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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의 사고의 조율은 생각보다 짧지만 짧은만큼 유동성은 매우 크다.그만큼 문학은 다른 장르에 비해서 사고의 자유성을 최대한 인정받는 그나마 폭이 큰 장르이다.

글을 창작하고자 하는 본능은 인류의 첫 서막을 열때부터 그림과 함께 나타났고 그 만큼 본능으로써의 글짓기는 조금더 깊게 말해 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인류는 이어나가고 있는것이다.

문학이란 개념안에 사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의 구조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문학이란 지금의 현대문학까지 이어지기 위해 수많은
잔가지들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다.물론 그 잔가지들은 아직까지 문학의 범주안에서 공부되고 있고 현재까지 알려져 온것들이 대부분 남아있다. 우선 문학은 글을 배운다는 것으로 글을 조합하고 해석하는 능력의 문학이다.그만큼 인류의 창의력이 십분 발휘되는 놀라운 산물이기도 하다.

인류의 창의력의 산물, 문학

문학은 고대문학이라는 원시종합예술에서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최초의 시가문학으로 전래되는 구지가와 수많가지 설화를 내포하는 서사문학,그리고 현 대한민국의 검열제도처럼 가장 많은 수난을 겪었던 고려시대의 평민문학인 고려가요까지. 귀족문학으로 대표되던 경기체가와 같이 평민문학을 대표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남녀상열지사의 표현방식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던 문학이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일종의 애정소설과도 같았던 고려가요가 지금보면 참으로 썰렁한 내용이 아닐수 없다. 가까운 예를 들어 '가시리'를 보면 이렇다. "님이여 어찌가시려 합니까 날보고 이젠 어떻게 살라고 가시려합니까 잡아두고 싶지만 그러면 아니올세라 그래도 보냅니다. 그러니 꼭 가셔서 다시 돌아오세요"라는 지극히 순정적인,절제된 여인의 심정이 잘 살아난 노래다.

하지만 고려, 그 당시엔 떠난 님을 가지말라고 하던것 조차 상열지사에 포함되는 음란한 말이였던 것 같다. 가지말라고 하지도 못했을 고려시대 여인네들의 가슴은 아마 숯덩어리가 되지 않았을까?

남녀상열지사를 다루었던 고대문학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려시대 최고의 상열가는 아무래도 '쌍화점'이 아닐까 한다. 상화라는 것은 떡을 파는 가게의 이름으로 상화떡은 술을 넣어 발효시킨 떡을 말한다.

'쌍화점'의 내용은 이렇다. 한 여인네가 쌍화점의 상화떡을 사러갔다가 그 가게의 주인인 회회아비가 자신의 손목을 잡았고 삼장사라는 절에 불을 켜러 갔더니 중이 또 자기의 손목을 잡았다.다음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용이 손목을 잡았고 끝으로 술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 술집 주인이 역시 자기의 손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온통 손목을 잡았다는 말뿐이지만 손목을 잡았다는 그 말의 의미는 그만큼 그 당시 음란했던 사회상을 풍자한다고 봐도 됐음직 하다. 왜냐하면 이 가요가 지어질 당시 충렬왕이 재위중이였는데 그 왕은 참으로 색마였다고 한다. 쉽게말해 여색에 빠져 정치엔 관심이 없었고 그저 여인들과 밤을 즐기기에 바빴던 모양이다.

고려시대엔 가지말라고 떼쓰는것 조차 음란했다던데 '쌍화점'에서는 손목을 덥석 잡았으니.. 검열하는 사람들의 가슴들은 두근반 세근반 하지 않았을까?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 봐도 손목을 잡는다는 의미는 참으로 신비롭다. 현재역시 손목을 잡힌다는것은 굉장한 일이지 않은가?

이처럼 문학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의 검열을 받기도 하며 창작과 검열이라는 두개의 사고와 공존해왔다. 비단 고전문학만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현대문학에 와서는 시와 소설,희곡,시나리오,수필 등 과 같은 보다 세부적인 장르로 갈라짐으로써 검열하는 사고역시 나뉘어졌다.

하지만 문학은 타 어떤 장르보다도 검열의 사고가 적은곳으로 그만큼 문학을 통해 시대의 오류와 모순등을 고발하려는 문인 역시 많이 있다. 적어도 문학에서 만큼은 입바른 소리를 통해 시대에 전달하려는 메세지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의 또 다른 사고의 장르, 음악 안에서 사고의 범위란 얼마만큼이나 통용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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