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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하늘 감옥 100일', 전액관리제 요구 고공농성

[현장] "택시노동자 김재주의 고공농성, 100일 되다"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7.12.13 04:56

“없는 법을 지키라는 것도 아니고, 단 한 가지 요구하는 것은 법을 지키라는 겁니다.”

영하 8도, 전북 전주가 꽁꽁 얼어붙은 12일 저녁 시청 앞 광장 철탑 20M 위에서 한 남성이 소리쳤다. 벌써 100일째 철탑에서 옴싹달싹도 못한 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재주씨의 호소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전북택시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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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로 고공농성 100일을 맞았다. 서울, 경기,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모였다. 택시기사들도 월급 봉투 한 번 받아보고 싶다며 시작한 투쟁이 벌써 4년을 훌쩍 넘었다. 법이 정한 전액관리제 시행을 간절하게 전주시에 호소하지만 묵묵부답이다.

전북 전주지역 택시업계는 ‘사납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루 13만원, 이를 위해 하루 15시간 이상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인정받는 근로시간은 약 4시간 30분. 김 지부장은 “노예같은 제도를 바꾸고자 올라왔다”며 고공농성 이유를 설명했다. 

12일 오후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되어야 할 전주시청사 문이 굳게 잠겼다. 지나가다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열리는 문화제 참가자들의 점거를 우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전주시의 과한 조치가 어이가 없는지 일부 노동자들은 굳게 잠긴 전주시청사를 찍기 여념 없다.

“고공농성 100일, 연대의 손길들”

이날 오후 5시부터 전주시청 광장에서는 ‘고공농성 100일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시청 광장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재주 지부장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멀리 부산에서 전액관리제 쟁취를 위해 고공농성을 벌인 택시 노동자들부터 투쟁 현장을 찾아 따뜻한 밥 한끼를 제공하는 ‘십시일반, 달려라밥묵차팀’까지 약 300여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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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 중에는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이 눈에 띄었다. 차씨는 3년 전 408일간 굴뚝농성을 벌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이다. 파인텍으로 고용승계가 되었지만,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다시 투쟁을 시작했다. 현재는 그의 동료들이 서울 목동의 한 발전소 굴뚝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료들을 두고 전주를 찾은 차씨는 “택시노동자들과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본과 행정이다. 이게 헬조선의 현실이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랜 고공농성 생활을 누구보다 차씨는 잘 안다. 100일을 맞은 김 지부장의 마음은 어떨까? 차씨는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면서 “평소에도 많았으면 하는 마음과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모인 것에 대한 기쁨이 묘하게 교차했다”고 말했다.

차씨가 이렇게 달려온 것은 바로 이 때문. “우리가 왜 투쟁하는지 몰라줄 때가 가장 버티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들의 투쟁을 알아주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차씨는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차씨는 “자본의 일방적인 독주를 멈추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의”라면서 “노동자들이 이 땅에 내려올 수 있게 평등과 평화가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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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적폐와 손을 잡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서 사람들은 “더불어 민주당은 폭삭 망해라”라는 구호를 가장 크게 외쳤다. 정홍근 전북고속 해고자는 “이 철옹성 같은 민주당 독재의 땅에서 한국지엠 군산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택시, 버스 노동자들이 해고되어 투쟁하고 있다”면서 “노조할 권리를 외치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제 목숨을 담보로 하늘 감옥에서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깃발이면 한 때 다 당선이 되었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고 민주당이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전북에서 민주당은 촛불시민보다는 토호자본의 편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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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전북택시지부는 지난 2014년부터 전주시청 앞에서 천막농성과 피켓시위를 하며 전액관리제를 요구해왔다. 천막농성 403일만에 전주시로부터 답을 얻어냈다. 노⦁사가 각각 추천하는 기관에 전액관리제 시행을 위한 임금표준안 용역을 맡기고, 두 기관이 공동으로 도출한 내용을 토대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자는 것. 그러나 그 합의는 지금 사실상 깨졌다. 그래서 택시노동자들은 민주당과 전주시장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김 지부장은 “고공농성 100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어제 전주시는 일방적으로 택시사업주와 전액관리제 임금표준안 최종보고회를 마쳤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전날 보고를 마친 임금표준안은 ‘도로 사납금제’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이렇다.

“법령에서 보장한 최저임금 지금시간을 사업장에서 축소할 수 있도록 열어두고, 회사에 납부해야 할 일 기준금도 회사가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4월 부경대와 전북대가 공동으로 마련한 임금표준안을 전면으로 엎은 것이다.”

김 지부장이 지난 9월 4일 기습적으로 고공농성을 감행한 이유는 지난 4월 부경대와 전북대 용역팀이 공동으로 마련한 전액관리제 임금표준안을 회사의 거부를 이유로 전주시가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지부는 당시 임금표준안은 전주시와 사측, 노조가 작년에 임금표준안 마련을 위한 용역을 들어가기에 앞서 합의한 사항을 준수하였기에 채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임금표준안은 소정근로시간과 일기준금은 근로기준법과 실제 운송수입 등을 반영하여 정했다. 그리고 사측이 선정한 용역팀(전북대)도 공동으로 참여했기에 사측의 거부를 이유로 전주시가 채택을 미루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과적으로 고공농성 100일을 하루 앞두고 전주시가 사측과 함께 진행한 보고회는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렸다. 전주시는 사측의 반대로 보고회조차 제대로 열지 못한 지난 4월과는 비교되는 대목. 김 지부장은 “내가 죽든, 전주시가 죽든 해보자는 것 아닌가”라며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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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액관리제만 바랄 뿐”

김 지부장은 전주시에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이날 문화제를 찾은 노동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에 화답하듯 문화제를 찾은 노동자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에서 밥차를 끌고 전주까지 온 ‘십시일반, 달려라밥묵차팀’이 대표적이다. 밥묵차팀 회원 유희씨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면서 “밥은 하늘이고 함께 나눠 먹자는 의미로 이렇게 찾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반드시 전액관리제를 쟁취하여 땅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재주 지부장의 고공농성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고영기 전북지부 사무국장은 “한 평도 되지 못하는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김 지부장의 몸이 많이 상했다”면서 “최근 의사가 올라가 진단했는데, 근육이 많이 수축되었다며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지부장은 현 상태에서는 내려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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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 지부장의 식사와 몸 상태를 살피고 있는 이들은 해고된 택시노동자이다. 2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상주하며 김 지부장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이 중, 최기원 노동자는 3번의 해고를 경험했다. 최씨는 “무사히 내려오기만 바랄뿐”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 “우리를 위해 저렇게 희생을 하는데, 빨리 전액관리제가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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