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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방 "스펙보다 보람때문에 해요", 전주 샛별야학 교사들

'배움' 갈망하는 어른들 위해 야학봉사 나선 청년들 이야기

주현웅( chesco@tistory.com) 2016.04.11 12:25

"때로는 흔들리고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 두손을 불끈쥐고 힘차게 살아 나간다~"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어느 `학교`의 교가 중 한 소절이다. 교가의 가사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인 것 아닌가 싶지만,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이게 딱이다!" 싶단다.


바로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샛별야간학교(이하 야학)'의 이야기다. 198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현재 매일 주중 오후 7시~10시까지 수업을 진행한다. 교가의 가사처럼 폐교위기를 맞이하며 흔들린 적도, 지치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이내 활력을 되찾아 지금은 힘차게 살아 나가는 중이다. 


현재 이곳은 후원자들의 기금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교사들 상당수는 봉사를 하는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들의 경우 사정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인생 2막'을 열고자 하는 40~60대 연령층이 대부분이다. 이 학생들은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큰별반'과 '초ㆍ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작은별반'으로 나뉘어져 매일 이곳에서 주경야독(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한다)을 하고 있다.


<2016년도 제 1회 전북지역 검정고시>를 치르기 이틀 전인 지난 8일과 시험 당일인 10일. 이틀에 걸쳐 '대치동 뺨치는' 야학의 교육열을 담아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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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를 코 앞에 둔 시점의 전주 샛별야학 교사들



[4월 8일(금) 오후 7시] D-2 "고3 교무실인 줄..."


검정고시를 이틀 앞둔 이 날. 야학 교무실의 분위기는 마치 고3 학급의 교무실을 보는 듯했다. 이곳의 교사들은 "dish의 뜻으로 알맞은 것은?"과 같은 식의, 대학생으로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뭇 진지하게 풀고 있었다.


수학을 담당하는 황병준(25.전북대 심리3) 교사는 "학생들이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랑 수학에 어려움을 느껴, 역대 기출문제들을 분석한 후 전략적으로 실전에 대비해야 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암기과목은 잘하세요. 관건은 수학과 영어에요. 그래서 기출문제들을 분석해보고 출제빈도가 높은 유형들을 우선적으로 가르쳐 드립니다. 물론 학생분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수학이랑 영어를 어려워하는 건 저희 학교 다닐 때도 그랬잖아요? 이건 만인의 공통인가봐요(웃음)"


익명을 요구한 교사 A씨는 "그래도 학생들의 학구열만큼은 대치동 뺨친다"면서 본인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들 낮에 일하고 오시는 거라 피곤들 하실텐데, 혹시라도 보충수업 같은 게 잡혀도 싫어들 안 하세요. 오히려 '당연히 해야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공부에 열성적이에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도 있어요"


검정고시가 대개 4개월 단위로 치러짐에 따라 이곳의 교사들은 기본 임기 8개월을 채워야 한다. 최소 두 학기 이상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도중에 취업하면 봐준다"는 내부적인 불문율이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취업이 아닌 다른 이유로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업을 위해 반드시 나와야 하는 주3일 외에도 보충수업, 수학여행, 워크숍 등의 추가 일정들이 교사들 개인 학업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황병준 교사는 야학에서 12개월을 보냈다. 황씨는 "학생들이 저를 너무 좋아해서 안 놔주더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야학에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예전에 후원이 없어서 야학이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요. 또 교실에 물이 새서 대야를 가져다 놓았던 적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전부 나아졌지만, 당시의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도 어머님 아버님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그리고 당당하게 합격까지 하시고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죠. 그래서 임기도 연장하게 됐고요"


[같은 날 오후 10시] 골목이 어둡고 좁다. "이렇게까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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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야학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교사들


교사들은 이날 밤 10시가 돼서야 집으로 귀가했다. 야학이 어둡고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교사들 또한 이 길을 걸어 집에 간다. 영어수업과 연구보직을 맡고 있는 이초연(25.전북대 영문4) 교사는 이 골목에 처음 왔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야학봉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에 처음 왔을 때 한참을 해맸었어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찾아내긴 했지만, 눈앞에 두고도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특히 야학이 건물지하에 있는데, 내려가는 계단도 엄청 좁고 가파르거든요. 근데 공부를 하겠다고 여기까지 용케 찾아 오시는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까 뭐랄까...와 정말 대단하시다 싶었어요"


[4월 10일(일) 오전 8시] D-day "어머님~! 긴장하지 마시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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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당일 고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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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당일 교사들이 응원, 가채점 중이다. (왼쪽부터 이초연 교사, 민세령 교사, 황병준 교사)


시험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다는 야학 교사들은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지정 고사장인 전주 온빛중학교에 모였다. 이곳에서 교사들은 '사랑하며 노력하며, 샛별야학' 현수막을 고사장 담벼락에 붙이고는 전단지 홍보에 나섰다. 새로운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검정고시 응시자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 이 때문에 홍보가 어려워져 지쳐갈 무렵, 야학의 학생 두 명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자신감 때문인지 두 학생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어머님! 아버님! 긴장하지 마시고요, 잘하실 수 있어요! 평소대로만 하시면 돼요, 아시겠죠? 혹시라도 긴장되면 이거라도 드세요! 화이팅!!!!"


학생들도 고맙다며 반가워했다. 그러면서도 이내 긴장감을 드러냈다.


"영어가 제일 걱정이구먼! 영어만 잘해도 좋을텐디...다른 건 걱정말어~" 


야학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는 교무ㆍ영어담당 민세령(25.전북대 심리2) 교사는 "만에 하나 답지를 안 바꿔주는 등의 문제가 생겨 우리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고사본부에 쳐들어갈 각오까지 돼있다"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민씨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늦게 대입을 치러 보다 바쁜 상황이지만 "스펙보단 내 보람이 우선"이라며 야학 교사로 봉사 중이라 밝혔다.


"뭣 좀 되어 보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작년에 우연찮게 단기 사회봉사로 시작했다가, 아예 교사로 들어왔어요. 이제는 그 마저도 임기가 끝났지만, 다시 강사(보직없이 수업만 진행)로 들어 오겠다고 말해놨어요. 저는 내 만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참 많거든요. 가끔씩 피곤하다가도 같이 고생하며 봉사하는 교사들과 어머님 아버님들이 공부하시는 모습들을 보면 정신차려질 때가 많아요. 또 졸업하시는 모습을 보면 헤어지는 게 아쉽긴 해도 정말 뿌듯하거든요"


이초연 교사는 임기를 거의 끝마치고 취업을 준비 중이다. 그러면서 "평소 밤 10시에 야학을 끝마치면 면접스터디를 간다"고 했다. 졸업을 유예시켜 가면서까지 취업준비에 몰두하고 있지만 야학 일정 만큼은 빠지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언젠가 한 어머님이 제게 영어를 배우시고는 치약에 적힌 영어를 혼자 읽으셨대요. '페리오(PERIOE)치약'에서 'PERIOE'를 읽으신 거에요.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도 정말 많이 기뻐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셨음에도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세요. 그런데 야학에 오시는 분들은 그 갈망이 얼마나 더 크시겠어요. 실제로도 다들 정말 열심히 하셔요. 제가 그 분들께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취업을 준비 중이기는 하나, 가치있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겐 야학이 그런 곳이에요"


한편 이날 시험에 응시한 야학 학생들 전부는 무사히 시험을 끝냈다. 수학문제가 예상보다 어렵게 출제돼 학생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기는 했으나, 교사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듯 보였다.


영어가 제일 걱정이라던 학생 L씨는 가채점을 해본 결과 "이야~이거 찍은 건데 맞았구먼!"하며 즐거워 했다.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도 야학에서 성실히 공부한 L씨는 이번에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후 5시경, 시험을 최종적으로 마치고 한데 모인 야학 구성원들은 다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간의 노력에 서로 박수를 보내며 이렇게 외쳤다. 


"어둠이 밀려올 때에~ 세상을 비추는 샛별이 되리라~!"


이날 시험의 최종결과는 다음 달 12일 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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