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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변방의 노동자들이 말하는 한국GM 공장 폐쇄

사내하청, 비정규직, 협력업체노조... “우리의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8.02.28 15:55

“해고는 살인이다”

27일 오후 전북 군산시청 앞에서 열린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를 위한 군산시민 결의대회’는 비장했다.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군산지회가 주최한 결의대회는 노동자들이 주를 이뤘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벌써 2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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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금속노조 한국GM지부는 ‘귀족노조’, ‘강성노조’라는 프레임과도 상대해야 했다. GM에 대한 ‘먹튀’ 논란과 지방정부를 비롯한 행정의 ‘무능’도 언론을 통해 제기됐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비난은 노조에게 쏟아졌다. 

27일 결의대회에서 김재홍 한국GM지부 군산지회장도 노조를 향한 비난에 대해 억울한 심정을 밝혔다.

“우리는 강성노조, 귀족노조 아니고 묵묵히 일만 하다가 희망퇴직하고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받은 평범한 노동자입니다. 우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주세요.”

한국GM 노동자들의 절절한 호소가 이어진 이날 결의대회에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직격탄을 맞게 되는 또 다른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바로 협력업체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동안 이들은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와 철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들에게 쉽게 마이크를 내주는 이도 없었고, 언론의 주목 역시 받지 못했다. 참소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협력업체에서 일한 것이 잘못인가요?”

한국GM 군산공장 1차 협력업체 K사에서 일하는 A(37세)씨는 올해로 10년 차 노동자이다. 한국GM 유니폼을 입고 참석한 노동자들 곁에 그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호를 외쳤다.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살짝 소주 향기가 묻어났다. 이들의 사정이 세상에 제대로 공개된 적은 없다. 어쩌면 그가 집회 참가 전 기울인 소주잔은 그 답답함을 속으로 삭이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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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공장에 납품되는 차체 일부를 생산하는 협력업체 K사는 협력업체 중 규모가 큰 업체다. 한국GM의 경영 방침에 따라 군산공장 물량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던 때부터 찾아온 위기에 노동자들은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감내라고 할 수 있죠.” 노조가 있는 이 업체 노동자들은 군산공장의 빠른 쇠퇴에 자신들도 노동조건도 양보해왔다. 주·야를 오가며 새벽별을 보고 퇴근하던 황금기는 짧았다. 군산공장 내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잘려나간 2015년부터 덩달아 이들의 일감도 줄었다. 이제는 가동률 20%에 맞춰 협력업체 노동자들도 노는 날이 많아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잘못인가요?” 집회 구호가 커질수록 그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억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다. G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논리에 의해 헌신짝처럼 버려진 기분. 지금 딱 A씨의 기분이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A씨는 자신의 잘못이었다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을 것 같다. 오직 한국GM 군산공장만 생각했다.

이 업체 노조 지회장 B씨도 이날 집회에 함께했다. “협력업체도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우리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은 ‘암울’ 그 자체. 3~4년의 긴 고난을 견뎌왔다. 한국GM의 방침에 따른 물량 축소에 협력업체도 어려워지면서, 희망퇴직을 신청한 동료들도 늘어갔다. 어림잡아 최근 2년 동안 1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의 어려움에 상여금 대폭 삭감과 각종 복지 삭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수했다. 고용불안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견뎌왔는데 지금은 마음이 어떻다고 말하기도 힘이 든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자본은 이익을 창출하고, 우리는 열심히 노동을 한 죄 말고 더 있습니까?”

그 죄 값으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다. 당장 언제 업체가 폐업을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 지난 23일 정부는 군산지역을 ‘고용재난지역’ 선포를 했지만, 갑작스럽게 맞이한 재난 앞에서 이들이 버틸 재간은 없다. “고용보험에 따라 2~3개월 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혜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협력업체들이 받아온 대출에 대한 연장과 몇몇 대책들이 재난지역 선포에 따라 실행이 될 예정이다. 그러나 노동으로 먹고사는 이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

B씨는 “군산공장을 정상화시켜야죠.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것 말입니다”고 소망을 말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관계자는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은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보통 협력업체는 공장 폐쇄 후 몇 개월의 시간이 더 있습니다”면서 “그 기간 인원을 구조조정하고 회사를 축소해서 돌린 후 다시 그 상황을 보게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희망퇴직과 구조조정 등 현실 앞에 놓인 주제들을 두고 노동자 혹 노조는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노동조건 후퇴와 고용불안이라는 예정된 답을 찾아 가는 그 길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이냐는 결국 노동자의 선택이다. B씨는 자신에게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군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 “문자로 해고 통보 가슴이 찢어집니다”

“어제부터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고 있다고 해요.”

결국 올 것이 왔다. 군산공장을 지켜내기 위해 금속노조 한국GM지부가 결의대회를 하며 힘을 모으고 있는 시간, 군산공장 내에서는 피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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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군산공장에 남은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 약 200여명에 대해 도급업체들이 문자로 해고 통보를 시작했다. 오는 3월 31일부로 계약을 만료한다는 일방적인 통보. 지난 2015년 비정규직 1000여명이 잘려나간 그때와 이유는 같다. 도급계약 만료. 이제 더 이상 남는 도급업체는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 J씨는 “그동안 한국지엠 직원들과 같은 일을 했습니다”며 “힘든 일은 우리가 다 했고, 관리자들이 험한 욕을 하면 그 욕을 먹으며 일을 했습니다”고 운을 뗐다.

작년부터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했다. 도급 업체도 3개월 단위로 한국GM과 계약을 맺는다고 들었다. 5년 전 대규모 비정규직 구조조정 이후, 조금씩 줄어드는 일에도 말을 하지 못했다. 문자로 받은 해고 통보, “법적으로는 한 달 전에 통보를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할 거잖아요. 도의적으로 봐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암담하다고 한다. 가정이 있는 이들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중·후반. 한창 일을 해야 하는 나이다. 그러나 일을 새로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기도 하다. 5년 전, 1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리를 잃었을 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다는 것이 J씨의 이야기다.

“그때도 힘들었지만, 당시에는 한국GM 하청도 있었고, 현대중공업 하청도 있었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이제 가능하기나 할까요?”

비록 비정규직이라도 한국GM은 내 일터, 내 공장이라는 마음으로 다녔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하는 것을 보면서, 무시를 경험하게 됐다. 무엇보다 그를 아프게 한 것은 자신이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것.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정말 더 마음이 암담합니다.”

비정규직지회, “비정규직 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되었으면”

27일 열린 결의대회에는 또 다른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그들은 다른 노동자들처럼 앉아서 구호를 외칠 수 없었다. ‘한국GM 대량해고 해결하라’, ‘쌓아놓은 이윤으로 총고용을 보장하라’ 3년의 소송 끝에 정규직을 인정받은 이들. 지난 3년 간 어느 누구도 귀 담아주지 않았던 주제. ‘불법파견’과 정규직, 비정규직 모두의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총고용’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기 위해 그들은 서서 집회에 함께했다.

이들은 3년 전,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가 계약 만료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계약 만료 직전 소송을 제기한 것이 이유였을까? 노조에 가입한 이들은 더 이상 사내하청으로도 일할 수 없었다. 그들은 1000여명의 비정규직이 군산공장을 떠나간 2015년부터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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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인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은 “그동안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우선 해고를 막지 못한 것이 공장 폐쇄로 이어진 것”이라면서 “먹튀 GM의 이기적인 결정에 대한 철회를 외치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은 지난 13일 공식 발표됐다. 그날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 발표가 있던 날. 자연스럽게 이들의 승소는 공장 폐쇄 결정에 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월 말까지 한국GM은 이들의 고용에 대한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이들의 해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공장 폐쇄 저지 투쟁과 고용 보장을 위한 투쟁. 한국GM 비정규직지회는 이 두 싸움을 힘겹게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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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사내하청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이번 사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전북도청, 군산시청 등 지방정부가 준비한 공청회, 간담회 등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고용 보장 등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취급받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반복됩니다. 비정규직이 잘리고 그 다음에는 협력업체, 정규직, 공장 폐쇄. 이건 단지 한국GM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의 짧은 이 말 한마디는 지난 5년 동안 군산공장에서 벌어진 일을 축약하고 있다.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 변방의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어쩌면 무서운 예언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편, 이번에 해고 통보를 받은 한국GM 군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28일,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군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 말도 안 되는 행태를 참으면서 일을 했습니다”면서 “힘든 몸을 참고 일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근무하는 직원이 있어서입니다. 힘없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막막합니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이들은 군산공장 폐쇄 철회와 일방적인 해고 통지 철회 및 총고용 보장, 희망퇴직자에 한해 생계비 지원을 요구했다. 이들의 울림에 이 사회는 어떤 반응을 할까? 앞으로 남은 한 달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까? 이제 남은 한 달 동안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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