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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전주시내버스 2개 노·사(신성여객, 전일여객)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사 대표가 도장을 찍은 단체협약안을 건네고 악수를 나누는 동안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월요일부터 팩스기에서 삑(도착 알림) 소리만 들리면 사측의 불참 공문은 아닐까 깜짝 놀라곤 했어요”

 

함께 박수를 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버스노조 사무국장 정태영(30)씨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각 버스회사의 교섭 거부 공문을 그동안 가장 먼저 받아보았던 정 사무국장은 3일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옆에서 함께 박수를 쳐주던 이 중에는 곽은호 제일여객 분회장도 눈에 띄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박수를 받아야 할 이였다. 제일여객 사업주는 이날 불참했다.

 

▲7일 노동부 전주지청장실에서 신성과 전일여객 노사가 단체협약에 체결했다. 제일여객은 이날 사업주의 불참으로 체결을 못했다.

 

곽 분회장과 제일여객 조합원들은 이 소식을 당일 접하고 실망했지만, 그래도 조인식 현장에 나와 회사에 작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였다.

 

“교섭 막판에는 꼭 이런다. 징계는 할 거 다하면서”

 

제일여객은 이날 단체협약에 조인을 하기로 지난 1일 이미 한 차례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조인 체결 하루 전날인 6일 오후, 이성희 노동부 전주지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노조와의 채무문제를 풀지 못했다며 조인식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성희 노동부 전주지청장은 기자들에게 “제일여객 사업주가 단체협약 체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전해왔다”면서 “다만 회사가 노조에 지급해야 하는 몇 가지 채무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못해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제일여객 사업주의 뜻을 대신 전했다.

 

이 지청장에 따르면 8일까지 회사는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로 했지만, 8일 교섭은 열리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교섭은 매번 노조에서 요청 공문을 보내오고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보내지 않았다”면서 “사무실에서 기다리는데 오지 않아 우리가 직접 찾아갔다”고 전했다.

 

노조사무실에서 노·사 관계자는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곽 분회장은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담담하게 “조합원들은 허탈했겠지만, 단체협약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측의 만행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순위”라면서 “부속합의도 사측을 덜어주려는 합의라서 서둘러 하지 않을 생각이다”고 말했다.

 

매달 꼬박꼬박 밀려 지급되는 월급, “이제는 고소장 미리 만들어 놓는다”

"월급, 한국노총에만 몰래 지급했다 걸리기도"

 

민주노총 제일여객분회가 회사의 만행이라고 주장하는 것 중에는 임금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작년 7월 2차 파업을 정리하고 업무에 복귀하면서 월급이 제날짜에 들어온 적이 없다. 사실 그 전에도 월급이 제날짜에 들어온 적은 드물었다. 매달 10일이 월급날이지만, 7월 월급은 8월 22일로 12일이 늦었다. 8월 월급은 9월 27일, 12월 월급은 1월 21일에 지급되었다.

 

곽 분회장은 고소장 하나를 보여주면서, “매달 월급이 10일 이상 늦는다”면서 “고소라도 안하면 더 늦을까봐, 이제 미리 고소장을 준비해 매달 11일에 고소한다”고 말했다. 곽 분회장이 보여준 고소장은 1월 월급이 밀릴 것을 예상해 사전에 작성한 것으로 2월 12일에 제출할 예정이다.

 

▲월급이 매달 밀려 지급되자, 민주노총 제일여객분회는 미리 고소장을 준비하고 있다.

▲제일여객분회가 작성한 고소장.

 

그는 “우리 월급날이 설날이다”면서 “그동안 파업이다 뭐다 해서 가족들에게 걱정을 줬는데, 우리 버스노동자들은 월급도 못 받고 명절을 보내게 생겼다”고 한숨을 쉬었다.

 

회사 관계자는 “매달 적자만 1억 5천만 원이다”면서 “다른 회사는 땅이라도 담보로 대출을 받겠지만, 우리는 차고지도 임대로 운영하는 것이어서 대출도 못 받는다. 최근 상여금은 지급했다”며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다.

 

회사는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민주노총은 이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2011년 10월, 사측은 월급을 복수노조인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에게만 몰래 지급했다 걸린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10월 15일과 16일, 17일 3시간 운행거부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회사는 18일에서야 월급을 지급했다.

 

그 후 회사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차별하지 않고 월급날보다 약 10일 이상 늦게 지급하고 있다.

 

▲2011년 10월 17일, 제일여객 사측이 한국노총 조합원에게만 월급을 지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노총은 즉각 운행거부에 들어가고 차고지에서 항의했다.

 

“월급에서 공제하고는 왜 조합비를 안주나”

 

밀리는 것은 임금뿐이 아니다. 회사가 민주노총 조합원의 임금에서 공제하여 노조에 제공해야 하는 조합비도 지난 9월부터 5개월째 밀려있다. 곽 분회장은 “조합비를 주지 않는 것은 정말 이해 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조합원들의 월급명세서에는 조합비를 공제했다고 명시가 되어있지만, 노조가 받은 것은 작년 7월과 8월분이다. 이마저도 소송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받아야 하는 조합비는 2천만 원정도. 밀리면 밀릴수록 제일여객이 지급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너무 어렵다. 사실 조합비 등 각종 공제도 명세서에 표시만 그렇게 한 것 뿐이다”며 노동자들에게 실수령액을 지급하기도 벅차다는 뜻을 전했다. 버스노동자들의 실수령액은 각기 다르지만 대략 130만 원~180만 원 수준이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노동자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 조합원 최병윤(54세, 12년 근무)씨는 “버스노동자들 중에는 신용불량 등으로 집안이 어려울 때,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많다”면서 “그래서 우리끼리 한 달에 10만원, 20만원 모아서 마을금고처럼 만들었는데, 이것마저 회사는 공제 후에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 금고는 노동자들이 급할 때, 대출을 낮은 금리로 해주고, 연말에 이자를 각자 배분에서 나눠 갖는 데, 이 돈이 약 6억 정도 된다”며 “사실 민주노총은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파업까지 수개월을 월급도 못 받고 해서 형편이 궁한데 회사에서 주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 어렵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제일여객분회 사무실. 7일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실망한 조합원들이 모여있다.

 

못 받는 돈이 많아지는 만큼 들어가는 돈이 커지고 있다. 곽 분회장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이를 받기 위해 법률 비용으로 1년 조합비의 1/3을 쓰고 있다”면서 “좋은 변호사를 만나 한 건에 220만 원인데, 현재 4건의 소송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노조에 들어오는 돈이 없다 보니 수임료를 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밀리고, 밀리고, 밀리고...악순환만 반복, “회사가 로드맵이라도 제시해라”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단체협약’은 조합원들에게 그나마 한줄기의 빛이다. 그래서 7일 조인식에서 곽 분회장은 “담담했다”고 말했지만, 조합원들의 상심은 컸다. 김진태(가명, 54세, 7년 근무)씨는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났다”며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3년을 싸웠다. 단체협약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아니냐”고 허탈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그것 때문에 거리에서 누워 자기도 했고, 용역들에게 맞기도 했다. 단협이 없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때는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기자와 만나는 중간에도 곽 분회장과 비번인 조합원들에게 운행 중인 조합원들로부터 “조인식에 제일여객 사업주가 나타났냐”라는 물음의 전화가 수차례 왔다. 

 

그렇다면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방도는 없을까?

 

민주노총 전북본부 이창석 사무처장은 “교섭을 참여하면 회사가 전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지는 없고, 노조에게 지급해야하는 돈을 깍아 달라는 말만 한다”며 “이제부터 소급적용하자고만 하는데, 막말로 까주고 싶어도 까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전임자 임금, 운전자 보험료 등 노조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이 상당하다”면서 “경영상태가 어려우니 못 주겠다고 하기 전에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가겠다는 전망을 보여 줘야하는 된다”고 회사가 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곽 분회장은 “단체협약은 협약대로 체결하자는 의지를 보여주고, 채무와 관련된 부분은 부속합의를 통해 신뢰를 갖고 대화를 해도 된다”면서 “그런데 7일처럼 불참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며 실망감을 표현했다.

 

회사의 경영상태가 부실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지난 5월, 오현숙 전주시의원은 시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시내버스 회사가 전주시에 제출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자기자본이 잠식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그러나 버스노동자의 퇴직적립금을 누락시켜 이렇게 된 것이다. 이 금액을 적용하면 전주시내버스 5개사는 전부 자본잠식 상태”라고 시내버스 회사의 재정 부실을 꼬집었다.

 

오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일여객은 2011년 부채가 약 41억 원. 근속에 따라 매년 적립해야 하는 퇴직금을 전혀 적립하지 않았다. 경영상태가 이대로 가면 노동자들에게는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제일여객분회는 지난 3년동안의 투쟁을 담은 사진을 모아서 사무실 앞에 전시했다.

 

한편, 제일여객 대표이사 김아무개 씨는 “전주시가 올해부터는 손실 부분에 대해 용역을 통해 보전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본인도 아파트 등 은행에 저당 잡혀가며 제2금융까지 이용해서 현재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다른 곳에 지급해야 할 것이 17억이 넘는다”며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노조에 이러한 사정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면서 “단체협약 체결도 좋지만 체결되면 다 돈인데 체결이 능사는 아니다. 책임을 져야하는데, 현실을 직시해보자는 뜻을 노조에 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주가 큰 도시도 아니고 버스회사는 적자를 면할 수 없다”면서 전주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오현숙 의원은 제일여객이 단체협약을 맺지 못했다는 소식에 “버스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기본적인 책무를 잊은 것 같다”면서 “과연 전주시가 부실 경영이 개선되지 않는 버스회사들의 적자를 시민혈세로 지원하는 것이 맞는지 정말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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