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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긴 터널 속에서 표류하는 세월호의 진실, "우리가 밝혀야지요"

[현장] 전라북도를 코 앞에 둔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 반나절 동행기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4.08.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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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에 나선 유가족 이호진(우), 김학일(좌)씨 

5일 오후 6시경 전남 장성군 못재터널. 이곳은 한때 ‘지옥터널’로 불릴 정도로 잦은 사고로 악명이 높았던 터널이다. 약 1.5Km의 터널을 넘어서면 5일 마지막 종착지인 장성읍이 보인다. 

터널에 들어서자 안을 밝히던 조명이 커지고, 걷는 발걸음마다 먼지가 올라왔다. 어둠은 점점 익숙해질 뿐, 출구는 구부러진 도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먼지가 입 안으로 들어오면서 속이 메스껍다. 

세월호도 긴 터널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어두운 터널은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 빚어냈다.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전히 많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이다. 유가족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20일 이상 목숨을 내놓고 단식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 의석 과반 이상을 차지한 새누리당은 귀를 막았다. 터진 입으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을 ‘노숙’으로 표현하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해결의 열쇠를 쥔 정부도 마찬가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광화문 앞 단식농성장이 불편해 어떻게 하면 정리할 수 없을까 고심 중이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대한민국을 위치를 볼 수 있는 바로미터. 어떻게 하면 이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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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후 진실규명에 정부가 소극적인 가운데,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 진실규명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며 도보순례, 단식, 1인시위, 서명운동 등을 벌이고 있다. 긴 터널 속에 표류하고 있는 세월호. 그 진실을 원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끝이 보이는데, 항상 마의 3Km가 한계야”

머리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말수가 조금씩 줄어든다. 마지막에 이를 때면, 긴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만 생각하고 걸을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못재터널을 절반정도 걷고 나니 순례 안내를 맡은 이가 노래를 부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독주로 시작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마무리는 떼창이 되었다. 500여 명이 함께 먼지 가득한 지옥터널에서 부른 떼창.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노래가 끝나고 모두들 환호성을 치며 먼지와 어둠을 이겨낸다. 멀리 못재터널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빛처럼 보이던 출구는 이내 커지고 한 수녀님이 앞에서 순례단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드디어 장성읍이 보인다. 표류하는 세월호 진실도 모두의 힘과 마음을 모은다면 밝힐 수 있을까? 그게 이 시대 희망이 아닐까?

이렇게 세월호 십자가 순례단은 30일차 순례를 마무리했다. 이날도 24Km를 걸었다. 오전부터 하면 모두 700여 명이 함께했다. 하루만 더 걸으면 전라북도에 당도한다. 전주까지 79Km. 목적지인 대전은 빠르면 13일에는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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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에 100명 이상의 시민들이 항상 함께하고 있다. 5일 순례에는 무려 700여 명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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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까지 79Km.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미사를 집전하는 대전까지 갈 예정이다. 

세월호 유가족 아프게 하는 정부, 그 마음 채워주려는 시민들 

세월호 십자가 도보 순례는 지난 7월 8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이호진(56,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씨와 아아름(25, 고 이승현 학생의 누나)씨, 김학일(52, 고 김웅기 학생의 아버지)씨가 안산 단원고에서 시작했다. 지난 28일에는 팽목항을 도착해 실종자 가족들과 마음을 나눴다. 

현재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 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는 대전월드컵경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다. 6일 현재 전북과 전남의 경계인 달재까지 왔다. 7일 하루 휴식을 취한 후, 8일부터 전라북도를 지날 예정이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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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선 주된 이유는 10분의 실종자 가족들이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옆에서 힘을 주기 위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십자가를 지고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잖아요. 너무 개탄스럽네요. 그래서 너희들이 안지면 유족인 내가 짊어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이 천리 길을 걷다보면, 이 행동이 세상에 작은 울림이 되지 않을까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 이승현 학생의 아버지 이호진씨)

십자가를 짊어지고 천리길을 나선 이유. 이 십자가을 짊어질 이들은 따로 있다. 박근혜 정부와 정치권이 바로 그들이다. 남은 실종자 가족들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과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것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그들에게 있다.  

“부모에게 가장 잔혹한 형벌이 새끼의 장례를 치르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죽어갔고, 남은 가족들은 이 고생을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꼼짝도 하지 않네요. 그렇다고 두 손 놓을 수 없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 부분이 진행이 안 되니 안타깝고 착잡하고 먹먹합니다”

지난 한 달, 순례에 처음 나설 때보다 많은 이들이 걸음에 함께한다. 이제 순례길도 익숙해 한결 발걸음도 가볍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편치 못한 것이 이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편치 못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동행하는 시민들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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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는 곳곳에서 시민들의 응원을 받았다. 

진도에서부터 5일까지 걸음에 함께한 임혜정(44, 광주 화정동)씨는 “두 아버지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이렇게 길을 나선 것이 너무 가슴 아파요. 지금은 힘을 실어드리고 싶다는 마음뿐입니다”며 동행 이유를 설명했다.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이었다. 어느 누구도 앞서가려 하지 않고, 묵묵히 두 아버지가 짊어진 십자가의 길을 뒤따랐다. 그들의 손에는 노란 우산과 작은 피켓이 들려있었다. 각자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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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손 잡고 걷는 걸음. 책임지지 않는 자들로 인해 잊혀지려 하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길은 잡은 손 놓지않는 것.

“광주에는 세월호시민상주 모임이 있어요.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3년상을 했잖아요.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최소 3년은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모였어요. 광주에만 마을별로 16개의 모임이 촛불도 들고 서명도 받고 있어요”  

이날 이 모임 회원 약 200여 명이 노란 우산을 들고 뒤따랐다. 이호진씨는 “오늘 날씨도 많이 뜨거웠는데 많이들 함께 걸어주셨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응원을 하고 계셔서 힘이 난다”며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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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순례길의 마무리. 많은 이들이 함께하니 더위도 이길 수 있다.

“이제 전라북도, 도민들의 마음 보여줘야 할 때” 

8일부터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는 전북을 걷는다. 정읍을 시작으로 김제를 거쳐 10일에는 김제IC에서 전주·완주 혁신도시를 지나 우석대까지 걷는다. 11일 익산을 빠져나고 그 후 충남을 거쳐 대전에 당도한다. 

전라남도에서는 천주교 광주교구와 광주시민상주모임 등 자발적으로 순례에 동참한 시민들의 힘으로 매 순례마다 100명 이상이 함께했다. 6일에는 김희중 천주교 광주교구장도 함께 걸음을 했다. 전북 일정에는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안내를 맡았다. 이병호 천주교 전주교구장도 하루 날을 정해 순례에 나설 예정이다.

정의평화위원회 김창신 신부는 “순례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뜻이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가려져 있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과 국회에서 24일 단식과 이번 순례처럼 유가족들이 고투를 벌이고 있다. 더욱 우리들이 깨어있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순례에 함께하면서 보고, 느낄 수 있다면 깨어있지 않겠나. 전북을 지나는 세월호 십자가 순례에 힘을 불어넣어 달라”고 전북 일정 동참을 호소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에 함께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달라야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304명의 희생자들을 역사 속에 되살리는 길을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부활이 아니겠는가”라며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더욱 이 걸음에 함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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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십자가. 이 십자가를 받을 이는 교황 프란치스코이지만, 이 십자가의 의미는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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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월호 십자가 도보순례의 자세한 일정은 페이스북 페이지 <한겨레21>에서 매일 저녁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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