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사회 양심적 병역거부자 공현, 수감전 마지막 인터뷰

성지훈(참세상)( newscham@newscham.net) 2012.05.01 00:45

“지금의 저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병역거부는 제가 바라는 제 모습대로 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 병역거부 소견서, 공현

 

2012년 2월까지 대한민국엔 810명의 병역거부 수감자가 있다. 그리고 4월 30일부로 또 한명의 병역거부 수감자가 추가된다. 양심에 따라 군사훈련과 전쟁행위를 할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한 공현씨다. 그는 지난 25일, 법원으로부터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30일 수감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은 그에게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해 수감일까지 불구속을 결정했다. 수감을 나흘 앞둔 26일, 수감직전의 공현을 만났다.

 

약속시간이 다되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예고대로 약속시간보다 30여분 뒤에 나타난 그는 법원에 ‘항소포기서’를 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법원 직원도 항소포기서는 처음 받아보는 거라 서식을 잘 모르더라구요. 덕분에 양식을 찾고 작성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병역거부는 내게 주어진 선택지 중 하나”

 

대부분의 경우 원심의 판결에 항의해 항소를 하고 또 항소를 할 계획이 없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도록 항소를 하지 않으면 저절로 항소포기로 간주되기 때문에 부러 항소포기서를 제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제발로 법원까지 찾아가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작성하는 정성에서 비로소 그의 ‘자기주도적 입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 공현


도대체 왜 그는 이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하는 것일까. 인사가 끝나자마자 대뜸 그 이유부터 물었다. 도대체 왜 굳이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가려는 겁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주의적인 문화와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군대나 평화에 대한 책들을 읽다보니 군축이나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 같은 것들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때는 ‘병역거부를 해야지’하는 마음까지는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병역 거부자 오정록씨의 사연을 접하고 제가 가진 선택지 중에 병역거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면제를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징병검사에서 1급을 받았고 자연스레 병역거부를 선택하는 쪽으로 고민이 흘렀습니다”

‘자연스러운 선택’이란다. 스물 다섯의 나이, 대다수의 또래들은 술 취해 주정부리다 파출소 순찰차에 한 번 타는 일이 공권력의 제재를 받는 유일한 사례고 그 사례가 몇 달, 몇 년간의 무용담이 될텐데 1년 6개월의 수감생활과 평생토록 따라붙을 ‘전과자’의 멍에를 자연스런 선택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이야 자기 인생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주변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볼지, 부모님이 걱정은 하지 않을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처음엔 대학 자퇴문제와 엮어서 많이 염려하셨죠. ‘그래도 감옥은 피하는게 좋지 않으냐’는 말씀도 많이 하셨고... 해외봉사나 대체 복무같은 대안도 제시 하셨었는데, 그런 제도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부모님을 설득했다기 보다는 제가 고집을 피웠어요. 지금은 그저 걱정보다는 안타까워하시는 정도에요. 사실, 제가 군대에 갔더라도 걱정시키지 않고 잘 적응해 문제없이 복무할거라는 생각은 안하셨던 것 같아요. 친구들도 안타까워하기는 했지만 크게 우려의 말을 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할 수는 없는거잖아요. 하하하”

 

수감을 앞둔 이의 표정과 말이 너무 경쾌하고 담담하다. 간간히 농담을 섞는 그에게 어떻게 이리도 담담할 수 있는지 물었다.

 

“예민해서 짜증내고 히스테리 부리던 시기는 얼마전에 지나갔어요. 그 땐 정말 히스테릭하게 사람들을 대했어요. 매일 악몽도 꾸고... 물론 지금도 압박감에 악몽을 꾸긴 하지만요. 그 땐 수감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격리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활동하던 친구들하고 사소한 마찰이 일면, 예전에는 서로 얘기하고 보완하는 방식으로 대했는데 수감되면 그러질 못하니까 더 윽박지르고 짜증내고 그랬죠. 지금도 당연히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어요. 감옥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게 될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담담해보이고, 실제로도 좀 더 편해지구요.”

 

“‘국민은 국가의 부속품이 맞다’는 얘기가 어떤 비난보다 씁쓸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란 누구나 져야하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됨과 동시에 병역을 다한 이들끼리 공유하는 ‘군필 예비역’의 카르텔을 부여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군대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에 내포된 폭력성이나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로 표현했다 뭇매를 맞은 어느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사례는 군대가 ‘신성’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가수는 군대를 가지 않아서 국내에서 아예 추방당한 반면, 어느 가수는 군대를 다녀온 이후 비호감 연예인에서 일순간에 호감 연예인으로 등극했다. 공현을 비롯한 병역 거부자들에게 비난이 없을 수 없다.

 

“한 언론사에서 병역거부자 이야기를 다룬 기사에 댓글이 3천개나 달렸습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병역거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었죠. 보통 병역 비리와, 병역 기피를 거부와 구분하지 않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많은 것은 현실론이었어요.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평화가 있는 것이다’라는 얘기들이 가장 많았죠. 그리고 이기적이라고, 자기 생각만 한다고 하는 비판들도... 하지만 제일 씁쓸했던 얘기는 제가 쓴 병역거부 소견서를 보고 남긴 댓글이었어요. ‘국민은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라고 한 얘기에 그 사람은 국민은 국가의 부속품이 맞다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다른 비난들보다 더 씁쓸했죠”

“군비 축소는 의지의 문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가’는 오래되고 케케묵은 논의다. 동시에 오래되고 케케묵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 논의다. 공현은 소견서를 통해 평화적 수단으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군대를 없애자는 건 아닙니다. 상비군 폐지 같은 것은 칸트도 주장했던 얘기인데, 현실적으로 국민국가 체제가 없어져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전해야 가능해지는 논의겠죠. 다만 군대를 최소화해서 유지하는 방식을 논의 해야합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본격적인 평화협정이나 군비축소 논의가 이행돼야 하죠. 군비경쟁으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안이합니다”

 

공현은 지겹게 들어왔겠지만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졌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가요?

“결국 의지의 문제입니다. 남과 북의 의지. 남한도 북한도 외부를 이용해서 정권유지에 이용해 왔기 때문에 보란듯이 군비를 증강했던 경향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아까 말한 대로 서로 군비를 축소하고 평화체제로 나가려는 의지와 신뢰를 보여야하죠”

 

“개인의 행복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사회와 격리되는 것’은 곧 그대로 감옥안에도 ‘사회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는 앞으로 1년 6개월간은 그의 사회가 될 감옥 안의 생활에 대한 계획도 세워놓고 있을까.

“딱히 감옥안에서 감옥인권운동을 하거나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은 없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살려고 해요. 되도록 빨리나오려면...(웃음) 교도소가 부당한 행동을 하면 인권위에 제소하거나 감옥인권운동도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니까 제가 들어가서는 감옥인권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특별히 하고 있지는 않아요. 물론 다녀오고 나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관심이 생기겠지만요. 다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죄수들, ‘수감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입니다. 어떤 분이 다른 범죄자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으신 적이 있는데, 그 때 ‘저도 범죄자’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들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그런 인권 감수성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공현을 인터뷰하기 앞서 그의 블로그를 뒤적거리다 감옥에선 반찬도 담요도 휴지도 모두 개인이 영치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돈이 없으면 춥고 배고파야 하는 곳이었다. 감옥은. 그래서 그는 그의 블로그와 후원회 커뮤니티에 영치금 후원을 부탁하는 메시지도 애교스럽게(?) 남겨두었다.

“염치없게 영치금 후원을 부탁하긴 했지만 사실 저보다는 다른 병역 거부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운 좋게도 감옥 안에서도 고정 기고를 두 개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출판사랑 합의 중인 이야기도 있고... 다행히도 제 영치금은 제가 벌어 쓸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엔 800명이 넘는 병역거부 수감자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하면 십 수 명이 있죠. 그 분들에게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옥 안에선 영치금 없이 생필품조차 지급되지 않으니까요”

그는 감옥 안의 생활을 최대한 성실하게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노역이 없는(여타 시국사범들과는 달리 ‘잡범’으로 분류되는 병역거부자는 노역을 한다) 주말을 틈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출소 이후의 활동에 대한 전망을 세울 계획이다.

“계속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어느 덧 전문성도 생겼고, 또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기도 하구요. 그래서 감옥에서는 관련된 서적들, 평소에는 어렵거나 너무 두꺼워서 엄두를 내지 못한 책들을 읽고 싶어요. 청소년 운동이 운동을 시작하고 4,5년만 지나면 당사자가 아니게 되면서 재생산이 잘 안되고 호흡이 짧은 운동이라는 지적이 나온지 꽤 됐거든요. 이런 과제에 대한 고민도 하고 싶구요”

 

끝으로 병역거부를 고민하든 아니면 입영을 고민하든, 그 기로에 서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결국 개인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절보고 ‘타협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게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병역거부하면 신념을 지키는 일이고, 입영하면 타협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전 기업체에 취업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하는 미래를 생각지 않고 활동가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병역거부 보다 먼저 선택했어요. 전과가 하나 있는 것이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선택을 먼저 한거죠. 그래서 더 수이 병역거부를 선택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 또래들이 살려하는 삶은 전과에 신경을 써야하는 삶이 대부분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타협 했다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어쨌든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 삶에서 무엇이 가장 행복한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병역거부를 하려는 이들은 말리고 싶어요. 수감이 추천할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꼭 병역거부를 한다면.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자 싶어요. 1년 6개월이 엄청나게 긴 시간도 아니니까요. 요즘 들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미룰 수 있으면 7,8년만 미뤘으면 하는 거에요. 그 안에는 대체복무제가 어떻게든 생기지 않겠냐 싶거든요. 미룰만큼 미루고 있다가 안되면 그때 가서 거부하는 거죠. 하하하”


덧말
기사가 작성되는 4월 30일에 공현은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그의 재판을 지켜본 지인들에 따르면, 그에게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사는 재판장에서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판례와 법 조항 상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고 전한다. 그의 바람처럼 7, 8년 안에는 대체복무제가 입법화 될 수 있을까.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해 올 해 발표하는 ‘2기 국가인권기본계획’에는 대체복무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cafe.daum.net/gonghyun <공현과 함께라면> 후원카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