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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매년 채용 경쟁, 이건 스포츠가 아닙니다", 초등 스포츠강사의 눈물

[현장 취재] 무기계약 전환 제외된 전북 초등 스포츠강사들의 이야기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8.02.09 18:37

“지금 현재는 무직 상태예요”

6일 오후 4시 전북교육청 1층 본관 로비 농성장에서 만난 스포츠강사 박인(41, 경력 10년)씨는 담담하게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관련 기사 - 전북교육청 학교 비정규직 전환 결정에 웃지 못한 비정규직 >

제8차 전북교육청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가 이날 오후 4시께 끝이 났다. ‘탕,탕,탕’ 전환심의위원장의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에 각 직종별 무기계약 전환의 희비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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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추천으로 심의위원회 위원이 된 윤희만 전주비정규노동센터장은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경제 악순환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를 전환심의위원회가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전북교육청 정규직 전환심의위원회 결과를 총평했다. 그는 이날 사퇴하고 자리를 나왔다.

교원 대체 직종에 대해서는 전환 불가라는 교육부의 입장을 보조 인력에 가까운 강사 직군에까지 적용하는 상황에서 노조 추천 위원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윤 센터장은 “물론 성과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구성 자체가 8:2로 노동자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사퇴하자 각 직종의 무기계약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탕, 탕, 탕’ 의사봉의 소리는 빨라졌다. 

“얼마나 전환이 됐나요?”

기자의 물음에 권향임 교선국장(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전북지부)은 “우리도 파악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대충 소식은 들은 터였다. 박인씨가 소속된 스포츠강사 전원은 무기계약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미 교육부가 지난해 9월 영어회화전문강사와 스포츠강사, 기간제 교사를 무기계약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무기계약 전환 대상 및 고용 조건 개선 등의 구체적인 정보는 7일 오전 전북교육청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노조 관계자들은 분주했다. 상황 파악도 해야 했지만, 이 결과를 농성장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조합원들을 살피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박인씨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동안 담당 팀장, 과장, 국장, 부교육감까지 정말 다 만났고, 자료를 달라고 해서 지난 10년 동안의 자료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하는지 진솔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육청 관계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선을 다해 호소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들에게 있어서 ‘최악’이었다. 그래도 ‘차악’은 아닐까? 다시 박인씨에게 물었다. “고용 안정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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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씨는 스포츠강사가 학생과 학부모, 학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전북교육청도 그 필요성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10년이 말해주는 것 아닌가요?” 박인씨가 스포츠강사로 학교 현장에 발을 디딘 것이 벌써 10년이다. 체육학을 전공하고 그동안 10개월, 11개월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현장에서 살아남았다. 당연히 상시 필요한 직종이었고 초등 체육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전환을 기대했다.

“비록 수업을 할 수 없지만 전문성 있는 체육을 하는 전문인으로 초등교사가 하지 못하는 수업을 하고 있어요.”

매년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반복되어 찾아오는 신규 채용은 상당한 부담이다. 1월 말 계약이 종료되고 고용지원센터에 찾아가 구직신청을 하는 시기가 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10년을 반복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무한경쟁’.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다. 내 동료가 채용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나도 저렇게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겠다는 부담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해마다 스포츠 강사를 하려는 이들이 늘잖아요. 10년 된 동기와 매년 경쟁을 해야하는 것도 납득하기가 힘든데 새로운 이들과 경쟁이 어디 쉽겠어요.”

7일 오전, 정규직 전환 직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황홍규 부교육감은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고 전환을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무기직 전환이 안 된 직종에 대해서는 안타까움 마음이 든다.”며 위로의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제외된 직종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내놓겠다는 뜻도 밝혔다.

현재로는 스포츠 강사의 경우, 11개월 계약이 12계월 계약으로 바뀌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매년 신규 채용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재임용을 통한 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2년 이상 한 학교에 있는 것은 무기직 전환을 의미하기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대 2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주겠다는 의미다.

박인씨는 “이미 광주에서는 2015년부터 시행한 것입니다. 적어도 스포츠 강사와 관련해서 전북교육청은 한 발 늦은 대책을 내놓습니다.”면서 전북교육청의 후속 대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교육부는 지난해 스포츠강사의 무기계약 제외 이유를 정부 공통 가이드라인에서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며 일자리 창출 목적으로 시작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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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 정부가 ‘학교체육 활성화’ 사업으로 스포츠강사 제도를 도입했다. 학교체육진흥법을 제정하면서 이들은 법제화됐다. 당시 정부와 국회는 이들을 기간제로 규정했다. 정부의 공통 가이드라인은 ‘타 법령에서 기간을 달리 정하는 등 교사·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를 정규직 전환 예외 사유로 규정했다. 스포츠강사는 여기에 해당한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스포츠강사는 담임과 체육 협력 수업을 하는데, 수업권이 없습니다.”면서 “단지 강사라는 명칭 하나 때문에 교원 대체 직종으로 판단하고 제외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윤희만 센터장은 “심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정말 많은 비정규직을 쓰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50개 직종 이상이 전환심의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윤 센터장은 “정부는 학교 현장에 필요에 따라 자르기 쉬운 비정규직을 써왔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의 비정규직은 이미 전체 교직원의 절반을 육박하고 있다. 정부 정책과 입맛에 따라 학교에서는 비정규직은 쓰이기도 했다. 학교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고, 비정규직은 실험동물이 되었다. 스포츠강사는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실험의 주체인 정부와 교육청이 심의를 하고 학교비정규직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실험동물처럼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 지금 학교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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