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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로 말미암은 방사능 비가 내린다는 소식으로 경기도 내 수십 개 학교가 휴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서울 명동대성당에서는 240일 째 계속된 문정현 신부의 기도가 여전히 이어졌다. 이날 내린 비 탓인지, 성심수녀회 수녀들과 몇몇 평신도만이 모여서 문정현 신부와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십자가의 길이 새겨진 명동성당 내부는 어두컴컴한 채로 벽면의 유리화에서 새어드는 빛으로 간신히 몸을 밝히고, 조촐한 순례객이 성당 내부를 돌고 있었다. 문정현 신부는 14처를 도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서 기도에 여념이 없었다. 십자가의 길 순례객들은 기도를 마치고 비를 피해 지하성당 앞 성모동산 옆에 있는 벤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었다. 좁은 비가림 천정 탓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돌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이 튀어 신발을 적셨다.  

 

▲문정현 신부는 잠시 명동성당에 머물고자 했으나, 시절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건 있다. 덕분에 오랫동안 길 위에 피정 참 잘했다. (사진/한상봉 기자)

문정현 신부는 지난 4월 1일 저녁 신도림 성당(주임 최부식 신부)에서 사순특강을 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문 신부는 "예수님은 높게 솟은 교회의 화려한 성전에 계신 것이 아니라 거리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죽을 곳은 스승 예수님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바로 그곳입니다”라고 말했다. 문 신부가 명동성당에 그토록 오래 머물게 된 사연도 그러하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 곁에 있기를 갈망하는 탓이다.  

 

문 신부는 신자들에게 "영혼 구령에만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손을 잡고 함께 힘을 더해야 한다"며 먼저 "내 안의 욕망을 비워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자"고 전했다. 사람들은 문정현 신부를 '길 위에 신부'라고 부르는데, 예수가 길 위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예수님이야말로 길에서 사신 분입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병자들, 사람 취급 못 받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들 모두 길에서 만나셨잖아요.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돈이 많았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함께 해준 것이죠. 가난한 사람들 만나서 얘길 나누고 위로해주고, 사람대접 못 받는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러주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이르셨잖아요.

 

그러니 교회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 못한 게 문제고, 뭔가 소리없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각성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문정현 신부는 지난해 8월 10일 이후로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서각기도도 하고, 요즘은 사순절 기간에 십자가의 길을 하고 있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지난 여름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사제들의 단식기도 때 서울대교구 관리국이 ‘영업방해’라며 가톨릭회관 앞 주차장에 설치한 천막을 강제 철거한 일 때문이다. 

 

"미사를 하려면 로만칼라를 벗고 하라"던 관리국 직원들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고, '영업방해'라는 말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 같아서 아프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문정현 신부는 이날 사순특강에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 희망이 되기보다 권력과 자본에 더 가까워지고 있고, 교회 스스로 권력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어머니이신 교회'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봐야 하는 노 사제의 눈빛이 떨린다. (사진/한상봉 기자)


이처럼 권력의 우상이 되어가는 상징이 '명동성당'이라면 문정현 신부의 기도는 명동성당을 자신의 십자가로 삼아 지난 240일 동안 몸으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심경으로 비 맞는 성모동산 앞에서 문 신부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 필요한 사추덕(四樞德)에 관해 말을 건넸다. 지혜와 용기, 정의와 절제다. 

 

이야기는 절제와 용기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번졌다. 문 신부는 "엄마가 아이를 사랑할 때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릴 수 없듯이, 절제의 덕도 어느 수준까지라고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꼭 해야 할 것은 자제하고, 절제해야 할 것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박순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전 대표가 "빨갱이 소리 들어가면서도 길을 나서고 외치시는 신부님은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하자, 문정현 신부는 "용기에 한도가 있나?"하면서, 자신은 할복이나 분신 수준으로는 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창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할 때, 예전에 장난삼아 수경 스님한테, 당신 다비식 해…. 장작은 내가 쌓아줄 테니. 나도 따라서 장작더미에 올라갈 게, 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문수 스님이 분신하는 바람에 마음이 아팠다"고 전하면서, 고 조성만 열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조성만이 민족 통일을 외치면서 저기 보이는 명동성당 문화관 위에서 투신자살했지. 교회는 이걸 자살이라고 했어. 그래서 조성만의 시신은 성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교회는 사회적 이목이 있으니까 성당 앞에서 사도예절만 해 주었지. 한 번은 조성만의 모교인 전주 해성고등학교에 기도회를 하러 갔는데, 주교한테서 전갈이 온 거야, 기도회 참여하지 말라고. 명동성당 평신도 위원회는 정 하려면 옷 벗고 하라고 하더군. 그래서 얼마나 열딱지가 나던지 그냥 웃통을 벗어버렸지. 웃통을 벗었다고 내가 신부 아닌가. 그날 기도회를 하긴 했지만 얼마나 위축은 되던지. 조성만의 죽음을 놓고 보는 안목이 그렇게 다르더라고. 우리가 볼 때 조성만은 열사인데, 교회 장상 눈에는 그저 자살자로만 보였던 거겠지."

 

이 자리에서 다른 참석자가 "신부님의 존재가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정현 신부는 도리질했다. 

 

"아니지. 명동성당에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미운털이 박혔는지 여기서 견디기 어려웠어. 이렇게 긴 시간동안 모멸감 속에서 살아 본 적이 없지. 어디 대추리나 용산에서는 큰소리치면서 지냈는데, 여기서는 능멸을 당하는 느낌이었어. 성당에 있다가 보면, 젊은 신부들이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갈 때마다, 속으로 '저 사람은 안 늙으려나' 싶고. 그럴 때마다 모욕감이 들지. 진짜야"

 

▲문정현 신부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성모동산에서 나눔을 하기 전에 잠시 틈을 내어 쓰고 단 담뱃맛을 보고 있다. 그래, 이 교회도 쓰지만 향기로운 구석도 있어 여태 몸 떠나지 못하는 거겠지! (사진/한상봉 기자)

 

이날 문정현 신부의 목소리는 자신과 교회의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 떨리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잔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가슴 속에는 여전히 하느님의 불꽃을 삼키고 있었다. 문정현 신부가 240일 동안 명동을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명동성당은 바뀐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바뀐 것이 있다면 문정현 신부의 마음이 좀 더 깊어지고 가슴이 좀 더 넓어졌다는 것일 테다. 한때는 '깡패 신부'라는 별명도 붙었던 문 신부지만, 세월이 그의 격정을 삭여주고, 기도가 그의 가슴을 데워주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날 마침 사순 제5주일 강론 원고가 나왔다. 그 강론원고의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교회에 대한 예언의 목소리다.   

 

"교회에는 참다운 소통이 없습니다.
일방적인 선언과 명령뿐입니다. 대화를 기피하고 독단적입니다.
이익관계가 직접적인 권력가들과 소통하고 환대합니다.
얻는 이익이 없어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교회가 가진 것을 더 나누어야 할 권력 없는 이들, 밥 없는 이들, 헐벗은 이들을 방치합니다.
평등이 사라지고 차별이 스며들어 번져갑니다.
사람들과 자연이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생과 죽음의 현장이 바로 성체성사와 기도, 전례와 영성이 싹트고
자라나는 고향입니다.
십자가의 자리는 멀리하고 성당의 담장 안에서만 읊조리는 기도는
한낱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순절 묵상을 하면서, 문정현 신부는 '승리의 교회가 아닌 종의 교회로!' 가자고 지긋이 권하고 있다. (사진/한상봉 기자)

 

이어진 것은 교회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평화를 비는 마음이었다. 

 

"어떤 교회의 지체가 잘못을 범하면 이를 공동의 허물로 여기고,
그런 일로 생긴 다른 지체의 상처를 기꺼이 돌보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미리 아시고
책망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배려와 혜안이 교회의 참 덕목입니다.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맑은 눈과 양심을 청합시다.
신음하고 절규하는 백성, 울부짖는 백성과 창조세계가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를 교회가, 우리가 다시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총과 도우심을 청합시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1 코린 15, 26)

 

문정현 신부와 함께 걷는 명동성당 십자가의 길은 오는 4월 20일 수요일에 마친다. 별도의 마무리 미사는 없고 오후 2시에 공동기도로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미처 고해성사를 보지 못한 사람이나  문정현 신부와 좀 더 개인적 담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오전 9시 이후에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하는 문정현 신부에게 찾아가면 된다. 또한 오는 4월 23(토)일부터 25일(월)까지 서울 정동에 있는 품사랑 갤러리에서 그동안 문 신부가 서각한 작품 7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덧붙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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