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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죽음의 핵 현장.

경은아( 1) 2011.06.16 00:24 추천:58

후쿠시마 원전폭발 이후 독일과 스위스가 원자력 발전 폐지를 결정한데 이어 지난 13일 이탈리아에서는 원전 발전 재개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 국민 94%가 반대하는 등 세계적으로 반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신화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요즘 전 세계 핵 실험장과 피폭자 취재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모리즈미 다카시(59)가 방한해 14일 전북대에서 <후쿠시마에서 한국까지, 죽음의 핵을 말한다> 강연회를 열었다.

 

▲14일 전북대학교 바오르홀에서 진행된 "후쿠시마에서 한국까지, 죽음의 핵을 말한다" 강연회. 모리즈미 다카시(좌)는 세계의 핵 실험장 등을 돌아 다니며 찍은 사진을 설명했다.

 

모리즈미 작가는 후쿠시마 원전폭발의 문제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카자흐스탄 등에서 벌어진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벌인 핵실험의 야만성과 이라크전에서 사용되고 있는 열화우라늄탄의 심각성도 함께 전했다. 

 

 

사건 축소에만 급급했던 일본정부는 “살인자”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직후 현장에 찾아간 모리즈미 작가는 “원전이 있는 마을 중심지에서 방사선 측정기 3개가 다 최고 측정 수치를 넘어 오염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위의 마을에서 “미처 피난을 못한 할아버지도 있었고, 비닐하우스에 있는 꽃에 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시 마을을 온 주민도 있었다”며 그는 “정부가 마을을 봉쇄하고 (심각성을) 알렸어야 했지만 전혀 하지 않았다”며 “사람들의 생명을 무시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살인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피난권고가 내려진 지역에게 새로운 피난처를 알려주지 않았고 가축에 대한 원조도 하지 않았다”며 “주민은 스스로 피난처를 찾았고 가축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모리즈미 작가는 정부가 원전폭발을 축소 발표하는데 급급했다며 “원전을 중심에 두고 컴퍼스로 원을 그려 반경 20km 지역을 피난지역으로 발표했지만 오염된 곳을 컴퍼스로 그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오염 당시 바람 방향이나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데 당시 북서풍이 불고 있는 지역이 오염됐다”고 꼬집었다.

 

그는 “후쿠시마의 많은 주민이 심각한 방사능 수치에 노출됐고, 방사능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고향을 빼앗아 버렸다. 앞으로 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2차 3차 공포를 마주 보고 살아야한다”며 “국가와 전력회사의 ‘안전신화’에 세뇌되어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원자력 발전이 아닌 자연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안전신화를 칭송하는 표어가 내걸린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 지역. 지자체는 원전 유치 대가로 정부나 도쿄전력에서 받는 보조금 등으로 형편이 넉넉해지자, 마약중독처럼 원전에 의존하는 체질이 되었다.

▲원전 주변의 오염으로 쓰나미 희생자의 수색을 1개월 이상 할 수 없었다. "원전사고가 없었다면 살아있던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경찰관이 말했다.

▲3만 베크렐(Bq) 이상의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논은 어제 쌀을 다시 재배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원유의 출하정지로 수입이 없어진 낙농가는 먹이를 줄이지 않을 수 었었다. 그런데도 소는 젖을 내려고 하여, 여위고 쇠약해져 갔다. 하세가와 씨의 소가 처리되었다. 스스로 비극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비디오카메라를 돌리던 하세가와 씨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

▲농민의 항의에 사죄하는 도쿄본사의 사원. 단지 사죄할 뿐 배상금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핵실험의 모르모트가 된 주민들

피폭 당하고도 계속 건강변화 추적 당하고 치료 받지도 못해


모리즈미 작가는 구소련의 핵실험 장이었던 세미파라친스크(현 카자흐스탄)의 피폭피해도 전했다. 그는 “핵실험이 477회 일어났다. 체르노빌의 5000배가 넘는 방사선 물질이 유출되고 주변에 살고 있던 수백명이 피폭됐다. 그러나 지금 정부로부터 버려진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더욱이 구소련은 의도적으로 주민을 피폭시키고 신체변화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왔다고 밝혔다.

 

“세계 처음으로 수소폭발 실험 당시 주민은 피난하게 됐지만 카이날 마을에는 남자 43명이 실험을 지켜보도록 남겨졌다. 핵폭발이 일어났고 방사선 물질에 직접 피폭됐고 정기적으로 소변 혈액 머리카락을 검사받았다. 그러나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 42명 중 41명이 사망했다”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을 지켜봐야 했던 피폭된 42명 중 마지막으로 남은 에레오가제 씨는 "나는 모르모트 취급을 당했다"고 분노했다.

▲핵실험장 동쪽의 드론 마을에는 많은 병자가 살고 있었다. 가난해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실험장에 인접한 마을에서 다리 6개 송아지가 태어났다. 다로니 마을

 

뒤이어 미국도 히로시마의 1000배가 넘는 위력의 수소폭탄 실험을 마셜제도의 비키니섬에서 진행했고 실험지역의 동쪽으로 180km 떨어진 마을 사람들도 피폭됐다. 그러나 미국은 실험당시 “동풍이 불고 동쪽에 사람이 살고 있고 피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실험했다”고 폭로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서쪽에서 태양이 떴다. 태양을 손으로 가려서 봤는데 그 빛으로 뼈가 보일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그 후로 큰 충격이 왔고 천둥의 몇 배가 넘는 폭음이 났다. 점심쯤이 돼서 흰 분말 가루가 날라 왔다. 야자수에도 내리고 우물에도 분말이 떨어졌다. 어린이들은 눈이라 생각해서 만지고 맛도 봤다. 그런데 이 분말은 방사능을 가진 죽음의 분말이었다. 주민들은 그것들을 먹었다. 저녁이 돼서 주민들이 머리가 아프고 구토 어지럼증 설사 피부가 화상을 입은 증상이 나타났다. 모든 병이 급성으로 바뀌는 현상이다. 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마을은 크게 오염됐고 작은 배 하나 없어 탈출도 못했다. 미 군함이 구출을 왔을 때는 54시간이 지난 후였다”

 

모리즈미 작가는 이들도 소련의 피폭자처럼 정기적으로 건강변화를 추적당했고, 미국은 그들을 치료해 주지 않았다며 “97년 비밀문서가 발견돼 마을 주민이 실험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46년 핵실험 이후 여전히 그곳은 오염돼있다고 덧붙였다.

 

이라크에 떨어지고 있는 열화우라늄탄, 100명 중 3명을 기형아로

 

열화우라늄탄은 방사성물질로 만들어져 주성분인 우라늄238은 반감기가 45억년으로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만큼 흘러야 반으로 감소한다. 즉 열화우라늄의 피해는 영향은 영구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즈미 작가는 이 무기사용으로 어른들이 주로 걸리는 암이나 백혈병을 5살 된 아이가 걸리는 등 질병의 패턴이 바뀌고 있으며, 한 병원에서 태어나는 1000명의 아이 중 30명이 기형아로 태어나고 있는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병원을 취재하면서 3시간 동안 4명의 기형아를 보게 됐다. 병원 의사는 취재협조에 적극적이었는데 한 의사가 신생아 실로 다급하게 불렀다. 그는 사진을 잘 찍으라면서 (무뇌증으로 태어난) 이 아이는 30분이 지나서 죽을 것이다. 당신이 사진을 찍어 세계에 이 피해를 알리는 것이 이 아이가 태어난 이유일 것이라고 얘기했다.”

 

▲바그다드 대학병원의 한 의사는 이 병원에서 태어나는 1,000명의 아이 중 30명이 기형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담후세인으로부터 발신되는 정보는 서양에서 다 무시되고 있지만, 제가 본 현실은 보여주기 위한 정보가 아니라 정말로 현실에서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며 “바그다드 중심부 등 대도시에 사용돼 직접적인 피해가 퍼져갈 것”이라고 깊은 우려를 표했다. 

 

모리즈미 작가는 "더 많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원전 없는 새로운 사회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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