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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방 MB 네거티브 야권연대엔 대안사회 희망 없었다

김용욱( newscham@newscham.net) 2012.04.13 08:42

 

서울 양천구을 지역에 사는 시민 A씨는 야권 지지자였다. A씨가 사는 양천을 지역은 서울에서도 변두리 낙후된 지역에 속하는 전형적인 서민층이 많은 지역구였다. A씨는 이명박 정부가 워낙 실정을 많이 한 탓에 이번 선거에서는 자신의 지역은 당연히 야권이 되고, 자신도 야권연대 후보를 찍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투표 며칠 전 집으로 날아온 각 정당 공보물과 지역 후보자 공보물을 보고 경악을 했다. 그는 이때부터 지역구 야권 단일후보를 찍어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야권연대 성사에 대한 홍보 외에 눈에 들어온 공약이 너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천을 지역은 민주통합당 임시 공동대표를 맡았던 이용선 후보가 출마했다. 이용선 후보는 노동운동을 하다 경실련에 들어가 시민운동을 했다. 민주통합당의 통합을 주도한 혁신과통합 공동대표를 맡았고, 초기 민주통합당 임시지도부를 맡을 정도로 시민운동 진영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민주화, 노동, 시민운동에 헌신했다는 이용선 후보의 가장 큰 공약 중 하나였던 양천구 교육컨설팅복합센터 설립 추진공약에 ‘국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 등 대상의 우등생 공부방’, ‘장학생 공부방’, ‘학습전략실 운영’ 등이 담겨 있었다.


A씨는 “민주진보개혁을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이 이런 공약을 내 놓은 것을 보고 순간 야권연대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졌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투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순간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단 네 페이지의 공약 내용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 공약이 새누리당과 똑같은 경쟁, 입시 중심의 교육정책이었다”며 “입시중심 교육에 대한 대안은커녕 우등생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고, 대학 진학을 지원하겠다는 이용선 후보의 발상은 애초에 야권을 찍으려 했던 유권자조차 깜짝 놀라게 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이용선 후보는 김용태 새누리당 후보에게 1,780 표차로 패배했다. 선거 3일전인 8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당과 정책협약을 맺고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함께 이용선 후보를 찾아가 정책협약 퍼포먼스 공동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명숙 대표는 “우리는 비정규직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했다.

 


네거티브 전략만 강조한 야권연대의 오만


이용선 후보 사례는 민주-통합진보당의 반MB-반새누리당 네거티브 야권연대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MB의 실정으로 야권이 절대 유리하다던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152석이나 장악하게 된 데는 반MB 야권연대만 이루면 무조건 수도권과 상당수 지역에서 이긴다는 민주-통합진보당의 오만이 작동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오만 뒤에는 정책의 차별성이나 대안사회의 희망을 전혀 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연대 협상과정과 후보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통합진보당의 오만과 민주당의 여권 후보와 야권연대 후보에 대한 이중 잣대 등은 야권의 민심이반을 가속화했다. 새누리당은 부족한 검증 시스템 속에서도 당내 기득권 세력을 척결하는 이벤트를 벌였지만, 민주당은 진보적 정체성 논란을 일으키는 인사들과 친노의 부활로 새로이 대변되는 18대 총선 탈락자 공천을 강행했다.


통합진보당은 야권단일 후보 경선과정에서 드러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조작 사건과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둘러싸고 보여준 통합진보당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태도가 상당수 젊은 층과 울산과 창원의 노동자 벨트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계파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인사들이 비례 당선권과 야권연대 전략적 양보 지역에서 대거 자리를 차지하면서 진보가 상징해 왔던 대중을 위한 헌신이 특정 계파의 권력장악 계획이었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경기동부연합으로 알려진 윤원석 성남 중원을 후보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난 상황에서 후보인준을 강행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진보적 유권자들의 이반은 계속 됐다. 당을 위해 헌신한 특정 계파가 대거 후보가 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성추행 전력, 성폭력 2차가해자 면죄부 등으로 문제가 되었던 후보들이 모두 경기동부연합 논란에 휩싸이면서 진보의 가치를 중요시 했던 정통지지 세력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경기동부연합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 이런 경기동부연합의 약점을 파고든 보수언론이 씌운 색깔론은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통합진보당 울산과 창원의 또 다른 패착은 현직 시도의원이 사퇴를 하고 총선에 출마하면서 진보의 정체성 논란을 가속화 시킨데 있다. 통합진보당은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울산과 창원의 시도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전국운영위원회에서 결정했지만 후보들은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여기에 대해 통합진보당은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아 당의 정체성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한 사회단체 관계자는 “진보정당 운동이 진보성이나 변혁성이 탈각 되면서 남는 것은 권력욕만 남는다. 그래서 비민주적 행태의 권력싸움만 남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물 쇄신 밀린 상태서, 대안사회 희망도 못준 야권연대


이렇게 인물 쇄신에서 새누리당에 밀린 상태에서 대안적 사회에 대한 희망을 전혀 제시해 주지 못한 것이 야권연대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선거 초기 주요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 경제민주화 등은 새누리당과 큰 차별화가 되지 못했다. 한미FTA 문제도 선거를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어정쩡한 정책연합을 이뤄 강력한 지지자들에게 실망의 한 변곡점을 이뤘다. 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치가 외쳐왔던 근본적인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포기한 단순 복지 차원의 논쟁이 됐고, 새누리당과 정도의 차이로만 인식됐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도 민주-통합진보는 반MB 네거티브로만 선거를 돌파했다는데 있다. 야권연대의 핵심 명분이었던 MB심판-새누리심판은 삶의 희망이나 진보가 아니라 네거티브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양당은 김용민 막말 파문이 일 때도 정책적 대안 제시로 돌파하기 보다는 새누리당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이어갔다.


반값 등록금 문제나 복지논쟁은 단순히 재원을 누가 더 마련하느냐의 차이였을 뿐, 빈곤과 비정규직, 해고를 낳는 근본적인 사회시스템 변화에 대해서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도 구 민주노동당이 15년 전부터 외쳐온 재벌체제 해체가 아니라, 적당한 수준의 재벌 규제일 뿐이었다. 재벌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새누리당에서도 나오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당의 재벌에 대한 규제는 새누리당과 똑같이 빵집 규제 같은 재벌의 골목상권 장악 문제로만 인식됐다.


앞에서 얘기했던 사회단체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는 진보와는 전혀 상관없는 새누리당도 하는 얘기”라며 “자본주의 체제나 재벌과 대기업의 소유 질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 개념으로, 재벌을 통제하거나 해체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화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전반적으로 통합진보당이 반신자유주의 개념을 다 버리고 민중운동의 중요한 과제를 다 버린 것 아닌가 싶다”며 “조세정책을 봐도 현실 제도 안에서 일부의 부작용만 완화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진보라고 하는데 무슨 목표와 지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점규 전 금속노조 단체교섭국장은 “선거 초반에는 재벌에 대한 무한 자유를 주는데서 파생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일자리문제가 쟁점으로 살아 있었는데 중반부터 사라졌다”며 “민간인 사찰 문제가 터지고 청와대가 물타기를 하고, 막말 문제가 터지자 야권에서 민생문제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평가했다.


정책에 대한 혁신적인 고민이 없는 상황은 비례대표 후보나 지역구 후보 공천과정에서 변법조인이나 유명인들 위주의 공천으로 이어졌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목표로 하는 순간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됐다. 박점규 전 국장은 “반MB 야권연대 후보들이 새누리당 후보를 찍으면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킬 만한 후보가 아니었다”며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투쟁으로 재벌에 맞서 싸우거나 헌신적으로 연대한 사람은 야권연대 후보에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반MB 심판에 인기가 있거나 조금 알려진 사람들을 데려왔다. 인물대결에서도 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진보적 사회단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시민들은 더는 민주당이나 통합진보당 자체를 대안으로 보지 않았다”며 “이정희 대표의 후보 사퇴, 정진후 논란, 윤원석 성추행 논란으로 통합진보당이나 보수정당이 다른 것은 없다고 보기 시작해 정당 지지율이 낮게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대표는 12일 오전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새누리당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 의지는 확고했지만 야권이 민생에 대한 비전과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데 미흡했다”며 “또 공천 과정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이 과감한 내부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데 소홀해 선거 과정에서 보수가 결집할 수 있는 많은 빌미를 줬다”고 진단했다.


한편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진보진영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드러낸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나 진보의 정체성엔 대한 인식을 다시 곱씹어 볼 필요도 드러났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정진후 후보에 대한 2차 가해자 면죄부 논란이 끊이지 않자 진보에게만 높은 도덕성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반박한 바 있다. 경기동부연합의 한 인사도 “오래전 문제를 가지고 정진후 전 위원장을 언제까지 물로 늘어질 것이냐”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MB 구호만 나부끼고, 정책적 차별성도 없는 선거에서 도덕성마저 차이가 나지 않는 후보들이 당선권을 차지한 것도 되짚어 봐야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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