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도의 신주쿠구. 규모는 더 크지만 한국의 광화문, 명동과 비슷하다.
신주쿠는 신주쿠역과 그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거리를 말한다. 시부야, 이케부쿠로와 더불어 도쿄를 대표하는 3대 부도심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 상업지구의 하나다. 신주쿠역은 매일 200만명 가량의 승객이 오갈 정도다.
이중 신주쿠역 동쪽은 오래된 백화점이나 쇼핑몰, 음식점 등이 밀집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신주쿠역에서 나선 일본인들의 만남의 장소인 스튜디오 '알타' 건물 앞 작은 공원에 수많은 이들이 서성인다.
복잡한 도심 한 가운데 이 공원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핵'을 외치는 집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2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도쿄 번화가의 사람들은 원전 사고 1년이 지난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22일 도심 한 가운데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본다.
후쿠시마서 떨어진 도쿄 도심서 만난 사람들,
“특별한 이유 없지만 방사능으로부터 안심”...후쿠시마 방문은 글쎄?
일본 정부 사고 수습 선언에도 방사능 위험 걱정
핫스팟 지역, 성별, 나이 등에 따라 의견 분분
익명을 요구한 21세 회사원 A씨는 알타 스튜디오 앞 공원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를 뒤덮고 있는 '방사능 공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며 "나는 원자력발전소 인근 출신인데, 방사능 문제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살았던 후쿠이현은 총 52기 일본 원전 가운데 13기의 원전이 들어서 있다.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안심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안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현에 갈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후쿠시마에 가본 적은 없지만 방사능 위험이 심각한 지역에 간다면 걱정이 된다"며 선뜻 가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지역은 잘 모르지만, 도시인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위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과 물건 판매 가게가 즐비한 신오오쿠보 지역(도쿄 한인타운)은 수많은 일본인이 한국과 만나는 곳이다. 신주쿠역과 근접해 쇼핑몰, 유흥가 골목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번화가의 일부다.
이곳 호떡가게 앞에 줄지어 서있던 야마가타현(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11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도시)에 사는 10대 학생 B씨는 "작년에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이 위험해 병에 걸릴까 봐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게 됐다"며 "방사능 위험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서 음식 먹는 것 등이 꺼려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도쿄에 살고 있는 후지와라(23세) 씨는 "방사능은 무섭지만 후쿠시마 원전과 거리가 떨어져 있어 걱정하지 않는다"며 "원전 사고와 관련된 소식은 TV와 인터넷으로 접하는 데 일본 정부가 정보를 늦게 공개하는 것 같다"는 평소 생각을 전했다.
이어 그는 사고 발생 10개월 만에 일본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사고 수습' 선언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로 이사 갈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안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후쿠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가나가와현(도쿄 서쪽에 위치)에 살고 있는 가즈메(44세) 씨, 가즈에(44세) 씨 역시 '방사능 공포'는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나이'를 들었는데, 아이들보다 어른이 방사능 영향에 덜 민감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한국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궁금하다고 도리어 물던 가즈메 씨는 "방사능 위험에 대해 오버해서 반응하거나 보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남편은 농민들의 삶이 걱정되어 후쿠시마산 야채를 먹으라고 한다. 방사능 위험에 대한 정보 중 유언비어도 있기 때문이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은 걱정이 많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사고 1년이 지난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경계구역과 계획적 피난구역에 대해 방사성 물질 오염을 제거하는 작업과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꼽기도 했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타당성을 묻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이들은 "지금과 같이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면 원자력발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지만 안전성이 확보된다면 가동시켜도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2년가량 생활한 한국인 이주노동자 김재년(26세) 씨는 "나는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오사카로 피신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 좀 괜찮아지는 것 같아 다시 일본으로 취업하러 왔다"고 말했다.
한국 수준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10시간씩 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그는 "한국, 일본 모두 청년실업이 심각하지만 일본에 외국인(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직업은 비교적 갖기 쉽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에 취업하러 온다"며 "하지만 사고 이후 일본에서 일하던 한국인뿐만 아니라 유학생 등도 한국으로 많이 돌아갔다"고 전했다.
김 씨는 "3.11 사고 이후 지진보다 방사능 문제가 심각한데, 사고 직후 이렇게 시끌벅적 하던 신오오쿠보 거리도 조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김 씨는 "1년이 지나 이 거리에 손님이 다시 늘었지만, 지금도 방사능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를 버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일본 탈핵단체 민들레회(탄포포샤, No Nukes Plaza Tokyo) 야나기다 대표는 “원전 사고와 방사능 위험에 대한 생각은 지역마다 다르다”며 “특히 방사선량이 국지적으로 높은 ‘핫스팟(hotspot)’ 지역이냐 아니냐, 여성이냐 남성이냐, 아이를 키우는 엄마냐 미혼이냐 등에 따라 대답이 다르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사고 1년이 지났지만 일반적으로 도쿄 등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방사능 문제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며 “특히 성인 남성과 학생들은 언론이 방사능 문제가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보도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근거 없이 안전만 강조하는 일본 정부와 편향적인 언론 보도가 그 원인이다”고 해석했다. (기사제휴=미디어충청)
* 통역 : 야스다(일본 노동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