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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시행 7년을 맞은 2011년 한국사회에서 불법적 성산업 착취구조에 의한 여성들의 죽음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작년 7월, ‘포항괴담’으로 알려진 유흥업소여성들의 연이은 죽음은 여전히 성매매가 경찰과 업주의 유착관계 속에서 성산업이 보호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줬다.

 

2011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를 위한 여성/인권행동 ‘민들레순례단’은 군산에서 포항까지 10년의 터울을 두고 발생한 똑같은 죽음, 불법적 성산업의 착취에 희생된 여성의 넋을 위로하는 여정을 21일부터 시작했다.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한 민들례순례단은 서울, 제주,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 군산으로 향했다. 이번 민들례순례단의 군산 일정은 군산시내 우리문고 앞 사전 결의대회, 개복동·대명동 화재참사현장 추모행진, 임피승화원 참배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성인권이 보호되는 그날까지, 순례와 평화행동은 계속된다.

 

[21일 13:00] 사전결의대회 - 군산시내 우리문고 앞
성산업착취구조 해체와 성매매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라

 

1시에 군산시내 우리문고 앞에 도착한 순례단은 사전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전국에서 모인 약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결의대회에서 이번 순례의 의미를 다시 확인했다.

 

송경숙 전북 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우리가 기억하고, 외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대명동·개복동 화재참사, 그러나 이것이 과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도 착취와 폭력의 현실을 이어지고 있다”며 군산화재참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매년 전국 행진을 통해 여성인권보호를 외쳤지만, 여전히 성매매에 있어 여성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등의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결단이 필요할 때는 단결이 필요하다. 성산업착취구조 해체를 위해 행동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활동가들이 준비한 카드섹션

 

두 대표의 인사 후, 수원의 여성인권단체 ‘어깨동무’, 인천 ‘강강수월래’ 대표의 결의문 낭독이 이어졌다.

 

순례단은 결의문을 통해 △ 성산업 수요에 강력 대응과 가해자, 착취자에 대한 처벌 강화 △ 불법성매매업소에 대한 행정처분 강화 및 업소 폐쇄 등의 적극 대응 △ 성매매 여정의 비범죄화를 통한 인권보호 △ 탈성매매 할 수 있는 대안 제시 및 통합적인 지원 대책 강구 등을 요구했다.

 

 

[21일 14:00] 개복동에서 대명동까지 화재참사현장 추모행진
가슴 아픈 죽음, 여성 착취가 사라질 때까지 잊을 수 없다

 

결의대회를 마치고 순례단은 우리문고 뒤편에 위치한 개복동 화재참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성매매가 성행할 때는 약 30여 곳의 업소가 불법적인 영업을 했다는 군산의 대표적인 성매매집결지였다.

 

지난 2002년 1월 29일, 아방궁이라는 유흥업소에서 무선전화기 어댑터의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옆에 붙어 있던 대가라는 유흥업소로 번져 2층에서 잠을 자던 13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고 2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죽음을 당한 여성들은 모두 인신매매되어 감감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당시 현장조사를 진행했던 정미례 대표는 “당시 목숨을 잃은 여성들이 전부 2층 문 앞에서 발견되었다”며 화재에도 불구하고 탈출할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화재가 난 대가 2층은 업주의 남동생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었고, 잠겨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창문으로 보이지만, 안쪽은 합판 등을 통해 막아놔 사실상 감옥과 같은 구조였다.

 

▲개복동 화재참사현장. 눈 앞에 보이는 창문은 안쪽에서는 벽이다.

▲화재 당시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이 충격적인 죽음과 성매매 여성들의 삶은 전국의 알려졌고,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는데 촉매제로 작용하게 되었다.

 

개복동을 찾은 참가자들은 다 같이 민중가요 ‘민들레처럼’을 부르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원혼을 위로하는 한영애씨의 진혼곡을 감상했다.

 

▲무용가 한영애씨의 진혼곡에 많은 이들이 아픔을 공유했다.

▲떠나간 여성들의 죽음은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연대와 기억 통해 치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산업 착취구조 해체와 함께

 

순례단은 개복동 화재참사 추모를 마치고 군산시내를 가로질러 대명동 화재참사 현장까지 행진했다.

 

순례단이 행진하며 외친 “성구매를 반대한다”, “여성인권 보호하라”, “접대문화 반대한다” 등의 구호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대명동 화재참사는 올해로 11주기를 맞이한다. 2000년 9월 19일 무허가 3층 건문 중 2층에서 발생하여 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은 일명 ‘쉬파리골목’으로 불리며 불법성매매가 성행했다. 여관/여인숙 형태로 운영되던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군산역과 파출소가 있었다. 그리고 뒤편에는 전통시장이 위치해 있다.

 

정미례 대표는 “인근의 유흥업소 밀집촌과 이곳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유흥업소에서 선불금이 2,000만 원 이상 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이곳으로 보내졌다”면서 이곳 현실은 알렸다.

 

화재참사 이후 국가배상청구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광주지방법원의 판사도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악했던 대명동 성매매집결지. 좁은 골목과 다 쓰러져가는 가옥, 그 내부는 두꺼운 쇠창살로 창문을 막았고, 유일한 출구조차도 잠금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은 단순 화재사건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희생자 유족 13명은 국가와 군산, 포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4년의 기나긴 법정다툼 끝에 대법원에서 최초로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명동 성매매집결지. 불법적인 집결지를 군산시는 금지구역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여성들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 그러나 이 통로는 항상 잠겨있었다.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1주기, 우린 죽음을 잊을 수 없다

 

지난 2000년 9월 19일 군산 대명동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성매매가 되고 있는지, 성산업이 어떻게 여성을 착취하는 지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면서, 가슴 아픈 죽음으로 많은 이들의 슬픔을 안긴 사건이었다.

 

정미례 대표는 “화재참사 당시 건물의 내부구조 역시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을 정도로 은폐된 현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삶과 현실도 감춰있었는데, 화재현장 침대 밑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불이 난 2층은 작은 미로 같은 통로와 7개의 쪽방으로 이루어졌다.

 

사건을 조사하고 밝혀야 할 정부나 경찰은 은폐했던 대명동 화재참사. 그러나 여성들의 일기장까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는 “자유를 향해 날고 싶다”, “새가 되고 싶다” 등 목숨을 잃은 여성들의 소박한 꿈을 적은 글귀들이 발견되었다.

 

소박한 꿈. 그러나 철저하게 감금당한 채 살아야 했던 이들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큰 꿈이었다. 죽음을 통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안타까운 현실. 폭력과 불법적 성산업 착취구조로 인해 감금되었던 이들은 힘든 현실을 작은 종이학을 접으며 견뎌야 했다.

 

▲전국의 여성활동가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과 함께 바람을 적어넣은 퀼트를 만들었다.

 

[21일 16:00] 임피승화원에서 추모제를 진행하다

 

군산의 유일한 화장터인 임피승화원은 대명동 화재참사 희생자 5명 중 2명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2000년 9월 화재가 나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 오랫동안 장례를 치루지 못했다. 군산의료원 냉동고에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장례를 치루고, 희생자 3명은 유가족들이 화장을 하고 유골을 미륵산에 뿌렸지만, 2명은 무연고자로 가족들을 찾지 못해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

 

정미례 대표는 “2명의 신분도 포주가 만들어 준 것으로 그들의 정확한 이름과 고향도 현재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임피승화원에 도착한 순례단은 간단한 추모제를 진행했다. 대전의 활동가의 추모시 낭독을 했고,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활동가들이 추모노래를 불렀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이들이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한 줌의 재로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해마다 9월이면 어김없이 민들레순례단이 생각난다. 그리고 대명동, 개복동 화재참사를 기억해낸다.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18명의 여성들. 그 안타까운 죽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10년 포항에서 시작된 죽음은 2011년이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성산업이 존재하는 한 그 죽음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을 것이다.

 

폭력과 감금, 감시와 차별. 그리고 인신을 구속한 상태에서 여성의 인권을 파괴하는 성매매현실. 전주시청 뒤 선미촌에서, 익산터미널 근처에서, 전주시청 광장 앞 여인숙에서 우린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폭력은 감춰질지 모르지만, 군산에서, 포항에서 죽어간 그 현장과 똑같은 곳은 우리와 너무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어쩌면 우리들의 침묵과 애써 외면한 시선의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군산화재참사가 있고나서, 2005년 서울 하월곡동, 광주 송정리, 2009년 대전 유천동, 2010년 서울 청량리, 포항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성산업 착취구조를 해체해야하는 이유는 이 죽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남성들의 성구매와 성산업이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성매매여성의 인권 역시 의식적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이 사회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심하다. 그래서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서 더 움츠리게 된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 죽음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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