”고 기자회견문에 적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약 30분 간 진행됐다. 재학생과 교수가 직접 발언에 나서 전북대가 노조와 협의를 통해 정규직 전환 작업을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의 기자회견은 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뒤이어 발표된 전북대의 보도자료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크기변환_회전_4.jpg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약 한 시간이 지나, 문제의 전북대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전북대 청소용역근로자 전원 정규직 전환 합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전국 국립대학 중 청소용역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전북대가 최초라는 내용의 이 보도자료를 통해 전북대는 사회적 양극화의 해결과 사회통합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전망이라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기자님! 잠시만요. 타결됐거든요!”

전북대 출입처가 아니라 받지 못했던 이 자료는 일반노조 기자회견의 반론 취재를 위해 전북대 홍보실에 전화를 걸어 받게 됐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청소노동자들이 합의를 했다는 구두 설명도 덧붙였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집회(기자회견을 집회라 표현) 이후 충분히 그 분들이 생각한 것 같고 바로 서명을 한 이유가 대학에서 최대한 배려한 취지라고 (노동자들도)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전북대 홍보실 관계자는 이날 합의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따로 일반노조의 보도자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왜? 노동자들은 합의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을까?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죽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들을 만나야 했다.

“고용을 무기로 졸속 정규직화 합의 시도한 것”

양성영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북본부장은 “현장 내 암묵적 협박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예를 들면 전북대가 만들어놓은 안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고용 형태가 용역 혹은 한시적 기간제로 간다는 이야기를 전북대 측에서 노동자들에게 했다.”

양 본부장은 이를 ‘암묵적 협박’이라고 표현했다.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한 여성노동자를 상대로 3~4명의 남성 관리자와 정규직들이 붙어서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것이 협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양 본부장은 기자와의 통화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현장의 동요에 반전을 기대하고 준비된 것이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도 전날 성명서를 통해 ”전북대가 자신들의 안을 어떻게든 강행하겠다며 현장 노동자들을 종용하는 실정이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몇 차례의 공문과 항의 방문으로 더 이상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협박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 앞서 투쟁의 뜻을 밝히고 대응 전략 등도 정했다.

“노동자들은 두 달 가까이 시달렸다. 노동자들에게 고용이 가장 무서운 무기인데, 합의하지 않으면 기간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양 본부장은 ”전북대가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현장 여론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전북대 홍보실은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협의기구에 일반노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배제가 아니라 노조 스스로 참여하지 않은 것이라는 다른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청소노동자들도 이번 합의를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크기변환_1.jpg

“최저임금 인상 저지를 위한 꼼수?”

전북대가 국립대학 최초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타이틀을 내건 ‘청소노동자 정규직화’에 대하 노조와 학교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반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임금 인상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노조에 따르면 2017년 실제 지급된 급여는 월 187만원.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인 135만원에 각종 수당이 포함됐다. 그리고 2018년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받게 될 급여는 월 191만원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 157만원에 각종 수당이 포함됐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약 4만원의 인상 효과를 보게 되는 것.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는 2018년을 청소노동자들은 내심 기대했다. 현행 급여체계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적용하면 기본급과 각종 수당 포함하여 월 27만원이 인상하게 된다. 그러나 전북대 측은 2018년 정규직 전환과 함께 대학에 맞는 급여 체계를 산정하면서 각종 수당을 대폭 삭감했다. 근속수당과 하계휴가비와 상여금을 삭제하고 직급보조비와 맞춤형복지비를 신설했다. 이 과정에서 23만원이 삭감된 것이다.

일반노조는 “임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체교섭 사안으로 남겨 놓자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대학 측은 끝내 이를 강행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강문식 교선국장은 “정부는 전환 과정에서 절감되는 용역업체의 이윤과, 관리비, 부가세 등 전체 용역비용의 10~15%에 해당하는 비용은 반드시 전환되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활용하라고 가이드라인을 통해 밝히고 있다”면서 “그리고 당사자와 충분한 논의를 권고하며 노조와의 협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전북대가 과연 이를 지키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북대 측은 “국립기관으로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가이드라인에 기초한 정규직 전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교육연수와 각종 교직원 복지 프로그램 혜택도 받을 수 있어 급여 인상과 고용 안정은 물론 근무여건도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과 달리 소폭 인상되는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지키기 있으며, (각종 수당의 삭감 주장에 대해서는) 전북대 회계직종의 급여 체계에 따른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크기변환_2.jpg

결과적으로 전북대의 청소노동자 정규직 전환은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사회적 격차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는 살리지 못했다는 평이다.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 이준상 조직국장은 “최저임금 인상 취지보다 인건비 절감에 초점이 맞춰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국립대학 최초 등으로 모범사례로 홍보하는 것은 다른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면서 “이 사례를 공공기관과 타 국립대학에서 답습한다면 정규직화를 바라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이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대단히 위험한 홍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