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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할일이 없는 토요일의 어느 밤이다.지금 내가 보는 시야에서 가장 높다란 키를 자랑하는 전북일보 건물의 등 뒤로 달은 희롱하듯 떠있고 빈속에 피워댔던 담배들은 자꾸 목마름을 재촉한다.

때론 할일이 없을때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상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꾸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게 좋은 기억이든 나쁜기억이든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회상이란 이름으로 마무리짓게 된다.

오늘 유난히 센티한 이 기자의 서문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면 사과한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하려는 말과 쓰고있는 글이 빗나감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척척 써내려가는 손가락을 멈출 힘이 없다. 하지만 분명 하고싶은 말은 할것이고 그 말이 무언가 전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이번 기사는 분량의 초과로 편집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여하지 않아야 겠다는 신념하나로 몇부로 나누어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다. 제목부터 당당하도다! 대한민국에서 사고를 한다는것은..

사고의 동물, 인간

살아가다 보면 생각해보게 되는 여러가지 사념들이 있다.인간은 사고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단 한순간도 아무런 사고없이, 생각없이 살아갈수는 없다.무뇌아라 해도 뇌가아닌 분명 다른 어떤 기관으로든 생각을 할것이다. 생각을 한다는건.바로 판단을 할수있다는 증거고 판단을 할수있다는것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릴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은 바로 그 능력을 가지고 정치도 하고 사회활동도 하고 연애질도 하고 밥도 먹는다.

하지만 굳이 그런 액티브한 활동말고도 그냥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끝나는 생각자체도 있다. 바로 그런 생각들이 지나친 사람들을 우린 흔히 정신분열자 혹은 정신병자로 분류하며 지나친 생각의 방대함을 감금시킨다.

무리한 사고의 끝은 육신의 분열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생각의 방대함들이 우리 인간이란 존재를 성숙시켰고 머리를 키웠다. 옳다 그르다는 것은 생각의 우주에서는 그야말로 티끌같은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일뿐이다.

기자 역시 지나친 사고의 소유자로 항상 인류의 근심걱정을 등에 한가득 실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담배를 뻑뻑 빠는 사람이다. 가끔 그런 지나친 궁상은 객체로 하여금 날 안쓰럽게 만들고 떨어지는 위로한마디가 전부가 될때도 있지만 살면서 궁시렁 거리던 그 많은 생각들이 한순간 창작의 의욕을 불태워 무언가 추진할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이 되기도 한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조차도 난 다른 생각들을 무수히 하며 우주 저멀리 가있는 것이다. 자비의 성자 싯다르타역시 사고의 끝에서 복음하였고 인류의 아버지 예수도 사랑을 하기 위한 사고의 번민 속에서 십자가를 맸으며 한량의 바이블 노자의 무위자연 역시 지나친 사고의 사고를 통해 전파될수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고 가까운 우리네 친구,이웃 혹은 슈퍼아줌마들이 하고 있는 사고들은 매 순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가 그 한계를 명확히 하고있다. 엉뚱한 사고를 자주하는 아이를 가르켜 허접이라 하며 그 도가 지나쳐 스스로 행동하는 아이를 가르켜 주접이라 하고 사고가 없어보이는 아이를 지진아,부진아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네 가까운 인류들은 성자들의 사고처럼 인류애도 바이블같은 사상도 없음을 시인하며 생각은 그저 머리안에서 굴러다녀야만 하는 암적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때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논리가 맞지 않다는것을.. 그리고 생각의 우주는 우리가 스스로 묵인하고 자진검열하는 속에서도 꿈틀거리며 혼자 밀방에서 키득거리게 하는 힘을..

사회활동을 하는 우리들에겐 이런 생각의 실타래들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쉽게 볼수있다. 흔히 예술활동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이에 해당되는데 예술에도 수많가지 종류가 있을것이다. 상식적으로 분류하자면 문학,연극,영화,미술,음악,무용등이 포함되지만 인류에겐 존재 스스로를 예술이라 생각하며 꿋꿋히 버텨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당신 안그래?)

언젠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본 한 전위예술가의 말을 빌리자면 "사고는 곧 나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자극이 된다.그리고 곧 그것은 나의 창의적인 행위를 통해 재사고된다" 육체에 그리는 그림을 통해 옷이라는 사회화를 스스로 부정하던 한 전위예술가였는데 꽤나 멋졌다. 옷이라는 소도구자체를 가식과 허울의 상징으로 보며 인간의 육체자체를 통해 새로운 옷을 그리던 사람이였다.

이처럼 전위예술을 하는 이 사람에겐 사고란 또다른 창작욕구인것 처럼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근간으로 나뉘는 사고란 생산하지 않는 자들의 소심한 근성일뿐이다. 미술뿐만아니다. 얼마전 충무로 역사상 가장 억대피해를 입힌 몬스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통해서도 사고란 그 우스운 경계선상의 군상들을 만날수가 있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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