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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으로 해안을 삼킨 원유 1천 250만 리터. 3년 뒤엔 이의 약 62배인 7억 8천만 리터가 미국 연안 멕시코만에 쏟아져 세계를 경악시켰다. 당시 영국 BP사는 피해 주민 10만 명에 배상했다. 그러나 멕시코만을 죽음의 바다로 만든 기름유출 사고의 87배에 달하는 681억 4천만 리터의 유독성 폐기물과 원유를 에콰도르 아마존 원주민 지역에 유출한 셰브런(Chevron)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먹튀’, 아마존의 검은 눈물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13일 서울 에콰도르 대사관은 ‘에콰도르 아마존 환경 오염 및 피해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 원주민과 자연에 대한 연대를 호소했다. 원주민은 텍사코사를 2001년 인수한 셰브런에 대해 피해 보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셰브런은 적반하장으로 에콰도르 정부를 고소한 상황이다.

 

1964년 텍사코사는 현지에서 철수한 1992년까지 에콰도르 수쿰비오스(Sucumbios)와 오레야나(Orellana) 주에서만 7천 1백만 리터의 원유 폐기물과 6천 4백만 리터의 원유를 방출해 2백만 에이커의 토양을 오염시켰다. 이 지역 면적은 여의도 크기에 맞먹는다.

 

피해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식수를 마련하고, 목욕하며 고기를 잡아 왔지만 유독성 폐기물에 오염돼 생계를 위협받을 뿐 아니라 질병 등으로 원주민 3만 명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수년째 방치된 폐기물 때문에 발암률은 크게 올라갔으며, 원주민들은 각종 피부 질환을 앓고, 임산부들은 기형아 출산하며 원주민 일부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출처=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

 

“오염된 물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다”

 

그러나 셰브런은 “이 문제는 에콰도르 정부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또, 과학자들을 동원, 발암은 폐기물이 아닌 지역 자체의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원주민 한 명은 “텍사코는 우리에게 오염된 물에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다고 얘기했다”고 지적한다.

 

텍사코는 당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정유회사가 시추 시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무시해 이 같은 피해를 유발했다. 시추 시 생성되는 유독성 폐기물들을 원유가 시추된 지하에 재투입해야 했지만 그 과정을 생략, 폐기물을 땅에 덮고 강과 하천으로 흘려보냈다.

 

이 때문에 1993년 지역 주민은 텍스코사가 초래한 환경, 주민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마존보호연합’을 결성하고 텍사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국제사법기관의 횡포였다.

 

에콰도르 원주민들은 1993년 미국 뉴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10년 간 계속된 텍사코의 압력으로 소송은 에콰도르로 이관됐다. 당시만 해도 텍사코는 에콰도르 법원의 판결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11년 에콰도르 북동부 스쿰비오스 주 지방 법원은 셰브런에 96억 달러 배상과 2주 내 공식 사과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배상액을 2배로 추징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셰브런은 이를 거부, 결국 2012년 에콰도르 법원은 190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법원이 원주민의 손을 들어주자 셰브런은 헤이그중재재판소에 에콰도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헤이그중재재판소는 에콰도르 정부에 지난 판결 집행 정리를 선고했다.

 

▲[출처=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

 

셰브런, 양자간투자협정(BIT) 이용 에콰도르 정부 기소

 

셰브런은 1993년 에콰도르와 미국이 체결한 양자간투자협정(BIT)을 들며 에콰도르 정부가 협정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BIT는 정부에 투자자 보호 의무를 부가, 의견 대립의 경우 정부가 해결을 보장하도록 하며, 이를 어기면 국제중재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부는 BIT가 텍사코가 철수한 지 5년이 지난 1997년 발효돼 헤이그중재재판부는 관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 또한 자국 헌법에 따라 판결 집행 중지를 법원에 요구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셰브런은 또, “에콰도르 정부가 테사코는 환경 복원 비용을 지불했다고 승인했으며, 과거와 미래의 그 어떤 환경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부는 1998년 당시 하밀 마후아드 정부가 서명하긴 했지만 이는 아마존 지역 사회를 돌보지 않는, 국민의 요구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며, 기소자는 정부가 아닌 피해 지역 주민들로 셰브런은 이에 응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견해다.

 

이외에도 셰브런은 환경적 영향에 관한 책임은 컨소시엄을 맺은 에콰도르 ‘페트로 에콰도르’ 사의 책임이라고 떠밀고 있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각종 근거를 토대로 주된 환경적 영향은 텍사코사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셰브런은 또 환경 피해가 분명하고 복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텍사코를 인수했음에도 자사는 에콰도르에서 한 번도 사업을 운영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셰브런은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에 대해 에콰도르 정부가 재판에 개입했다며 비난하지만 이전 정부 관계자들이 셰브런과 가졌던 11차례 공식 회의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이 회의에는 에콰도르 2명의 전 대통령과 부통령, 에너지 자원 관리 부처 장관, 내무장관 등이 참여했다.

 

에콰도르 정부에 따르면, 이러한 셰브런사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들여 반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국 상원과 통상부에 에콰도르 신용을 추락시키고 관세혜택 갱신 불허 등 무역 피해를 주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에콰도르 정부는 이러한 셰브런의 문제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한편, 국민과 환경 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우선하는 양자협정을 취소하거나 중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반대하는 국제 회의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니꼴라스 뜨루히요 뉼린 주한 에콰도르 대사가 기자간담회에서 아마존 원주민의 피해 실상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

 

에콰도르 원주민에 대한 연대의 손길

 

지난 12일 에콰도르 대법원은 셰브런에 주민들에 88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그러나 셰브런은 이를 사기라고 주장, 주민에 대한 배상금 지급 거부 입장을 고집한다.

 

셰브런은 원주민들에게 고통스런 삶을 남기고 떠났지만 원주민들이 혼자인 것은 아니다.

 

미국, 독일 등 세계적으로 에콰도르 아마존 원주민과 자연에 연대하는 조직들이 결성, 국제적 바람이 일고 있다. 한국에서 이들 연대 모임은 ‘대한민국연대위원회(KSC)’라는 이름으로 추진된다. KSC는 선언문에서 셰브런에게 “텍사코사가 석유 시추를 한 지역에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보상과 환경 파괴 비용 부담을 에콰도르 정부에 전가하는 것을 멈추라”고 지적한다.

 

에콰도르 정부는 암 투병 중인 피해 주민 등에 대해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셰브론의 배상 거부로 인해 금전적인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니콜라스 뜨루히요 뉼린 주한 에콰도르 대사는 “경제적 규모로 보자면 셰브런 사는 에콰도르 전체보다 훨씬 크다. 우리는 원주민들의 정의와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국제적인 지원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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