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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5일, 고용노동부는 “청소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은 모든 업종의 사업주는 휴게실•샤워실 등의 위생시설 설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여러 절차를 거쳐 빠르면 내년 1월 26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저임금노동자에게는 반길만한 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은 종종 노동자의 삶을 외면하곤 한다.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으로 전락했고, 노사관계로드맵과 복수노조는 노동자의 투쟁을 가로막는 어용노조의 양산을 불러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 정리해고를 온몸으로 막던 고 김주익 열사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을 압박할 무기로 손배가압류가 이용됐다.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한끼 밥을 올리는 것도 법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정리해고는 오죽하랴.

 

마찬가지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청소노동자의 위생시설 설치는 보장받게 되겠지만, 휴게실이 있는 작업현장을 살펴보면, 단순히 “설치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청소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소리에서는 4회에 걸쳐,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쉴 권리와 현재 파업중인 전주대/비전대 청소비정규직 노동자의 쉴 권리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움은 누군가 아름답다는 것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타인에 의해서, 혹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한다.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이 땅의 노동자들은 종종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예의 삶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파업을 한다. 1,500만 노동자. 이 땅에 살아가는 1/3의 국민이 노동자이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파업은 노동자가 인간다움을 쟁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무기지만, 이 사회는 기업에게 ‘공격적 직장폐쇄’라는 방패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 기업에게 다양한 아이템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때론 하늘로 오르고, 곡기를 끊고, 자기 무릎이 부서져라 삼보 일배를 하고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낸다.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노동자의 삶이 사회에 의해 노예로 규정되는 순간이다.

 

12개 만근, 사실은 24일 일하는 꼴

 

전주시내버스 노동자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쉼을 반복한다. 30일이 한 달이면, 보름 가까이 일하는 셈이다. ‘하루 일하고, 하루 논다?’, 단순히 이 말만 믿으면 노동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이 땅에서 진실은 언제나 은폐되어 있는 법. 버스노동자에게 하루 노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8시간 노동이 아니다. 하루 18시간 노동. 버스노동자의 12개 만근은 사실상 24일 노동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일하는 셈이다.

 

OECD국가 중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2008년 평균 노동시간은 한 달 188시간. 그러나 전주 버스노동자는 이보다 4시간 많은 192시간을 일한다.

 

▲지난 버스파업은 버스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폭로했다.

 

버스노동자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해서 저녁 10시에 끝난다

 

새벽 4시경에 일어나, 버스가 있는 차고지까지 이동해서 버스를 가지고 다시 첫차 출발지까지 버스를 가지고 가야한다. 대략 본격적인 버스운전을 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2시간. 그러나 버스노동자의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렇게 최소 1시간 40분 코스에서 2시간 10분 코스까지 배정받은 코스를 오전 내내 달린다. 아침 출근시간의 지옥 같은 도심도 이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쉬는 시간을 가지려면 말이다.

 

“이 시간대 만약 어르신이 지팡이 짚고 오른다고 해봐라.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마음은 급한데... 그런데 어느 전주 시내버스 운전수들이나 마찬가지다. 정해진 배차시간표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부랴부랴 움직여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정신 없이 운전을 하고, 먹는 점심과 저녁도 정신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점심시간, 저녁시간이다. 운전,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 버스노동자의 하루는 그렇게 빠르게 간다.

 

시민여객 지회장 오해관씨는 말한다. “전주 시내버스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은 18시간이다.”

 

대중교통은 공공서비스이다. 하지만, 전주 시내버스사업주는 민간업자이다. 민간업자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영하지 않는 이상, 이윤을 추구한다. 그리고 노동자를 부린다.

 

“버스노동자들이 전주 시내버스의 노동조건에 불만이 많다. 우리도 친절한 서비스를 하고 싶지만, 노동조건이 혹독한데, 어떻게 서비스가 나오냐? 그렇다고 불만 제기하면 업주들은 배차를 안 넣는다.”

 

 

이MB씨, 점심시간도 없는 삶이 노동자의 삶이라면 문제인 거 아닌가요?

 

전주 시내버스노동자에게 점심시간은 꿈만 같은 일이다.

 

“점심시간이 딱 정해진 것은 아니다. 각자가 알아서 맞춰 먹는 것이다. 보통은 10시 30분부터 점심이다. 그리고 저녁은 3시 반부터 시작한다. 식당이 없는 곳은 승객이 보면 민망하니까 빵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10분만에도 먹어야 하고, 그보다 안될 때도 있다”

 

하루 걸러 하루는 꼭 이렇게 점심을 먹어야 한다. 출근 지옥을 지나 버스노동자를 기다리는 것은 점심 지옥, 그리고 저녁 지옥과 퇴근 지옥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가버린다.

 

“전주대를 거쳐 만성동까지 가는 버스는 밥을 거의 못 먹는다. 아니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스를 엄청 빨리 몰아야 겨우 먹을 수 있다.”

 

전주대 종점에서 쉬고 계셨던 버스노동자들은 점심 때 밥을 먹기 위해서는 “불자동차보다 빨리 몰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노동시간은 192시간으로 최장, 임금은 최저임금

 

“물가는 오르는데, 우리 임금은 뒷걸음이야. 앞으로 갈려다 말어.”

 

10년 전 130만원 받았다는 한 버스노동자의 하소연이 목에 걸린다. 현재 전주 시내버스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대략 170만원 수준, 주휴수당, 연장수당, 야간수당 등을 다 합쳐야 가능한 임금이다. 10년 전 130만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이 적용받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한 달 평균 노동시간보다 더 일하지만, 점심과 저녁시간 하나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지만, 시간당 평균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전주시의 대중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에게 박한 금액이다.

 

오늘도 버스는 달린다. 전주 시내버스는 묵묵히 전주시민을 태우고 앞만 보고 달리는 시내버스. 시민의 불편을 불러왔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노예가 아닌 인간이고 싶다”, “점심시간 보장하라”, “통상임금 지급하라” 등 악랄한 노동강도에 맞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쟁하는 노동자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악랄한 노동강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가로 막았다.

 

 

노동자! 점심시간 하나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 노동자 쉴 권리도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 사회에서 버스노동자의 삶은 노예의 삶과 다름 없다.

 

마땅히 아름다워야 할 전주 시내버스노동자의 삶의 진실. 지난 파업기간 길었던 것은 아직 이 사회가 그 진실을 대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점심시간 없는 노동, 휴게실 하나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노동, 그리고 삶을 바꾸려는 파업과 투쟁. 지난 1년간 버스노동자의 투쟁은 이 모든 것을 보여줬다. 때론 좌절도 했지만, 다시 일어났다. 비록 이 사회가 준비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더 이상 이들의 삶과 노동을 외면할 수만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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