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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의 순례가 불씨가 되어 세월호 진상규명 등 변화를 만들었으면"

[현장] 2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과 걸은 반나절, "십자가 이제 함께 들어요"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4.07.21 18:58

7월 8일, 3명이 시작한 순례는 이제 100여 명으로 늘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며 시작한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56, 고 이승현씨의 아버지)씨, 이아름(25, 고 이승현씨의 누나)씨, 김학일(52, 고 김웅기씨의 아버지)씨의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걷는 행렬은 20일 현재 길게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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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같은 또래 학생들, 세월호 참사 소식이 마치 자기 자식을 잃은 아픔처럼 느껴졌다는 아이 엄마,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성직자와 지역 시민들까지 유가족 순례단을 뒤따르는 이들은 저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참소리는 지난 20일 오후 3시 전북 고창군 흥덕면 노동마을에서 시작한 오후 순례에서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을 만났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아이들이 하루 빨리 부모님의 품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과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걷고 있어요”

순례단의 앞에서 걷고 있는 김학일씨는 순례를 하며 걷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4일째인 7월 8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그리고 순례 11일차인 지난 17일 전라북도 익산을 지나 김제, 부안, 고창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를 따라 진도 팽목항까지 가고 있다. 

20일이면 순례 13일차이다. 하루 25Km의 거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 약 1시간 마다 주어지는 쉬는 시간, 신발을 벗어 그 모습을 드러낸 이호진씨의 발은 물집이 가득하다. 

이 편치 않은 걸음. 그러나 김학일씨는 이 걸음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안산 분향소 앞에만 있을 적에는 정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걷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하네요. 전라북도에 들어서면서 순례에 동참해주시는 분들도 늘었고, 위로도 해주시니 발걸음이 가볍네요”

물론 이 순례는 길 위에 아픔을 내려놓으려는 순례가 아니다. 팽목항까지 가는 동안 남은 실종자 10명이 모두 발견될 수 있기를 하는 바람과 함께 세상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진상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유가족들의 행동에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순례단은 오는 7월 말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약 3일 정도 머문 후, 다시 발걸음을 대전광역시로 옮길 예정이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는 15일, 이들은 1900리(750여km)를 짊어졌던 십자가를 직접 교황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님을 뵙고, 세월호 십자가에 대해 한 말씀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그 말씀이 세계인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순례가 불씨가 되어 더 많은 변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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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지 않는 십자가, 우리라도 지겠다고 시작한 순례. 이제 많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난 8일 도보 순례길에 나선 이들은 <한겨례21>과 인터뷰를 통해 “아무도 지지 않는 십자가, 우리라도 지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교황에게 전달하려는 십자가에 대해 20일 오전부터 동행한 문규현 신부는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탐욕과 무능이 부른 이 세상의 죄이며 십자가는 그 죄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죄를 부른 권력은 이 죄에 대해 아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그 죄가 담긴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고 길을 나섰다”며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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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가족들은 쉽게 이 십자가를 다른 이에게 건네지 않았다. 그러나 20일 문규현 신부에게만큼은 그 십자가의 무게를 양보했다. 문 신부는 “십자가의 짐을 같이 질 수 있게 허락해줘 너무 고맙다”며 고마운 마음에 20일, 십자가를 지고 앞장섰다. 

비록 십자가를 지지는 않았지만, 유가족들을 뒤따르는 많은 시민들도 저마다 십자가의 무게를 잘 알고 이들을 뒤따랐다. 

20일 오전부터 함께 동행한 김제에 사는 송은행(42)씨는 16개월 된 갓난아이의 엄마이다.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이 걸음에 동행했다. 송씨는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굳이 왜 가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그런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순례에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는 안전하지 못한 대한민국을 보여준 심각한 사건이다”면서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이번 참사는 반복될 것”이라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꼭 이뤄져야 할 일이라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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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고 2학년과 같은 또래의 전주 중앙여고 2학년 이혜원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같이 걷는 것 말고 없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면서 “순례를 하는 유가족분들이 지금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끝까지 힘내셨으면 좋겠다”며 함께 땀을 흘리며 걸으면서도 순례단에 대한 응원을 잊지 않았다. 

이날은 전주지역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순례학교’ 소속 학생 16명이 함께 동행했다. 하루 순례를 마치고 김학일씨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자라면서 멸시받고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많은 볼 것이다. 그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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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21일 하루 순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22일부터 다시 진도 팽목항을 향한다. 이들이 팽목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들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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