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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35년의 꿈, 정년이 아니라 복직입니다

김진숙씨 35년간 복직 투쟁중…암 이겨내고 출근 쟁취 일선에 다시 서

장영식( icomn@icomn.net) 2020.08.2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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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와 한진중공업지회는 지난 6월 23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김진숙의 정년이 아닌 복직 투쟁을 지지하며 끝까지 함께 할 것을 선언했다.>

 

 

꿈을 꿉니다. 35년 만에 푸른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에서 용접을 하는 꿈을 꿉니다. ‘김진숙’의 꿈이 좌절된 것은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일터였던 공장에서 짤리게 됩니다. 이른바 ‘해고’가 된 것입니다. 그 해고의 세월이 35년입니다.

 

“35년 동안,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꿈

회사 규모가 줄어도 줄지 않았던 꿈

경영진이 몇 번이 바뀌는 세월 동안에도 바뀌지 않았던 꿈

해마다 다른 사안에 밀리고,

번번이 임금인상과 저울질 되면서 상심하고 소외된 세월이 35년입니다만,

저는 그 꿈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그 꿈에 다가갈 마지막 시간 앞에 서 있습니다.

제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6월 23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복직 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그이의 마지막 투쟁의 목표는 ‘정년’이 아니라 ‘복직’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사흘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할 때에도 김진숙은 ‘빨갱이’가 아니라 ‘노동자’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비가 오는 날엔 빗물이 스미고 쥐똥이 섞이고 겨울엔 살얼음이 덮인 도시락을 국도 없이 넘겨야 했던 노동자들.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외쳤던 죄는 컸고 유배는 너무 길었습니다.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운 채 낯선 남자들에게 끌려갔던 대공분실의 붉은 방, 노란 방. ‘니 겉은 뺄개이를 잡아 조지는 데’라는 그들의 말을 듣고 제가 처음 뱉은 말은 저는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입니다!’였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고 잡아 왔으니 내일이라도 돌아갈 줄 알았던 세월이 35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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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진숙 지도위원은 7월 28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의 신분증을 크게 확대해서 왔습니다. 그이는 대공분실에 끌려가서 '빨갱이'라고 고백을 강요 받았지만, '선각공사부 선대조립과 용접1직 사번 23733 김진숙'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김진숙은 대공분실에서 사람을 잘못 알고 잡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일이면 당연히 공장으로 돌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 내일이 35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세 번을 끌려갔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징역살이 두 번을 갔다 오고, 수배 생활 5년을 하고, 부산 시내 경찰서를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 지독한 병까지 얻고, 예순 살의 해고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돌아가리라고 믿었던 시간이 35년이나 흘렀습니다. 그 35년 안에는 열사가 된 그림자 섬의 노동자들과 수많은 아저씨들이 함께 있습니다. 35년 전의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35년 전과 같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대로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스물여섯 살에 해고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용노조 간부들, 회사 관리자들, 경찰들에게 그렇게 맞고 짓밟히면서도 ‘저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울며 매달리던 저곳으로 이제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감옥에서 시신으로 돌아온 박창수 위원장은 얼마나 이곳으로 오고 싶었겠습니까! 크레인 위에서 129일을 깃발처럼 매달려 나부끼던 김주익 지회장은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겠습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꿈이 있는 곳, 우리 조합원들이 있는 곳, 그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김진숙은 꿈에 그리든 공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35년의 해고자 생활 속에 몹쓸 병까지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병을 간직한 채 흔적도 없이 숨었습니다. 85호 크레인에 내려와 사람들이 묻는 안부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일일이 답을 했지만, 돌아서면 황량했습니다. 묻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지만, 답을 하는 그이에게는 수백 수천이었습니다.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진숙은 그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꼭꼭 숨었습니다. 그러다가 외로운 투병을 딛고 세상으로 나온 것은 김진숙의 오랜 동무인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박문진 지도위원의 고공 농성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박문진 씨가 어느 인터뷰 기사 중에 “외롭다”는 말이 사무치게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 지독한 외로움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기를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의 ‘간절함’과 ‘관심’이 모인다면, 영남대의료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영남대의료원 사태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과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고공 위의 동무를 향해 무작정 길을 나서 뚜벅뚜벅 걷고 또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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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진숙 지도위원은 항암을 떨쳐내고, 영남의료원까지 걸어갈 것을 결심합니다. 영남의료원 고공 위에는 그이의 동무인 '박문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뚜박뚜벅 걸어서 영남의료원 고공 위의 동무를 만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김진숙은 항암의 그림자를 넘어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길을 걷다가 길을 잃고 방황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함께 걷기로 했습니다. 전국의 시민들이 이 걸음에 마음과 힘을 보탰습니다. 한 사람의 걸음이 열 명이 되고, 백 명이 되었습니다. 영남대의료원에 도착하는 날에는 수백 명이 되었습니다. 그 길 위에는 항암 투병 중인 사제도 있었고,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향했던 희망버스도 있었습니다. 그 힘을 받아 고공 농성 중이었던 박문진 지도위원도 땅을 밟았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투쟁은 매일 아침 시퍼런 여명이 밝아오는 영도조선소 앞에서 출근 선전전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출근 투쟁 58일 차가 되던 날에는 문규현, 서영섭 신부와 함께 이주민 노동자들이 복직 투쟁을 함께 했습니다. 문규현 신부는 전주에서 소성리 사드반대 미사를 봉헌하고 영도로 오셨습니다. 평양에서 임수경을 안아주듯 김진숙을 안았습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단체협약에는 만 60세가 되는 그해 12월 31일을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진숙은 2020년이 만 60세입니다. 그이는 정년을 맞기 전에 복직을 원합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리운 조선소에서 푸른 작업복을 입고, 용접을 하고, 타의에 의해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걸음으로 당당하게 영도조선소 정문을 걸어서 나오기를 꿈꿉니다. 그날이야말로 김진숙은 지난날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야말로 박창수와 김주익 그리고 곽재규와 최강서와 함께 노동해방을 맞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야말로 모든 노동 형제 자매들의 정의가 일으켜 세워지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 한 노동자를 통해 실현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항암을 하면서 하루종일 토하며 서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할 때, 이 힘든 걸 뭐하러 하나 싶다가도 이대로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자리를 못 찾아 헤맬 것 같기도 하고, 희망버스 타고 와서 눈물로 손을 흔들어 주고 가시던 그 간절한 손짓들이 눈에 밟혀 버텼습니다”라며, “새벽마다 목이 쉬도록 출근선전전을 하는 지회장과 간부들, 그리고 2011년 울고 웃으며 끝까지 함께했던 희망버스 동지들. 또 한 번 기적을 만들어내고 우리 손으로 승리의 역사를 써봅시다”라고 말합니다. 김진숙은 복직 투쟁 승리를 상징하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외칩니다. 35년의 꿈이 담겨 있는 한 노동자의 복직 투쟁에 함께 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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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시퍼런 여명이 그림자의 섬으로 스며드는 시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을 위한 출근 투쟁이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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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 투쟁에 함께 하신 문규현 신부가 마치 평양에서 임수경을 말없이 안아주듯 김진숙을 안아주고 있습니다. 문규현 신부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 때에도 '수요미사'에 참석해서 지지와 연대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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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진숙의 꿈은 복직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푸른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에서 용접을 하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발걸음으로 당당하게 조선소 정문을 걸어나오는 것이 꿈입니다. 그이의 35년의 꿈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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