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의 여걸, 2선의 민주당 선대위원장 추미애후보가 정치신인인 시민운동가 김형주 에게 패배한 사건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사망을 상징하는 일대사건이었다. 모인터넷신문에서 이번 총선의 키워드를 '탄핵, 여성, 계급'이라고 꼽을 정도로 중요한 '여성'으로서 화제와 관심을 불러모았던 뉴스메이커중의 하나였던 우리의 추다르크는 온몸을 던져 50년전통의 평화개혁정당 민주당을 살리고자 2박 3일간의 3보1배도 마다하지 않았건만 왜 처참하게 패배하였는가? 반대로 독재자의 딸로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조차 하지 못했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이 차떼기정당의 악명과 방탄국회, 탄핵정국속에서 절대위기에 봉착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한뒤 안정적으로 차기 당대회에서도 한나라당 대표가 될 수 있는 발판인 121석이나 얻으면서 자리를 안정시킬 수 있었는가?
어떻게 죽은 박정희는 산 삼보일배를 이겼을까?
- 박근혜의 귀환과 추미애의 몰락의 비밀
박근혜와 추미애는 사실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나서서 '지역주의'를 무기로 사용한 '사실상의 여성 당대표'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 처지였다. 그런데 추는 죽고 박은 살았다. 무엇이 이 둘의 운명을 갈랐을까?
추미애는 잘 알려진대로 '정치인다운 정치인'으로 알려진 드문 여성이고 스타덤적 리더쉽이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에서도 일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가 민주당이 탄핵정국속에서 완벽한 위기에 봉착하자 조순형대표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으려다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3보1배라는 의외의 전술을 활용하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국회로 재진입하는 듯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20석이상의 원내교섭단체, 심지어는 30석정도를 내다보기도 하였고, 그 30석속에 추미애는 당연히 들어있었다.
추미애의 실패는 지역주의에 대한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군사정권 시절 호남의 '야당형'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5.18정신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와 상호결합하며 일정한 긍정적 효과를 산출하는 측면도 없지않았으나 김대중 집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이미 내용이 변화하고 있었다. 김대중집권이후 지역주의는 이미 '지역성장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하는 '여당형'의 '보수적 지역주의'로 전화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광주항쟁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유지되었지만 김대중정권이 강력하게 주장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침탈을 받은 '개혁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호남인의 강력한 지지는 김대중정권 시기를 경과하며 호남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이미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영향을 받은 민주주의'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변형된 지역주의'는 안정을 깨뜨리는 어떠한 정치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DJ적자정당'으로서의 민주당과 추다르크가 DJ의 유산을 잇는 작업은 민주당간판을 유지하고, DJ의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방법이나 광주에서 3보1배를 하는 것으로는 애초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DJ의 혈통의 계승은 의외로 현실의 핏줄이나 이름과는 무관하게 부산출신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치지형위에서 장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 지역주의'는 아무리 그것이 적은 것이라하더라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지킬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명분이 좀더 있는 쪽에 힘을 싣자는 대중들의 기대심리 그 자체이다. '개혁이데올로기'는 처참한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켜줄만한 특별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좋으니 좀 '바꾸자'는 단순한 심정들의 종합물이다.
'대통령탄핵'은 호남의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민주주의'를 건드렸다. 호남민중들은 분노하고 탄식하였다. DJ정신의 구현체로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에게서 호남민중들은 즉시 지지를 거두어들였다. 세가지 수준의 문제의식이 작동한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민중을 거스르는 대의제권력'에 대한 문제지기가 작동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깊이있게 고민되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첫째로, '개혁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주도할 대통령이라는 권력체를 무너뜨려 '개혁체제'를 가로막고 '불안정체제'를 조성하는 '탄핵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둘째로는 '보수적 지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성장'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여당'을 방어하고 키워주어야한다는 열망을 품게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역주의, 개혁이데올로기의 3층위가 상호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호남지역에서조차 추미애와 민주당을 거꾸러뜨렸다. 호남민중들은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하였다. 지역주의는 변형되었다. 민주주의는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내부로 숨어들어갔다.
추미애와 민주당은 호남민중들의 의식과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응분의 댓가를 받았다. 추미애는 낙선했고 민주당은 전남의 5석이외에는 지역구 의석을 얻지못해 '전남자민련'이 되었다. 특히, 추미애는 민주주의의 심판의식과 '개혁이데올로기'가 가장 정교하게 조합된 주민들인 서울지역에서 출마하였고 서울지역 주민들은 훈련된 정치인으로서의 추미애 대신에 잘은 모르지만 차리리 정치신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내세웠다.
반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선거구에서 70%의 지지를 얻어 박근혜는 당선되었고, 붕괴직전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의 제1야당으로 새진용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지역을 평균 60%의 득표율로 싹쓸이하고 부산, 경남, 울산등지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지역을 석권하였다. 똑같이 지역주의적 득표전략을 펼쳤는데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왜 성공하였을까? 대통령 탄핵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실제 탄핵이 이루어졌을 때 대구경북을 포함하는 영남지역에서도 촛불시위와 한나라당 규탄시위가 빈발했다. 그런데도 왜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투표행태가 만들어졌을까?
이것은 영남지역주의의 특성과 역사와 연관이 있다. 영남지역주의는 태생부터 '보수적 지역주의'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거기에 영남지역주의는 김대중집권 시절부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데올로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보수주의'가 더해지면서 더욱 보수화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밑바닥에 갈린 호남지역주의가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열린우리당 지지성향이 나오지만, 민주주의의 동력이 실리지 못한 영남지역주의가 '보수주의'의 추동력위에서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나올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지역주의는 '차떼기' '탄핵'등등에 할말을 잃고 한나라당 지지를 거두어들여야할 상황에 처했다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은 다시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이는 시간이 지나자 영남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부산경남지역은 열린우리당이 가볍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가 부산경남지역마저 한나라당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기 되었다. 여기에 서울 강남지역에서부터 '부자들의 지지'가 확인되기 시작하였다. 말도안되게 돈을 잘버는 사람들이 말도안되는 정치적 행태를 보인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지역에서도, 강남에서도 승리했다. 의석수는 약간 줄었지만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는 성과를 냈다. 홍준표, 김기춘등 수구보수정치는 생존하였다. 사라져야할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말이 안되는 일이 반복되면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이전의 법칙으로 해명되지 않는 그 무엇, 새로운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하지않을까?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17대총선에서의 박근혜의 무사귀환에서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징후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반복될 때, 즉 규칙이 실종되었을 때 '강력한 규칙'을 세우기 위해 등장한다. 어쩌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현재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사회문제들, 경제적 어려움과 높은 자살률, 급증한 신용불량자와 청년실업률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식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적 대안을 선택하는 집단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일수도 있다.
17대총선에서야 한나라당이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생존하는 전략을 찾았고, 워낙 지역주의청산, 수구정치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 더 이상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남지역을 많이 넘어서서 확장되지는 못하였지만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 자체로 내포한 법칙인 '고용없는 성장'과 '선성장 후분배' 기조 때문에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이고보면 한나라당식의 수구보수주의와 청년실업자, 신용불량자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 점유는 열린우리당에 무한책임을 부과하여 만약 대중들이 열망하는 '성장과 안정'을 주지못할 경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개혁에 기대를 걸고있는 대중들이 일시에 다른 대안을 찾아나설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때 다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 가운데 한나라당의 파시즘적 변신과 대중적 지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 경우 매우 파괴적인 상황이 올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군가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그것은 전북지역 총선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말한대로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이희운목사, 김경일교무등 '도인'들이 한 성스러운 일을 도가 높지않은 정치인이 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가 아니라 소신공양을 했어도 불가능한 일을 했기때문이었다. 이미 호남주민들은 추미애와 민주당을 버렸다.
그러나, 영남주민들은 한나라당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고,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얼근 구원하였다. 영남지역주의 특성이 박근혜를 구했고 나아가 한나라당이 예비파시즘당이 되는 운명을 점지하였다. 이 한나라당은 파시즘당으로 성장하든지 후천적으로 교화되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과 근본에서는 유사하고 정치스타일만 다른 '개혁을 외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정당'으로 거듭나든지 할 것이다. 죽은 박정희가 박근혜를 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박근혜를 살린 것 같지만 박근혜의 산 몸에 죽은 박정희의 영혼이 빙의(憑依)하는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를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구도 살리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해를 입힐수 없다. 그러나, 죽은 박정희는 자신의 딸을 살려 자신의 파시즘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의 재생산 대리인으로 삼았으므로 한국사회에 엄청난 불행의 폭풍을 몰고올 수도 있다. 모름지기 죽어가는 것은 죽어가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구시대 정치의 불행의 싹이 새시대 정치적 코드인 '여성'을 매개로 피어오르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어떻게 죽은 박정희는 산 삼보일배를 이겼을까?
- 박근혜의 귀환과 추미애의 몰락의 비밀
박근혜와 추미애는 사실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나서서 '지역주의'를 무기로 사용한 '사실상의 여성 당대표'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 처지였다. 그런데 추는 죽고 박은 살았다. 무엇이 이 둘의 운명을 갈랐을까?
추미애는 잘 알려진대로 '정치인다운 정치인'으로 알려진 드문 여성이고 스타덤적 리더쉽이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에서도 일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가 민주당이 탄핵정국속에서 완벽한 위기에 봉착하자 조순형대표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으려다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3보1배라는 의외의 전술을 활용하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국회로 재진입하는 듯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20석이상의 원내교섭단체, 심지어는 30석정도를 내다보기도 하였고, 그 30석속에 추미애는 당연히 들어있었다.
추미애의 실패는 지역주의에 대한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군사정권 시절 호남의 '야당형'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5.18정신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와 상호결합하며 일정한 긍정적 효과를 산출하는 측면도 없지않았으나 김대중 집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이미 내용이 변화하고 있었다. 김대중집권이후 지역주의는 이미 '지역성장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하는 '여당형'의 '보수적 지역주의'로 전화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광주항쟁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유지되었지만 김대중정권이 강력하게 주장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침탈을 받은 '개혁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호남인의 강력한 지지는 김대중정권 시기를 경과하며 호남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이미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영향을 받은 민주주의'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변형된 지역주의'는 안정을 깨뜨리는 어떠한 정치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DJ적자정당'으로서의 민주당과 추다르크가 DJ의 유산을 잇는 작업은 민주당간판을 유지하고, DJ의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방법이나 광주에서 3보1배를 하는 것으로는 애초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DJ의 혈통의 계승은 의외로 현실의 핏줄이나 이름과는 무관하게 부산출신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치지형위에서 장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 지역주의'는 아무리 그것이 적은 것이라하더라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지킬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명분이 좀더 있는 쪽에 힘을 싣자는 대중들의 기대심리 그 자체이다. '개혁이데올로기'는 처참한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켜줄만한 특별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좋으니 좀 '바꾸자'는 단순한 심정들의 종합물이다.
'대통령탄핵'은 호남의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민주주의'를 건드렸다. 호남민중들은 분노하고 탄식하였다. DJ정신의 구현체로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에게서 호남민중들은 즉시 지지를 거두어들였다. 세가지 수준의 문제의식이 작동한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민중을 거스르는 대의제권력'에 대한 문제지기가 작동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깊이있게 고민되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첫째로, '개혁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주도할 대통령이라는 권력체를 무너뜨려 '개혁체제'를 가로막고 '불안정체제'를 조성하는 '탄핵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둘째로는 '보수적 지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성장'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여당'을 방어하고 키워주어야한다는 열망을 품게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역주의, 개혁이데올로기의 3층위가 상호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호남지역에서조차 추미애와 민주당을 거꾸러뜨렸다. 호남민중들은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하였다. 지역주의는 변형되었다. 민주주의는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내부로 숨어들어갔다.
추미애와 민주당은 호남민중들의 의식과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응분의 댓가를 받았다. 추미애는 낙선했고 민주당은 전남의 5석이외에는 지역구 의석을 얻지못해 '전남자민련'이 되었다. 특히, 추미애는 민주주의의 심판의식과 '개혁이데올로기'가 가장 정교하게 조합된 주민들인 서울지역에서 출마하였고 서울지역 주민들은 훈련된 정치인으로서의 추미애 대신에 잘은 모르지만 차리리 정치신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내세웠다.
반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선거구에서 70%의 지지를 얻어 박근혜는 당선되었고, 붕괴직전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의 제1야당으로 새진용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지역을 평균 60%의 득표율로 싹쓸이하고 부산, 경남, 울산등지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지역을 석권하였다. 똑같이 지역주의적 득표전략을 펼쳤는데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왜 성공하였을까? 대통령 탄핵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실제 탄핵이 이루어졌을 때 대구경북을 포함하는 영남지역에서도 촛불시위와 한나라당 규탄시위가 빈발했다. 그런데도 왜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투표행태가 만들어졌을까?
이것은 영남지역주의의 특성과 역사와 연관이 있다. 영남지역주의는 태생부터 '보수적 지역주의'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거기에 영남지역주의는 김대중집권 시절부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데올로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보수주의'가 더해지면서 더욱 보수화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밑바닥에 갈린 호남지역주의가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열린우리당 지지성향이 나오지만, 민주주의의 동력이 실리지 못한 영남지역주의가 '보수주의'의 추동력위에서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나올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지역주의는 '차떼기' '탄핵'등등에 할말을 잃고 한나라당 지지를 거두어들여야할 상황에 처했다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은 다시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이는 시간이 지나자 영남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부산경남지역은 열린우리당이 가볍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가 부산경남지역마저 한나라당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기 되었다. 여기에 서울 강남지역에서부터 '부자들의 지지'가 확인되기 시작하였다. 말도안되게 돈을 잘버는 사람들이 말도안되는 정치적 행태를 보인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지역에서도, 강남에서도 승리했다. 의석수는 약간 줄었지만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는 성과를 냈다. 홍준표, 김기춘등 수구보수정치는 생존하였다. 사라져야할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말이 안되는 일이 반복되면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이전의 법칙으로 해명되지 않는 그 무엇, 새로운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하지않을까?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17대총선에서의 박근혜의 무사귀환에서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징후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반복될 때, 즉 규칙이 실종되었을 때 '강력한 규칙'을 세우기 위해 등장한다. 어쩌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현재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사회문제들, 경제적 어려움과 높은 자살률, 급증한 신용불량자와 청년실업률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식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적 대안을 선택하는 집단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일수도 있다.
17대총선에서야 한나라당이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생존하는 전략을 찾았고, 워낙 지역주의청산, 수구정치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 더 이상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남지역을 많이 넘어서서 확장되지는 못하였지만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 자체로 내포한 법칙인 '고용없는 성장'과 '선성장 후분배' 기조 때문에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이고보면 한나라당식의 수구보수주의와 청년실업자, 신용불량자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 점유는 열린우리당에 무한책임을 부과하여 만약 대중들이 열망하는 '성장과 안정'을 주지못할 경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개혁에 기대를 걸고있는 대중들이 일시에 다른 대안을 찾아나설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때 다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 가운데 한나라당의 파시즘적 변신과 대중적 지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 경우 매우 파괴적인 상황이 올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군가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그것은 전북지역 총선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말한대로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이희운목사, 김경일교무등 '도인'들이 한 성스러운 일을 도가 높지않은 정치인이 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가 아니라 소신공양을 했어도 불가능한 일을 했기때문이었다. 이미 호남주민들은 추미애와 민주당을 버렸다.
그러나, 영남주민들은 한나라당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고,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얼근 구원하였다. 영남지역주의 특성이 박근혜를 구했고 나아가 한나라당이 예비파시즘당이 되는 운명을 점지하였다. 이 한나라당은 파시즘당으로 성장하든지 후천적으로 교화되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과 근본에서는 유사하고 정치스타일만 다른 '개혁을 외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정당'으로 거듭나든지 할 것이다. 죽은 박정희가 박근혜를 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박근혜를 살린 것 같지만 박근혜의 산 몸에 죽은 박정희의 영혼이 빙의(憑依)하는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를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구도 살리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해를 입힐수 없다. 그러나, 죽은 박정희는 자신의 딸을 살려 자신의 파시즘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의 재생산 대리인으로 삼았으므로 한국사회에 엄청난 불행의 폭풍을 몰고올 수도 있다. 모름지기 죽어가는 것은 죽어가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구시대 정치의 불행의 싹이 새시대 정치적 코드인 '여성'을 매개로 피어오르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총선결과, 생각가는대로 썰풀기는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박근혜 vs 추미애 두 번째 이야기 노회찬 vs 김종필 세 번째 이야기 이남순 vs 단병호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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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달
2014.03.14 12:53
구름이 걷혀야 아름다운 산천을 볼수있겠지요.... -
민주
2014.03.14 12:53
" 열우당이 공모하면 로맨스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
선거법을 위반하고, 오히려 법이 잘못됐다고 우기고, 경제난국 타파엔 힘을 쏟지않고 총선에만 올인하고, 대선 후 민주당을 배신하고, 호남을 버리고, 대통령 만들어 준 당을 죽이기로 나선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고, 소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한나라당을 끌어들인 겁니다.
한민공조라고 우기는데,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찬성하면 사사건건 반대해야 하고, 민주당이 어떤 정책을 발의 할려면 한나라당이 찬성하는 것인지 봐가며 발의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열우당이 한나라당과 이라크 파병이나 FTA농산물협상을 공모해서 통과시킨 것과, 한나라당 44명을 입당시킨 것에 대하여는 왜 아무 말들이 없는지...
열우당이 하면 로맨스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입니까?
그리고 열우당 비례대표중 호남인은 단 1석도 없다 합니다.
이래도 광적으로 열우당을 지지했습니다.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차떼기에 친일파당, 배신과, 말바꾸기와, 떼쓰기나 경제망친 당들 보다는 정통민주세력이고 정책정당이며 개혁을 진행해나가는 민주당이 그나마 제일 떳떳하지 않나요?
열우당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분당론까지 나오고, 영남을 파고들기 위해서, 비례대표 배분 등을 볼때, 그리고 대선 후의 전력 등을 볼 때 호남을 버릴 가능성이 높은 데도 호남인들은 맹목적으로 열우당을 지지했습니다.
민주당을 짓밟아야만 다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우당과 노사모들, 그리고 다른 반대세력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한 것은 아닌지, 정말로 지지해야 할 정당을 버린 호남인들은 대오각성해야합니다.
" -
시민
2014.03.14 12:53
" 다시 낮두꺼운 대그빡이 티비 화면에 보입니다.
싫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거두절미 합니다.
전라도 놈인 본인은 민주당 참패 소식을 듣는 순간
쓸개를 빼 놓았습니다.
영남이 푸르댕댕한 색깔로 도배를 칠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 바탕에는 우리가 패악질이라 말했던 ""영남패권""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한답니다.
완장이라는 소설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17대 국회의원 중 초선에
해당하는 아이들 하는 꼬라지 지켜 보세요.
그럼 권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요.
상고출신 짱구에 모조리 당했습니다.
상고 졸업해서 어떻게 사시에 합격했나 의구심이 들었드랬습니다.
짱구 돌아가는 걸 보구 알았습니다.
영남쪽은 애시당초 내논 자식이였습니다.
그러나 호남에서 최소한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갖출 수 있는
인원은 되겠구나 생각 했습니다만 전라도놈들은 어느새 해바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권력의 맛을 알았던 것입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대그빡 돌아가듯
전라도 놈들은 과거지사 어찌 되었든 권력을 향해 대그빡 돌렸습니다.
인물이 신선하다구요?
개거시기 빠는 소리 하지 맙시다.
전남쪽에서 나온 열우당 아이들 면면을 보세요.
지난 민주당 정권에서 낙오 되었던 아이들과 권력에 빌붙어 먹었던
아이들이지요.
그런 아이들이 개혁을 한다구요?
국정을 이끈다구요?
개거시기라 하세요.
같은 전라도 놈으로써 쪽팔려 향후 4년동안 쓸개 빼놓고 살아 갈 생각입니다.
광주민주성지는 이제 과거의 공간적 틀로써 존재 할 뿐입니다.
민주당은 다시 일어 섭니다.
이땅의 평화통일을 위한 막중한 책임이 민주당에 있습니다.
늦었지만
민주당을 사랑하고 민주당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주당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민주당은 영원합니다.
6개월 안에 열우당 아이들 사분오열 됩니다.
두고 보세요.
상고출신넘 하는 꼬라지 보구서 취임하기전 떡쪄먹고 시루 엎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과 함께 대북특검 했습니다.
그리고 아까운 경영자 자살의 길로 내 몰았습니다.
근래 25일동안 국내에 없었습니다.
중국과 마카오에 다녀 왔습니다.
갸들요. 우릴 희한하게 쳐다봅니다.
후진타오 직무정지 시켜봐요.
대번 제2의 텐안먼 사태 일어나요.
상고출신넘 없어도 대한민국 시스템 잘 돌아가요.
전 말했어요.
세상사람 1000명중 999명이 탄핵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 그것은 분명 명분있는 정당한 행동이며 선택이였다""라 하겠다고...
시방 때가 어느때인데 헌재 알기 개거시기로 알고 웬 지랄염병을 합니까?
여하튼 헌재 판결은 기다려야 합니다.
쓸개 없는 나는 두눈 부릅뜨고 지켜 볼겝니다.
주둥아리로 흥한놈 주둥아리로 망하는 꼬라지를....
그리고 잠자기전 주문을 외울 것입니다.
""귀신은 뭐하나 모르겠다. 주둥아리 나불대는 버러지 같은 놈 안잡아가고...""
상고출신넘 뵈기 싫어 다시 한국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6개월내 다시 돌아온다면 그땐 열우당 아이들 땅따먹기 한 결과가 나와 있겠지요.
약올라서 두서없는 글 썼습니다.
전라도 놈으로써 대그빡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핍박받았던 지난 시절엔 정의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우당 아이들에게 신의나 정의가 있습니까?
상고출신넘 퉁소 부는 소릴 어찌 또 들어야 합니까?
벌써부터 스트레스다.
""상고출신넘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뱀꼬랑지: 뜸했던 이유는 또 걸리면 못 나옵니다. 그래서 몸을 사렸습니다.
절제가 가능 했던 이유는 상고출신넘을 향해 두고두고 딸을 잡으며
오르가즈니션을 해야 하겠기에.....
" -
와이드샷
2014.03.14 12:53
" 민주당은 이승만의 독재와 박정희에서 전두환을 거쳐 노태우에 이르는 독재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보루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민주당이 2004년에 와서 군소정당으로 몰락했다. 그 몰락을 놓고 아쉬어 하거나 슬퍼할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그 원인을 살펴보고 미래의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정치세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권력을 쥔 자가 능율적인 권력의 행사를 위하여 패권적으로 권력집단으로서 당을 운영하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독재에 항거하려 하는 집단도 그 결속을 위하여 패권적인 위계화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본원적인 한계에서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새천년 민주당도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위계화된 패권으로 조직화된 당은 패권적 권력을 중심이 잡히지 않으면 바로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중심축이 사라진 다음 명분과 권위를 지니지 않는 대표성을 가진 민주당은 자연 혼란의 와중으로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그들의 지지자들로부터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뢰는 바로 그들과 태생을 같이한 열우당으로의 지지가 전이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열우당의 승리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열우당의 승리는 패권적 권력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패권적 권력은 그 패권적인 권력으로서의 본원적 내부 속성에 대해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한, 그것은 대단히 신뢰할 수 있는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보여진다는 장점을 가진다.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의 중심축이 존재하는 이상 열우당은 그 패권적 권력집단으로서의 결속이 용이하다. 하지만 열우당의 다수당으로서의 승리는 열우당의 미래를 밝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민주당이 그러하였듯이 패권적 권력의 한계를 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영남이나 수도권으로부터 지속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당이 가진 결속력이다. 그 결속력은 대표성을 가진 자에 대한 패권적 권위의 부여를 통하여 지지자들에게 과시되며 지지자를의 이탈을 막는다. 한나라당의 패권적 결속은 민주당이 지닌 패권적 결속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한나라당은 최고권력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 패권적 권력을 유지해왔던 것이 아니라 영남패권주의라는 집단이기주의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에 있어서 대표성은 영남패권주의라는 집단이기주의를 가려주는 가면으로서의 이미지에 불과하여 그 역할에의 충실성만이 요구되어진다. 이회창도 하나의 가면일 뿐이며 최병열이나 박근혜 또한 가면으로서의 이미지일 뿐이다.
반면 민주당의 패권적 권력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의 지형도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 패권적 위계의 중심축을 잃어버렸다. 거기에다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민주당은 호남패권주의라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정당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호남에게 있어서 민주당의 정치가들은 그들의 지역이기주의를 만족시켜주는 대행자가 아니라 그들만의 정치적 권력을 향유하는 기득권자에 지나지 않은 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호남인들이 자신의 지역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양심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민주당을 버렸다”라는 비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만, 호남이 열우당을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의 지역이기주의에 어느 정도라도 이바지해줄 수 있는 실력 있을 가능성이라도 있는 대행자를 선택했다는 현실적인 판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왜 민주당에 희망이 있는가?
민주주의의 초기에는 정당의 바탕이 되는 지지자들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권적 권력을 가지는 중심 인물들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실천에 대한 일반 지지자들의 정치적 인식과 사고가 낮기 때문에 생겨나는 필연적 현상이다. 그러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 국민의 지적수준과 정치에 대한 인식도가 성숙하게 되면서 정당은 당내 민주화과정을 거치며 실제적인 민주주의적 정당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정치에는 군사독재의 흔적이 사라지고 민주화가 되었다 할지라도 정당정치에 있어서는 독재의 흔적인 패권적 패거리 정치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열우당이 신생 정당이며 당내 민주화를 구호로서 주장하긴 했으나 그것이 말로만으로 그치고 이런 저런 패거리들로 모여서 급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열우당 또한 민주당이 김대중이란 이름의 우산아래서 패권적 패거리 정치의 정형성을 그대로 유지하다 결국은 와해되어버리는 전철을 똑같이 밟을 위험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유이다. 열우당이 다음 대권 선거를 맞이할 동안 패거리 정치를 청산하고 당내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적 정치를 펴나갈 가능성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현 대통령에 가까운 패거리들(주류)와 차기 가능 대권 후보자(비주류)간에 권력투쟁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열우당에게는 당내 민주화를 통해서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정치적 인물을 만들어낼 시스템이 전혀 구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열우당 내 새롭게 등장한 정치신인들 또한 그들의 새로운 정치에의 안목과 소신을 보여주기 이전에 패거리적 투쟁에 거수기나 쇼맨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패거리 정치인 패권정치는 그 스스로 환골탈퇴 할 수 없다. 그것이 새로이 거듭나려면 패거리로 형성될 수 있는 인자들이 그 정당 내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지지자들의 외면에 의해 민주당은 패권정치의 요소를 완전히 제거 당했다. 이런 민주당이 맞이하고 있는 운명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든지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소생하는 가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스스로 그 어느 것을 선택할 권리나 자유조차도 없다. 지금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몇몇의 인물들이 민주당을 지킨다 해서 민주당이 소생하는 필요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요, 그들이 민주당을 떠난다 해서 민주당이 소멸하게 되는 충분조건도 아닌 것이다. 결국 민주당의 소멸과 소생의 여부는 민주당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버릴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정치에 있어 한 정당의 와해와 새로운 정당의 탄생은 결코 그 지지자들의 선택이며 그들의 권리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패거리들이 그들의 권력에의 기생 혹은 탐욕을 위해 스스로 와해시키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변모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민주당은 이전의 당의 와해와 소멸의 역사와는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민주당이 역사과정을 통하여 그 정치적 패거리 구성원들의 모임이라는 것으로 정의되지 않는 민주당 그 자체로서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었던 정치가들과는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민주당 그 자체로서의 본성, 민주당이라는 실재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현재 소멸의 와중에 봉착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안타까움은 민주당을 구성하여왔던 정치가 개인에 대한 동정이나 그들에 대한 아쉬움에서 아니라, 민주당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 당을 구성하는 정치인들의 모임과는 관계없는 실재적 존재로서의 민주당임을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실재적 존재고서의 민주당은 지지자들을 참여와 당내 민주화를 통한 민주적 정당정치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바람직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맞이한 민주당을 올바르고 바람직한 민주주의적 정당정치의 산실로 만들어 발전시켜갈 수 있는 가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택에 달려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민주당 지지자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민주당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민주당의 정당정치에로의 참여이다.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열정과 자신의 운동적 에너지까지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바를 향해 투자하여야 한다. 한 나라의 역사와 미래를 좌우하는 그 기초적 토대로서의 정당정치가 이 한반도에서 해나가야 할 사명은 무척이나 많다. 남한 내부적으로는 계층의 갈등을 줄여야 하고, 지역간의 갈등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통일과 자주적 번영까지 이루어나가야 한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명은 그저 권력에의 탐욕만을 추구하는 패거리 정치몰이꾼들에게 맡겨놓고 구경이나 하면서 비평하면 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이전까지는, 아니 지금의 한나라당이나 열우당에서도 당의 지지자들이 그 당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정강과 정책을 만들고 발전시켜나가는 시스템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다르다. 지금의 민주당은 민주당이라는 실재가 그 소생의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원래 당의 구성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지지자들의 당내 정책과 실천에의 참여는 당내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며 동시에 충분조건이다. 패권적 정당정치는 지지자의 참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지지자들이란 선거 때 자신들을 위한 거수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제 민주당이 소멸하느냐 회생하느냐의 선택은 민주당지지자들에게 달렸다.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민주당의 소멸과 회생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주의 토대인 당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놓고 이것을 즐거이 맞이하느냐 그것을 외면하느냐의 선택이 지금의 민주당지지자들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 역사적 사명을 놓고 그것을 귀찮아 외면하는 자 그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비평할 자격이 없다.
" -
boriwon
2014.03.14 12:53
" 썰은 썰일뿐이고.
그 썰을 참고로 한두마디씩 추가되면 썰에게 큰 자랑인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꼬리논문들이 많군요.
좀 더 장황한 썰을 풀어주시게 친구.
기왕이면 독자들이 ""아! 그렇게 해야겠구나!""하는 자각을 만들수 있는 내용도 넣어주시고." -
나도전라ㅗ
2014.03.14 12:53
위글들 잘보았어요
하지만 심히 편치않아서~~
전라도놈이라고 자칭하시는분 혹시 정말로 전라도 사람맞아요???
넘하넹 민주당의 몰락 박근 ㅇ 의 등장 새로운 노동당의 선전
아니 어찌하여 지역주의 고리타분한 감정을 다시잉 너무짜증나서 쓸수가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