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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담쟁이 넝쿨처럼 반드시 세월호, 그 진실의 벽을 넘겠다"

[동행] 세월호 십자가 유가족 순례단 34일차 전주 순례기..."포기하지 않고, 걷는다"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4.08.1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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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이 10일, 전주 시내를 지났다. 순례 시작, 34일 만이다.

“내 목숨이 위험해도 다른 이들을 구하려던 이들입니다/내 자식만 걱정 않고 남의 자식도 걱정하던 아비들입니다/내 새끼를 위해 죽음을 자처한 어미들입니다/목숨으로 자기 책무를 다한 선생님들, 승무원들입니다/옆에 있는 친구들 뿐 아니라, 딴 데 있는 친구들도 걱정하던 예쁜 학생들입니다.” <10일 저녁 우석대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특별 미사, 문규현 신부 강론 중 일부>

대한민국의 정의가 실종됐다.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앞에서 진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117일.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진실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대표는 지난 7일 기소권과 수사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합의안)에 합의했다.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방법으로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가 목숨을 걸고 요구했던 특별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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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할 십자가를 메고 순례를 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잊지 맙시다. 이 거룩한 이야기를 절대 잊지 맙시다. 이 숭고한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가치가 되도록 합시다. 우린 우리 사회의 가치 촛불을 계속 들고 밝혀야 합니다. 우린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촛불을 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살아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죽은 이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고, 사랑하고 헌신하며, 더 의로운 세상을 만듭시다” <문규현 신부 강론 중 일부>

정치권의 협잡과 같이 이뤄진 반쪽짜리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있었던 지난 7일, 전북지역 시민사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 사무실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안산 단원고에서 팽목항을 돌아 대전으로 향하는 1900리(750여km)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의와 진실이 정치권 문턱에서 멈췄지만, 거리와 현장에서 진실을 부활시키려는 몸짓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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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에 약 5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이 10일 전주에 도착했다. 김제 IC에서 오전 5시 30분 출발한 순례단은 전북교육청을 지나, 전동성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동성당은 영화 촬영지와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목적 중 하나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의 주인공인 윤지충 바오로가 신해사옥(조선시대 정조 15년, 1791년)으로 참수를 당한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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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을 떠나는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에게 세월호를 잊지않겠다며 전주 성심여고 학생들이 응원의 말을 담은 피켓을 만들어왔다.

윤지충 바오로는 당시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지만, 200여년이 지나고 윤지충 바오로의 뜻은 살아났다.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하고 싶은 권력의 욕망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 윤지충 바오로가 참수된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한 오후 걸음에는 무려 5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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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순례길에 많은 이들이 도움을 줬다. 전주 구간에는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도움이 컸다. 이날 비가 오는 와중에도 송년홍(정의구현 전주교구 대표신부) 신부가 길 안내를 도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들이 왜 죽었는지, 그들을 왜 못 구했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해요. 많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요. 지금 진실을 규명하지 못하면 언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유가족들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걷는 것 같아요” 

전주시 삼천동에 사는 정숙렬(여, 46)씨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56,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씨와 이아름(25, 고 이승현 학생의 누나)씨, 김학일(52, 고 김웅기 학생의 아버지)씨의 걸음에 발 맞춰 가며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손을 잡고 걸음에 함께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냥 걷는 것이지요. 전북 버스 투쟁도 그랬지만, 진실은 언제나 외면받았어요. 우리의 울분을 풀기만 하면 행정과 자본은 폭력과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몰아세웠죠. 그리고 한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전북 버스노동자들의 현실이 세월호 참사와 다른 것이 있을까요?”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지난 4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주시내버스 진기승 열사. 그의 죽음 앞에 사측은 ‘내가 죽었냐?’라며 맞섰고, 진기승 열사가 소속된 노조 지부장인 남상훈씨는 7월 3일부터 18일의 단식을 벌였다. 단식을 풀고 3주일, 아직 복식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상훈씨도 이날 오전부터 십자가 순례에 함께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 전북본부 소속 노동자 약 100여 명이 함께 뒤를 따랐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멋진 아빠·엄마인 노동자들이기에 누구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터. 이날 점심 100인분은 민주노총이 책임졌다. 

“담쟁이 넝쿨처럼 벽이 있다면 반드시 넘을 것입니다”

이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두 방울 내리던 비는 전주 시내를 지나 완주군 삼례에 위치한 우석대로 순례단이 방향을 잡자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우산을 펴는 이가 있었고, 급한대로 우비를 입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순례 길잡이가 되어 준 문규현 신부와 십자가를 짊어 맨 이호진씨와 김학일씨는 우비를 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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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부터는 비가 내렸다. 두 유가족은 우비도 입지 않은채, 걸음을 옮겼다.

세월호 참사에 덧 씌어진 거짓과 은폐를 씻어내려는 마음 탓일까? 이들은 묵묵히 걸음을 이어갔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말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합니다. 순례는 바로 그것을 바라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모든 이들이 세월호 앞에서 각성하기를 바라는 것이고요. 분명 하느님이 도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만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정의로움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진실을 바라는 마음,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걸음을 내딛는 인보성체수도회 한 수녀님은 잠시 쉬는 시간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이 수도회 20여 명의 수녀님이 이날 걸음에 함께했다. 진실을 바라고, 또한 시민들의 힘으로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는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도 같았다. 저녁 6시 우석대에 당도하고 승현 학생의 아버지 이호진씨는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는 뜻을 순례에 동참한 500여 명의 시민들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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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씨는 세월호 진실이 밝혀질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늘에서 보고 있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순례 도중, 처음부터 지금까지 ‘진실 은폐, 특별법 야합 무효’라고 적힌 피켓을 손에 놓지 않고 걸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을 보며 담쟁이 넝쿨이 생각났어요. 평지에서는 힘이 없지만, 높은 담벼락을 만나면 한뼘한뼘 담을 타고 끝내 그 담을 넘는 담쟁이 넝쿨. 그 정신을 생각하며 걸었습니다. 7일에는 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을 허무하게 말아먹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진상을 알릴 때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망월동 묘역이 성역이 되기까지 15년일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 먼 훗날에라도 명명백백 드러날 것입니다. 그 승리는 이 자리에 참여하신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믿음이 있다면 밝혀질 것입니다”

10일,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약 28km를 걸었다. 평소보다 더 걸었다. 얼마남지 않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더욱 힘을 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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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 대한 비판, 순례에 동참한 많은 시민들도 합의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학생은 순례가 끝날때까지 피켓을 놓지 않고 걸었다. 

김학일씨는 10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교황을 만나게 되면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정치권에 의해 어긋나버린 세월호 특별법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 117일, 유가족들은 힘내라는 말보다 잊지 않겠다는 말이 더 힘을 나게 만든다고 한다. 대참사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모든 죄인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것. 이것만이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다”

10일, 순례를 마치고 빗속에서도 진행된 특별 미사에서 문규현 신부는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는 일에 굽힘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설파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자들의 숙명이며 인간이 짐승이 아닌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뜻도 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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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김학일씨.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굴욕적 특별법 합의에 분노하며 농성 시작, 순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10일, 전주를 찾은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을 애타게 기다렸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날 걸음에 함께하지 못했다. 세월호 전북대책위 소속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세월호 참사 전북대책위를 이끌고 있는 이세우 상임대표과 회원들은 순례단이 28km를 걷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날로 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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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전북대책위는 지난 7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발표하자 이에 합의한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세우 대표는 세월호 십자가 순례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다는 마음을 기자에게 대신 전했다.

“누구보다 앞장서 순례에 함께해야 하고, 아픈 마음으로 십자가를 짊어져야 했는데 함께하지 못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데, 허울만 특별법이 만들어지게 생겨 이렇게 농성을 하고 있다”

여·야의 반쪽짜리 합의안 앞에 전국 곳곳에서 항의 표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굴욕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합의를 해 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크다. 

이세우 대표는 “사람에 따라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큰 실수는 자신의 행위가 과오라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제라도 유가족과 국민들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은 파기되고 유가족과 국민이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 대해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전북대책위는 의원총회 결과를 보고 농성 철수를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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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순례단. 이들은 오는 14일 대전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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