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정치/지방 장애인 활동가들이 전국노래자랑 녹화장에서 피켓을 든 이유

7월 23일 전국노래자랑 '남원시편' 녹화장을 찾은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6.08.10 16:20

“내 목에 칼을 들이밀며 시설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여기서 죽여 달라고 말할 거에요”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폭염에 잠시 서있었다고 땀이 줄줄 흐른다. 지난 7월 23일 정오, 따가운 볕을 맞으며 피켓을 들고 있던 올해 39살의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정해선씨가 말했다.

정 대표는 대구의 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한 지 올해로 10년차다.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지만, 아직 시설에서 보낸 삶에 비하면 짧은 자립생활이다. 그런 그에게 장애인생활시설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 대표는 시설에서 야구배트로 하반신을 맞아 골반이 탈골되는 경험을 했다.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정 대표는 당시를 “아픔보다 더한 고통은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거에요”라고 말했다. 11살에 시설에 입소하여 2~3곳의 시설을 전전하며 사춘기를 보냈고 20대 청춘을 보냈다. 그 흔한 수학여행은 둘째로 치고 사람다운 대접을 받은 기억을 꺼내기도 힘겹다.

크기변환_IMG_1250.JPG

(사진 설명) 남원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원회가 7월 23일 남원 춘향골체육관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이들은 남원시가 일방적으로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전원조치하기로 결정했다며 크게 반발했다.

일상적이었던 폭력. 그는 시설에서 나고 자라 직원까지 된 이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것만이 가능했다. 그것도 말할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

“나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자유 의사 같은 것이 있겠어요? 병원에 가더라도 침대에서 떨어졌다고 말하면 제가 당한 피해는 모두 없던 것이 되요.”

이 아픈 기억이 그가 10년 동안 탈 시설 운동을 했던 이유다. 그리고 탈 시설 10년이 된 올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 낸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남원 평화의 집 폭행 사건’이 바로 그 사건이다.

1.jpg

(사진 설명) 한기장복지재단이 운영한 남원 평화의 집은 수 년동안 생활재활교사들이 장애인들을 폭행했다. JTBC 시사프로그램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이 사건은 남원 ‘평화의 집’이라는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일하는 생활재활교사들이 수 년동안 장애인들을 상습 폭행한 사건이다. 생활재활교사들은 장애인들을 마치 격투기를 하듯 폭행했고, 성추행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18명이 입건됐고 2명의 생활재활교사가 구속됐다.

이 사건을 TV 뉴스를 통해 접한 정 대표는 “장난감으로 생각한거죠”라고 말했다. 직감이다. 18년을 시설에서 살아 본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시설 관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속된 한 생활재활교사는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의 성기를 잡는 등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반복 행동 등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지 절대 성추행을 한 것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 간극 안에서 장애인들의 인권유린은 벌어진다. 도가니 이후 정부는 시설에 대한 여려 대책을 마련했지만, 비웃기라도 하는 듯 더 끔찍한 유린이 벌어졌다. 남원 ‘평화의 집’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유료 시설이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자본주의의 논리마저 통하지 않는 곳이 시설이라고 하면 과한 진단일까? 보호라는 미명 아래 폭력은 묵인된다. 정 대표의 경험처럼 때론 거짓으로 폭행이 포장되기도 한다.

크기변환_IMG_1205.JPG

(사진 설명) 남원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와 전북장애인차별철폐 활동가들이 전국노래자랑 '남원시편' 녹화장 안에서 피켓을 들었다.

7월 23일 정 대표를 만난 곳은 남원 춘향골체육관이었다. 전북 장차연을 비롯해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 6명의 관계자들이 이곳에서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다. 이들이 피켓은 든 체육관에서는 전국노래자랑 ‘남원시 편’ 녹화가 진행됐다. 송해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과 출연자들의 경연을 보기 위해 남원시민 약 2000여 명이 모였다. 많은 남원 시민들이 모인 곳, 장애인은 이날 피켓과 현수막을 든 이들이 전부였다. 이들이 든 현수막에는 “장애인이 살 곳은 시설이 아닌 여기! 바로 우리 동네입니다!”였다.

크기변환_IMG_1170.JPG

(사진 설명) 남원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와 전북장애인차별철폐 활동가들이 전국노래자랑 '남원시편' 녹화장 안에서 피켓을 들었다.

남원시청은 지난 7월 20일 ‘평화의 집’에 대해 시설폐쇄 행정처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생활재활교사의 인권유린과 일상적 폭력으로 고발당하고 4개월 만이다. 이날 남원시청은 ‘평화의 집’의 시설폐쇄를 발표하며,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22명의 타 시설 전원조치 계획도 밝혔다.

남원시청은 이날 발표의 포인트를 시설폐쇄에 찍었다. 그러나 전국대책위는 타 시설 전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날 발표에 박수를 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김병용 전국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남원시청이 시설폐쇄 결정을 내린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발표 내용을 보면 이 사건을 빨리 처리하고 무마하고자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이환주 남원시장과 가진 면담을 환기시켰다. 전국대책위는 당시 ‘평화의 집’ 사건 후속 대책을 논의하면서 ‘2017년 자립생활주택 10개소 마련 및 1개소 당 5천만원 지원’을 제안했고 남원시는 필요성을 동의하고 함께 협의하기로 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제안은 ‘평화의 집’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탈시설, 자립생활을 남원시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뜻에서 한 것”이라면서 “당시에 이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합의했는데, 현재까지 협의체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환주 남원시장은 현재의 장애인 시설 수용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뜻에 공감했다. 그런데 지금 발표 내용은 타 시설로 전원조치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남원시는 탈시설을 원하는 거주인을 위해 내년에 공동생활가정(최대 4명) 1동과 주간보호센터 1동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대책위는 이 계획에 대해서는 ‘요식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크기변환_IMG_1238.JPG

(사진 설명) 남원 평화의 집 전국대책위와 전북장애인차별철폐 활동가들이 전국노래자랑 '남원시편' 녹화장 안에서 피켓을 들었다.

‘전국~노래자랑’, 송해 할아버지의 노래자랑 시작을 알리는 외침에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그리고 행사장 가장 뒤편에서 장애인 활동가들도 함께 피켓을 들었다. 그 순간 공무원들과 행사 관계자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처음에는 제지하고자 했으나 녹화 중단을 우려하여 그저 지켜만 봤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현수막 내용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장애인 활동가들의 피켓시위는 다음 날(7월 24일)과 7월 25일에도 계속됐다. 최근 남원 평화의집을 운영한 한기장복지재단은 이 시설을 기부체납하기로 발표했다. 그리고 남원시는 연말에 신설되는 부안의 한 시설에 피해 장애인들의 입소를 추진하고 있다. 김병용 집행위원장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이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사회 바깥으로 또 다시 장애인들이 내몰리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