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뉴스

지난 8월 25일, 고용노동부는 “청소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모든 업종의 사업주는 휴게실•샤워실 등의 위생시설 설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여러 절차를 거쳐 빠르면 내년 1월 26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저임금노동자에게는 반길만한 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종종 노동자의 삶을 외면하곤 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으로 전락했고, 노사관계로드맵과 복수노조는 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는 어용노조의 양산을 불러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 정리해고를 온몸으로 막던 고 김주익 열사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을 압박할 무기로 손배가압류가 이용됐다.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한끼 밥을 올리는 것도 법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정리해고는 오죽하랴.

 

마찬가지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청소노동자의 위생시설 설치는 보장받게 되겠지만, 휴게실이 있는 작업현장을 살펴보면, 단순히 “설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소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소리에서는 3회에 걸쳐,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쉴 권리와 현재 파업중인 전주대/비전대 청소비정규직 노동자의 쉴 권리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4평 규모 콘테이너에서 30명의 노동자가 쉴 수 있나요?”

 

전주시민회는 전주 시내버스 종점 휴게소를 개선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지난 22일 발표했다.

 

전주시민회는 “전주교도소 시내버스주차장에 있는 버스노동자 휴게실로 쓰이게 될 컨테이너 박스가 열악하다”면서 “4평 규모로는 약 30여 명의 버스노동자가 쉬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전주교도소 시내버스주차장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는 얼마 전 불타버린 휴게실을 대신해 전주시가 들여놓은 것이다. 전주시에는 전주대, 통계청 종점 휴게소를 비롯해 전주교도소까지 버스노동자가 쉴 수 있는 휴게실은 총 3곳에 마련되었다.

 

▲최근 새롭게 만든 버스노동자 휴게실. 지금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 소식은 빠르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전주시는 급하게 컨테이너 박스를 치우고 기존의 것보다 약간 넓고 좋은 컨테이너 박스를 들여놓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고, 기자가 방문한 29일 새롭게 설치한 휴게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한 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설치되고 5일 가까이 되었지만 한번도 개방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에어컨 사고, 쓰면 전기세 드니까 가을에나 개방할랑가보지!"

 

새로 생긴 휴게실, 굳게 잠긴 휴게실, 쉴 권리보다 전기값이 우선?

 

굳게 잠긴 휴게실 옆에 나무그늘에서 삼삼오오 쉬고 있는 시내버스 노동자의 얼굴에는 작은 땀방울들이 맺혀 있다. 매미의 울음소리와 3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기운이 아스팔트를 달군다. 그리고 버스의 엔진소리는 버스노동자를 재촉하듯 요란하다.

 

"105번 버스하고, 119번 버스의 코스시간은 2시간 10분이다. 그리고 보통 한 노선이 1시간 40분에서 20분이다. 특히 출퇴근시간에는 죽음이다. 여유가 있는 시간은 낮시간에 20분도 쉬고 그렇지만, 대다수의 노선은 5분도 못 쉬는 경우가 허다하다."

 

휴게실 시설이 어떤지 물으려 찾은 기자에게 버스노동자들은 휴게실보다는 자신들의 노동조건부터 이야기 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궁전처럼 휴게실을 꾸며놓아도 그림의 떡이면 아무 소용없다. 전주 시내버스 노동자에게 현재 휴게실은 궁전도 아닌 것이 그림의 떡처럼 느껴진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 점점 늘어나는 자동차들. 버스노동자는 전주 시내 곳곳을 2시간 넘게 다닌다. 종점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지만, 그들을 반겨줄 휴게실은 굳게 잠겨있다. 거기다 3분, 담배 한 대 피고 나면 다시 2시간동안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화장실 따위도 버스노동자에게 꿈 속의 궁전일 따름이다.

 

▲2시간의 운전끝에 잠깐의 휴식, 길게 늘어선 버스만큼이나 버스노동자도 종점에는 많이 있다.

 

“박스 하나 갔다 놓고 휴게실 만들었다고 하면 쓰것냐”

 

"단 10분이라도 잘 쉬면야, 힘들어도 2시간 운전 못하겠나. 군대에서도 더운 여름에는 1시간 오침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버스노동자는 군대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봄, 가을은 좀 선선하니 밖에서 있어도 되지만, 여름하고 겨울은 그렇지 않다. 운전하기도 힘든데, 힘들게 종점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 운전할 맛이 나겠냐?"

 

버스노동자에게 휴게실과 쉬는 것 등에 대해 묻는다면 쉽게 버스노동자의 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겨울에 추워도, 여름에 더워도 마땅히 쉴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리고 그런 노동을 10년 이상 해왔지만, 버스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작년 민주노총 버스노동자가 파업을 하고 버스를 멈췄을 때, 아주 조금 버스노동자의 삶이 드러났다. 그것도 잠시. 버스파업이 길어지자 지역의 보수 언론과 지자체는 시민의 발을 더이상 묶지 말라며 버스노동자를 공격했다.

 

▲전주교도소 시내버스주차장의 휴게실은 굳게 잠겨 있고, 그 옆 나무그늘이 노동자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지옥같은 출퇴근 길에도 운행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3분간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그 지옥길을 나서야 하는 버스노동자. 사실 지금과 같은 노동조건에서 노동자에게 친절과 서비스를 요구한다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그러나 지자체와 사측은 버스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보다는 길들이려는 데 더욱 혈안이 되있는 것 같다. 굳게 잠겨 있는 전주교도소 시내버스 종점 휴게실은 그 한 예가 아닐까?

 

시내버스 파업이 일단락 된 지, 3개월이 지나간다. 하지만 버스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파업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단지 한발 양보했을 뿐이다.

 

이들의 임금부터, 점심식사, 버스 배차와 노동시간, 그리고 휴게실 문제. 하나하나 살펴보면 과연 전주에서 버스노동자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파업을 시작한 버스노동자. 그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