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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협)가 결국 24일 파업을 유보하고 의정협의 결과를 수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의료영리화 반대를 주장하며 정부와 각을 세웠던 의협은, 이번 의정협의을 통해 사실상 영리화 정책을 수용하는 대신 수가 인상 등을 위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 노동 및 시민사회는 의협의 의정협의가 의료영리화 저지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긴 ‘야합의 결과’라며 강력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의협은 20일,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정협의안 수용’ 여부를 묻는 회원 투표에서 62.16%의 회원이 ‘수용’ 의사를 밝혔다며 집단휴진을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의협은 의료영리화 저지를 내걸고 24일부터 6일간 전면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협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와 의정협의문에 합의했으며, 17일부터 이날(20일) 정오까지 협의안 수용 여부를 묻는 회원 투표를 진행해 왔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투표 결과는 (파업) 철회가 아닌 유보”라며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고나간다면 의협은 이를 책임지기 위해 언제든지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의술과 상술을 맞바꾼 야합” 비난

하지만 이번 의정협상은 의협이 사실상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수용한 셈이라, 보건의료단체와 노동, 시민사회의 비난에 시달려 왔다. 민주노총은 이날 ‘건강보험 수가결정구조 개편 합의 비판’ 이라는 이슈페이퍼를 발표하고 “지난 의정협의결과는 의협의 편협한 이익이 반영된 야합의 결과다. 의술을 상술과 맞바꾼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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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동과세계 변백선 기자]

특히 민주노총은 이번 의정협상이 의료영리화 정책을 수용하는 대신, 건강보험 결정구조를 공급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변경한 것이라 지적했다. 만약 협의문에 따라 수가인상을 위한 ‘중립적 소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공단의 수가 협상력이 무력화되고 나아가서는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의협과 보건복지부는 17일, 의정협의를 통해 그동안 의료영리화 논란이 일었던 원격진료와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과 관련해 △4월부터 6개월간 원격진료 시범사업 진행 후 원격진료 허용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 입법화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설립 문제 해결을 위한 의-정 차원의 논의기구 구성 등에 합의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3년간 350억을 들여 진행된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작년에 종료됐고, 실효성 등이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정부 입법 계획에도 시범사업이 포함돼 있으며, 제도화를 위한 과정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부안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계획에는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 이외에도 △부대사업 범위 대폭 확대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 △신의료기기, 신약 허가 및 승인절차 간소화 등의 광범위한 의료영리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의협은 다수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배제한 채, 영리자회사 설립만을 한정해 논의기구를 구성하는 수준으로 합의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논의기구에는 영리자회사 설립에 찬성하는 대한병원협회 등의 공급자단체가 참여할 예정이라, 의협이 영리자회사 설립을 기정사실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의협, ‘의료영리화’ 내주고 건강보험 결정구조 영향력 확대해

무엇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의협이 ‘의료영리화 정책’을 내주는 대신, 건강보험 수가 결정이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개편 등으로 이익을 얻게 됐다는 점이다. 

의협은 17일 의정협의를 통해 △수가계약 결렬시, 공정한 수가 결정을 위해 가입자와 공급자가 참여하는 ‘조정 소위원회’ 구성 △건정심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등 건정심 구조개편에 합의했다.

하지만 ‘조정 소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공단의 수가협상력이 무력화되는 등 수가 결정 구조가 왜곡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현재 건강보험 수가 결정은 가입자단체로 구성된 ‘재정운영위원회’의 법적 권한이다. 건강보험가입자를 대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약계와 유형별로 협상을 진행하며, 협상이 결렬될 경우 건정심에서 이를 결정을 하게 된다. 그동안 건정심은 공단이 협상과정에서 제시한 최종안을 마지노선으로 결정해 왔다. 

민주노총은 “조정 소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공단의 협상력은 무력화 될 것이며 성실한 협상과정은 불가능하다”며 “특히 계약당사자(공급자단체)가 수가를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협상이 결렬되면 공급자단체도 참여하는 건정심에서 조정의 기능을 수행해 온 만큼, 따로 소위원회를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민주노총은 합리적 근거 없이 수가가 결정된다면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의협이 공정한 수가협상을 기대한다면, 먼저 공급자의 경영투명성 개선을 통해 수가연구 근거자료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협력부터 진행해야 한다”며 “또한 현행 유형별 수가체계를 더욱 세분화해, 의원급이나 중소지역병원 등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건정심의 구조 개편 역시, 사회적 논의구조의 근간을 위협하고 공급자단체의 영향력만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노총은 “의협이 노리는 것은 건정심의 과반 이상을 공급자단체가 차지하는 것”이라며 “의협은 최근들어 더욱 강하게 건정심 개편을 공급자단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적 논의의 기본적인 구조조차 부정하려고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현재 건정심에는 공급자단체 8명 중 의협에서 2인이 참여하고 있다”며 “공정한 거버넌스를 주장하려면 왜 의협만 2인이 참여해야 하는지 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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