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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시장에서는 기존에 생각조차 할수없었던 100억이란 방대함으로 우선 그 영화의 본질을 눌러앉친 영화 '성냥팔이소녀의 재림'. 영화계에서도 사고력의 성자로 평가받던 장선우의 본격액션신비극으로써 결과는 100억의 상처를 받고 스스로 자멸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난 이 영화의 작품성 혹은 예술성의 못다한 성과를 부추기자는 것이아니다. 나역시 100억짜리 이 영화를 영화계의 핵폐기물로 바라봤고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고질라로 치부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 권리조차 없는것이 난 이 영화를 보지않았다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영화란 직접 보기전엔 그 어떤한 말도 꺼내서는 않되는 상당히 신중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영화란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도,그리고 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도 직접 보지않고 흘러다니는 괴상한 소문들때문에 어깨에 힘을 빼기 충분한,실로 악랄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이영화를 바라보던 그간 몇달간의 논쟁에 일침을 놓고자 한다. 이 영화는 바로 도덕경에 근간하여 만든 장성우식 호접지몽으로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인식하고 못하고의 피해상을 사이버게임이라는 시대의 산물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장선우의 '실패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하지만 비주얼에 너무 치우친 탓일까? 사람들은 비주얼의 재미에 녹아난 어리숙한 감독의 자질로 막을 내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시사회까지
독보적으로 준비하며 감독과 제작자에게 호된 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어의없었던 것은 그 영화를 만든 감독 장선우의 흐지부지한 태도였다. 그 영화가 잘됐든 못됐든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수 없이 갈라지는 사람들의 입맛인것이고 그 영화를 만들기까지의 생각을 담은 장본인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나로 하여금 뻔뻔할정도로 당당하길 바랬던 한 영화감독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사고의 그릇됨을 스스로 인정하며 자숙하는 자세였다.

자숙이든 무엇이든 쓸쓸한 한 영화인의 우그러 지는 사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난감했고 씁쓸했다. 물론 그의 가슴만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영화란 예술은 기본적으로 상업예술안에 속하기 때문에 독립영화가 아닌이상 대중과 조우하지 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망함과 흥행, 구분짓기

그런 조우속에서 호평혹은 혹평으로 갈라지게 되며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망한영화와 흥행영화로 구분짓는다. 사람들은 이렇듯 갈라놓고 그어놓으며 분류하고 나누기를 좋아한다.그것은 생산하는 사고의 무능력함을 단정짓고 파괴하는 사고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의 진동은 곧 사회의 여러가지 모습들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당을 입맛대로 골라다니는 참으로 줏때없는 정치인을 낳기도 하고 같은국민의 노벨평화상시상을 시샘하여 로비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깍아먹는 정치인역시 낳게한다. 정치라는, 일반인이 생각하기엔 특권계층들만 한다는 그 사고의 고정관념 역시 이런 정치인들의 출산에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는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이지 어느 특권계층만이 자신들을 비호하고 살찌우는 울타리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이처럼 인류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사고라는 우방 또는 적국이 존재함으로써 유지되고 나아가며 행동할수 있다는것을 이젠 조금 깨달았으면 한다.

문학, 음란, 장정일

이제까진 생산하는 사고와 파괴하는 사고의 표본인 영화와 정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사고의 진정한 본질인 문학에 대해서 알아보자. 독자들은 장정일이라는 사람을 기억하는가?

그 사람은 장선우가 영화화하기도 했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저자로 음란성심의로 구속되기도 했던 소설가이다.

창작의 자유란 말이 그처럼 무색했던 적이 없었다.물론 그 사람말고도 '가자 장미여관으로', '알라딘의 요술램프'등을 써내며 교수활동도 같이 하던 마광수라는 소설가이자 교수도 있었다. 그 사람은 창작의 자유를 검열하는 문학의 심의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 강단을 떠난 경우이다. 물론 그전에 강단에서 수업도중 연행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이든 지나친 사고는 그 시대의 위험인물로 지적되며 더군다나 대한민국과 같은 군사독재정권시절이 많았던 나라일수록 사상의 불건전함을 이유로 구속되고 강금되는 사례가 많았다. 그만큼 자유라 외칠수
있는 나라란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해서 이루어 지는것이 아니라 사고의 방대함을 인정하는,그리고 그런 사고의 다양함을 존중할줄 아는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것이다.

특히 문학이란 존재는 그 시대의 시류를 가장 잘 반영할수 있는,영화와 함께 시각을 마비시킬수 있는 특성상 참으로 제약이 많다. 물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 비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이 오히려 그 시대의 여러가지 모순들을 풍자적으로 들어내 주는 카타르시스또한 크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곳에서조차 사고의 조율은 자유로울까?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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