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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 문제는 사건 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뿐 아니라 정부와 법조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그간 고용노동부의 예규와 법원 판례, 그리고 근로기준법 시행령이 각각 다른 통상임금 범위를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사건 공개변론에서는 각각의 통상임금 범위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또한 이후 최종선고는 그간 혼란을 야기했던 통상임금 범위를 법적으로 정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개월 뒤 최종 선고에서 통상임금의 범위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통상임금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별적인 소송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과 근로기준법 시행령의 불일치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혼란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다.

 

▲[출처= 노동과 세계 변백선 기자]

 

‘통상임금’ 둘러싼 정부와 법조계, 노동계, 재계의 ‘동상이몽’

 

통상임금은 노동의 대가에 따라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다. 통상임금은 연장 근로수당과 연차유급휴가수당, 법정 휴가수당의 산정 근거가 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수당이 많아질수록 통상임금이 확대돼 각 수당의 액수도 많아지게 된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 따르면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정기적이고 일률적인 금품은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행정지침을 통해 근로기준법보다 엄격한 통상임금 범위를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1988년부터 ‘통상임금 산정지침’으로 적용범위를 고시했는데, 대부분의 수당 및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시켰다.

 

고용노동부의 예규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정기성’과 ‘일률성’ 이외에도 ‘고정성’, ‘1임금 산정기간(1개월) 내 지급’이라는 통상임금 범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여금과 정근수당 등과 식대, 월동수당, 가족수당도 생활보조·복리후생적 금품이라며 제외했다.

 

이와 달리 대법원의 판례 경향은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는데, 95년에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임금이분설을 폐기하고 모든 임금을 근로제공의 대가로 규정했다. 96년에는 임금이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것이라도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2002년에는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통상임금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책보고서를 통해 “고용노동부의 예규는 근거 없이 근로기준법 시행령 외의 새로운 요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매우 부당한 행정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에 대해서도 “법원은 법령을 해석할 수 있을 뿐 법령을 창조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법령에도 없는 고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상임금 적용범위 혼란, 노동계 vs 재계로 불붙어

 

통상임금 적용범위를 둘러싼 혼란은 노동계와 재계의 갈등으로 번졌다. 현재 재계는 고용노동부의 행정지침에 따라 1임금 산정기간 내 지급되는 것만 통상임금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그간 통상임금 체계가 왜곡돼 장시간 노동을 낳아온 만큼, 근로기준법에 따라 통상임금의 범위 확대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형중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됐을 때) 3년 치 비용을 다시 지불한다고 계산하면 미니멈으로 약 38조가 나온다”며 “중소기업 같은 경우는 14조원 정도를 일시 지급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도산할 지경에 있는 회사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일자리 문제로 환원해서 그 비용을 지불했을 경우 약 30만개 정도 일자리가 나온다”며 “기회비용까지 치면 상당 부분 국가 경제 전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게 지불됐을 경우, 현장에도 근로자 간에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대법원 판결이 난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해야 되는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이런 소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재계가 38조를 일시에 부담하는 일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통상임금이 확대되면 그동안 사용자가 위법하게 축적한 초과이윤이 정상화되면서 노동소득분배율이 개선되고 내수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책보고서를 통해 “근기법 시행령에 맞춰 통상임금을 산정하면 장시간 노동이 억제되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한국의 노동자들은 OECD노동자들에 비해 3개월 정도 더 일하는 셈인데, 한국의 노동시간을 OECD평균수준으로 낮추면 상당 수준으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통상임금’ 논란 지속될 수도

 

오늘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개변론에서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을 집중적으로 심리하게 된다.

 

복지후생차원에서 지급된 각종 수당과 1개월을 초과해서 지급되던 명절 상여금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 그리고 노사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수당을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것이 유효한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최종 판결을 내릴 경우, 현재 160여 개에 달하는 통상임금 소송이 잇따라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노동자의 통상임금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의 최종판결로 통상임금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의 해석과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등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 명확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혼란이 가중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별적인 소송에 의지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책보고서를 통해 “통상임금 정상화를 위해서는 임금의 구성항목과 통상임금 적용범위 제도개선,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기 위한 근로시간 규제 등이 필요하다”며 “특히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의 규정에 맞게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즉시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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