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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삼성 노동자 자살, 중국 폭스콘과 닮았다

공유정옥( cmedia@cmedia.or.kr) 2011.01.18 21:33

젊은 삼성 노동자의 자살

 

1월 11일, 삼성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김주현 씨가 기숙사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째. 유족들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1986년 생인 고인은 작년 1월에 삼성전자 LCD사업부에 입사하여 한달 동안 연수교육을 받은 뒤 칼라필터 공정에서 현장 엔지니어로 일했다. 연수 당시 고인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하루 12시간은 기본”, “1년 간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라)” 등의 메모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2월부터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고인은 심각한 피부병을 얻었다. 본래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다고는 하나 아주 가벼운 수준이었고, 입사 전에는 거의 티나지 않을 정도로 치유된 상태였다. 새로 생긴 피부병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서, 몇 달이 지나자 다리의 피부가 벗겨지고 진물이 날 정도로 악화되었다. 생산설비를 보수하고 정기적으로 닦아내며 가스나 유기화합물 등을 생산설비에 공급하는 등, 일상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작업환경 때문에 생긴 직업병이 강력히 의심된다.

 

고인을 괴롭힌 것은 피부병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8시간 3교대 근무는 말 뿐이고, 하루 12시간을 기본으로 잔업을 하면 14~15시간도 일쑤였다. 휴일은 그림의 떡일 뿐, 현장에서 호출이 오면 기숙사가 있는 탕정사업장에서 약 30분 걸리는 근무지 천안공장까지 수시로 나가야 했다. 그러다보니 모처럼의 휴일에도 인천에 있는 집에 갈 수가 없어, 가족들을 만나는 건 한두 달에 한번 정도였다고 한다.

 

심신의 건강이 너무도 악화되어, 몇 달 만에 고인은 부서 전환을 요청했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 신입 사원으로서 겪었을 마음의 부담은 오죽했을까. 새로 옮긴 부서에서 고인은 자재관리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을 넘는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는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결국 고인은 우울증을 진단받고 병가를 냈다. 두 달 간의 병가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는 첫날 아침, 고인은 기숙사 13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고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1월 3일에도 같은 기숙사 안에서 23세의 여성 노동자가 투신자살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

 

새해 벽두부터 연이은 삼성 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은 삼성도 중국의 폭스콘처럼 자살 공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케 한다. 폭스콘은 중국 선전 지역의 거대한 전자제품 공장으로 40만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초, 몇 명의 노동자들이 기숙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폭스콘 자본은 ‘직원 수가 40만명이나 되는데 몇 명쯤은 자살할 수도 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사이에 자살 노동자 수가 열 명을 넘어서자 마침내 대만에서 모기업 회장이 직접 중국 선전공장을 찾아와 공개사과를 했다.

 

폭스콘에서 자살한 노동자들은 삼성전자의 생산직 노동자들 대다수가 그러하듯 20대의 젊은 노동자들이며, 고향을 멀리 떠나와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하루 12시간을 넘기 일쑤인 장시간 노동, 품질과 물량 등 성과에 대한 압박, 화장실조차 자유롭게 다닐 수 없을 만큼 바쁘고 통제된 작업 환경, 타 지역 출신의 젊은 노동자들을 주로 고용했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공장 기숙사에 고립되어 지내야 하는 일상, 노동조합 결성을 비롯한 단결권의 원천봉쇄 등 폭스콘과 삼성전자의 노동조건은 꼭 닮았다.

 

폭스콘과 삼성은 노동자들의 자살에 대한 대책에서도 상당히 비슷하다. 삼성은 김주현 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기 건강진단 중 정신과 상담을 모든 직원에게 확장하고 사내 심리상담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고인의 투신 이후 기숙사 창문을 10센티미터 이상 열 수 없도록 안전 장치를 달기도 했다. 폭스콘이 작년에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사내 심리 상담과 종교활동 지원, 기숙사 창문에 철망과 안전그물 설치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고, 2010년 한 해 동안 자살한 노동자는 최소한 18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폭스콘의 대책 중 삼성과 다른 것도 있기는 하다. 작년 6월, 심각한 여론의 비판에 대처하기 위해 폭스콘은 선전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10월까지 2천 위안(미화 3백달러)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10월 중순까지 공식적인 임금 인상을 통보받지 못했으며, 실제로 임금이 인상되었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 약속의 내용이 아니라 실천의 내용을 기준으로 본다면 결국 폭스콘과 삼성의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작 노동자들을 우울증과 자살로 내모는 원인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을 찾아내어 ‘관리’하기 위한 사내 상담과 기숙사에서 뛰어내리지 못하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보강하는 정도인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병들게 했나

 

이들 젊은 노동자들의 우울증과 자살은 무엇 때문일까. 김주현 씨를 비롯하여 여러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원인은 장시간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 즉 ‘과로’라는 단어로 축약된다.

 

우리는 ‘과로사’라는 말을 흔하게 쓴다. 과로 때문에 뇌심혈관계 질환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이 돌연사한 경우에 이 말을 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로 때문에 자살하는 문제는 ‘과로 자살’이라 부른다. 과로사에 비하면 아직 세간에서 흔히 쓰는 말이 아니지만, 산업보건이나 사회학 분야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과로 자살에 대한 연구들을 찾아보면 일본의 노동자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일찍이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토요타식 직장 문화를 칭송하면서 흔히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일본 노동자들처럼 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본의 직장 문화가 낳은 괴물들인 과로사와 과로 자살에 대해서는 결코 얘기하지 않는다. 과로사와 과로 자살을 뜻하는 영어 표현 ‘Karoshi’와 ‘Karo Jisatsu’가 모두 일본말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는 사실도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의 과로 자살 사례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회사에 대한 긍지와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 사명감이 높은 노동자일수록 더욱 자살의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더 많이 더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힘까지 다 쏟아 부은 뒤 우울증과 자살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회사나 남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미안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죽을 만큼 힘들게 해온 그들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 피해자인데도 말이다.

 

절이 싫어도 떠날 수 없는 중을 탓하지 마라

 

한편 세간에서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자살한 노동자들에 대해 고인의 성격을 탓하거나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힘으로 살지 그러냐’ 혹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 죽긴 왜 죽냐’라고 비판하곤 한다. 이번 김주현 씨의 죽음에 대해서도 일부 누리꾼들은 ‘그렇게 힘들면 퇴사를 하지 그랬냐’라며 고인에게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우울증은 병이고, 자살은 우울증의 가장 치명적인 증상이며, 과로로 인한 자살은 업무와 관련된 정신 질환 중 가장 심각한 문제들 중 하나다. 모든 병이 그러하듯 개인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 병에 걸릴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기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는 없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은 이를 결행할 만한 ‘용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 말고는 빠져나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증상’ 때문이다. 맹장염으로 배가 아픈 환자에게 복통의 책임을 묻는 것이 비과학적이듯,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한 환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김주현 씨의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경찰의 재조사와 삼성측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또한 이런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양비론을 들먹여 일부 책임을 지우는 ‘피해자 탓하기(victim-blaming)’는 사회 정의의 측면에서도 결코 올바르지 않다. 병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할 책임자보다는 병에 걸려 생명을 잃은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자들을 과로, 과로사, 과로 자살로 몰아넣는 저들의 그물망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노동하며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 본질을 꿰뚫어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굳이 과로사나 과로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더라도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의 헌신과 희생을 높이 치하하는 미사여구들에 속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오직 이윤과 경쟁력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의 ‘자발적’ 희생과 과로를 북돋으려는 저들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행여나 과로 자살 피해자들에게 왜 이런 통찰력을 갖지 못했느냐고, ‘힘들면 떠날 것이지 죽긴 왜 죽냐’고 탓해서는 안 된다. 과로 자살의 책임은 죽음으로 인도하는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망을 짜 놓은 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김주현의 영면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세계적인 기업 삼성에서 8일 만에 두 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했다. 그 중 한 노동자의 가족들은 고인의 사망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자살을 시도했던 고인을 방치하고 고인이 애초에 우울증에 걸리도록 만든 비인간적 노동환경을 조장한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들의 소식이 그러했듯이, 이번 일도 그 사회적 의미와 충격에 걸맞지 않게 오직 극소수의 언론을 통해서만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또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자살’이라는 사망 경로 때문에 삼성에게 책임을 묻길 주저하고 있다.

 

김주현 씨의 시신은 일주일이 넘도록 차가운 냉동실에 모셔져 있다. 삼성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는, 고인의 죽음에 관련된 의혹이 투명하게 해명될 때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이 유족의 입장이다. 그런 유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할까. 장례 7일째 아침, 고인의 누이는 인터넷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들은 너를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인데 너에게 진심으로 사과, 아니 너를 보러오지도 않는구나. 주현아 아직은 하늘에 올라가지마. 하늘에 올라가지 말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도록 도와줘.”

 

고인을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단지 삼성의 탓일 뿐일까. 자살이 왜 회사의 책임이냐는 편견, 삼성의 눈치를 살피는 언론의 침묵, 이런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대중의 냉소, 이것이 고인의 영면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덧붙임] 공유정옥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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