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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하셨어요? 오늘은 마차로 드릴까요?”

 

오후 1시가 막 지나고 점심을 드시고 오신 어르신들이 전주 구도심 동문거리에 있는 삼양다방의 가운데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 다방 주인인 이춘자(62)여사의 상냥한 목소리가 익숙한 어르신들은 주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삼양다방의 풍경, 단골 어르신들과 마지막을 보기 위해 찾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잠시 후, 이춘자 여사는 차를 내오며 어르신들에게 “다들 서운해 해요. 이 근처에 어른들이 쉴 곳 하나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단골손님들과 매일 이별하는 손님들 뿐이예요. 다들 20년, 15년 되신 분들인데...”라며 서운함을 토해낸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방법이 없데?”라며 묻자, 이춘자 여사는 “아직은 모르겠어요. 우선 7월 2일까지만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의 쉼터, ‘삼양다방’...“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나”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전주 경원동 동문거리의 ‘삼양다방’이 7월 2일 문을 닫는다. 올해 건물주가 바뀌고 건물 전체가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게 됐다. 현재 이곳의 용처는 결정된 것이 없지만, 임대료가 오른 상황에서 다방을 더 운영하기는 힘들 것을 보여진다.

 

▲1952년 문을 열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인 전주의 삼양다방이 2일 문을 닫는다.

 

1952년 문을 열어 올해로 61년이 된 전주의 대표적인 사랑방이 문을 닫는다고 하니, 6월의 마지막 주말에는 단골 손님들로 북적였다.

 

기자가 찾은 6월 29일은 전주기계공고 화학과를 2회 졸업한 어르신들이 찾아 이춘자 여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48년 전주로 와 52년 공고 졸업과 함께 삼양다방을 찾았다는 박재건(82) 할아버지가 삼양다방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온 관광객들과 기자에게 이곳의 추억 한 대목을 풀어낸다.

 

▲삼양다방을 즐겨 찾는 어르신들.

 

“원래 초가집으로 된 집에서 삼양제과점이 이 자리에 있었어. 그러다 삼양다방이 생기고, 초가집이 6·25사변 후에 건설사가 지금 이 건물을 지었어. 예전에는 이 지역에 은행, 도청, 경찰서, 병원들이 많이 있어서 밥 먹고 여기서 차를 마셨어”

 

당시 공무원이었던 박재건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이날(29일) 함께 온 동창들이 바로 그 분들이었다.

 

“지금이야 종이 호랑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기자, 교사, 공무원으로 당시에는 한창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지”

 

6~70년대 삼양다방은 공직자를 비롯해 전주에서 제법 잘 나가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공직자, 은행원 등 많은 이들이 찾기에 이곳에서 주요 정보들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삼양당방이 있는 3층 건물은 70년대 전주문화방송이 있던 곳이라 당연히 언론인들과 문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박재건 할아버지와 함께 오신 김덕순(가명, 75) 할머니는 “60년대 3·15부정 선거 이후에 학생들의 힘으로 정부가 들어섰잖아. 당시 전북도청 앞에서도 매일 대모를 했지. 나도 당시에는 젊어서 데모에 함께 했지. 중앙시장에서 최루탄을 맞고 켁켁되며 동문거리까지 도망오기도 했지. 당시 다방은 학생,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지”면서 당시 이야기를 쑥스럽게 전했다. 당시 전주를 주름 잡는 공직자에서부터 학생까지 한번쯤은 찾을 정도로 번창했던 삼양다방. 지금은 과거의 그 화려함은 추억 속에 묻혔지만, 그 추억을 떠올리려는 이들을 품는 따뜻함은 여전하다.

 

박재건 할아버지의 동창계도 한 달에 한 번 인근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꼭 삼양다방에 들러 목을 축이고 헤어진다.

 

“요새는 고급 카페가 많이 생기고 그랬지만, 이곳처럼 역사가 깊은 곳은 없어. 그리고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늙고 지친 이들이 이용하기 편리하지. 또 화가나 시인들이 그림하고 시도 전시하고, 꽃도 가져다 놓고. 다방을 오래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사장이 참 친절해서 이곳에 오면 편해”

 

따뜻함으로 삼양다방은 이제는 이렇게 어르신들의 쉼터가 된 것이다. 이날도 박재건 할아버지 친구들뿐 아니라 단골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택시를 타고 오기도 한다. 이춘자 여사는 들어오는 손님 한분, 한분에게 안부를 묻고 갈 때도 손 한번 꼭 잡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곳은 어르신들의 공간이예요. 그리고 이렇게 서로 안부 묻고 헤어지는 것이 추억과 이별하는 어르신들의 방식이죠! 요새는 매 이렇게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있어요. 사실 어르신들이 연세만 드셨지 섬세해요. 저도 나이가 들다 보니 함께 맞춰가며 22년을 운영했네요. 단골 어른들이 계실 곳이 필요한데...”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있을 법한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춘자 여사와 어르신들은 아쉬움을 둘러 표현한다. 지난 삶의 연륜 탓일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이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기에 그렇게 손 한번 꼭 잡는 것으로 인사를 다할 따름이다.

 

▲문을 나서는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는 이춘자 여사

 

“문화공간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치열하게 한 평생을 살았던 이들의 쉼터 삼양다방의 커피 값은 한 잔에 2,000원. 이마저도 단골손님에게는 1,500원이다. 22년 전 이춘자 여사가 다방을 인수하고 한 번도 커피 값을 올리지 않았다. 당시 설치한 메뉴판과 등록증이 다방 한 곳에 때 묻은 그대로 걸려있다.

 

▲단골 어르신들에게 1,500원에 제공되는 다방 커피.

 
“단골손님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라, 올릴 수가 없죠. 다들 은퇴하고 이곳에 정 붙여 오시는 분들인데”

 

최근에는 삼양다방에 대한 소식이 SNS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서울, 광주, 부산 등에서 삼양다방을 찾는다. 이날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찾아 다방 곳곳을 사진으로 담는다.

 

▲22년 전에 만든 가격표.

 

경기에서 커피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만씨도 5년 전 삼양다방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다. 박 씨는 젊은 친구들과 ‘커피원정대’를 꾸려 전국의 귀한 다방과 카페를 찾아 방문하고 있다. 삼양다방이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에 커피애호가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춘자 여사에게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이춘자 여사는 더 좋은 곳에 쓰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이태리나 유럽에는 1700년대 커피집이 지금도 있어요. 오래된 곳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공공이 아니겠어요. 올 때마다 전주시청에 들러 이곳의 역사성과 보존의 의미를 설명했어요. 문화공간으로 이곳을 보존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덕수궁, 풍남문 등만이 전통이 아니예요. 충분히 이야기를 만들고 모두가 지혜를 모은다면 전주의 명소가 될 수 있어요”

 

아쉬움에 박종만씨는 자신의 생각을 꺼낸다. 오래된 쇼파와 탁자, 30년 된 커피제조기 등 모두가 고철로 버려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박 씨는 “이것들을 다 모아서 경기도 커피박물관에 재현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며 “그런데 이 공간이 사라지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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