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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한진중 노동자 "이소선 어머님은 또 다른 희망"

우용해( cmedia@cmedia.or.kr) 2011.09.06 22:58

이소선 어머님이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희망버스를 타고 방문한다.

[출처 : @Nomadchang 트위터]

한진중 정리해고 사태가 회사측의 시간끌기로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6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 243일 차를 맞았다. 또한, 지난 6월 28일 부터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농성중인 4명의 한진중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와 '김진숙 지도위원 무사귀환'을 요구하며, 71일 째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이소선 어머님의 영면 소식이 부산에 전달되면서, 85호 크레인 농성자들의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이소선 어머님의 빈소에 찾아뵙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로 오신다는 소식에 무거운 마음을 표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3일째 단식 농성 중인 신동순 조합원은 "큰 별이 떨어지셨다"며, 침통해했다. 이소선 어머님의 영전이 희망버스를 타고 85호 크레인에 방문하시는 것에 대해 신 씨는 "노동자들을 위해 오만데 다니시면서 희망을 함께 하자 하셨는데, 정말 큰 별이 떨어져 안타깝다"고 슬픔을 전했다. 그는 이어 "빈소에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어머님이 이곳 영도까지 오시니, 죄스러울 뿐이다. 반드시 승리해서, 모두 함께 어머님이 영전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정리해고 철회'의 승리를 약속했다.

85호 크레인 중간층에서 함께 농성중인 박성호 한진중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이하 한진정투위) 대표도 이소선 어머님의 영면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성호 대표는 이소선 어머님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그는 과거 박창수 열사를 비롯해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했다.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이소선 어머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함께 422일 동안 비와 눈을 맞아 가며 천막농성을 했다.

이소선 어머님의 영면 소식을 접한 박 대표는 안타까움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는 "어머님이 살아생전에 희망버스를 타고 이곳 85크레인에 너무나 오시고 싶어 하신 걸 알고 있다. 그런데, 희망버스를 타시지 못하고 쓰러지셨다는 소식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열사위원회 일을 해왔었다. 어머님하고 함께 생활하고, 언제나 모든 힘을 보태시는 어머님 이셨다. 우리는 너무나 큰 획을 잃은 마음이다"며, 상실감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영전이 희망버스를 타고 85호 크레인으로 온다는 소식에 대해 박 대표는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사신 분이다. 우리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었는데, 어머님이 방문하신다니 우리가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에게 큰 희망을 준 어머님의 정신은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 크나큰 가슴, 노동자에게 큰 희망을 주시는 것 같아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이소선 어머님의 영전은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빈소를 출발해, 오후 5시경에 부산 영도조선소에 도착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오후 7시 85호 크레인 맞은편 신도브레뉴 아파트에서 이소선 어머니 추모제를 한다. 추모제가 끝나면 해고자 40여명은 서울 빈소로 향해 7일 마석모란 공원로 이동, 이소선 어머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다.

한편 노사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진척이 없고, 노동자들은 크레인 고공농성도 모자라 단식농성까지 하고 있다.

특히 23일째 단식농성 하고 있는 신동순 조합원은 허리 통증까지 호소하고 있다. 신 씨는 과거 파업과정에서 타이어에 맞아 허리수술을 2차례 허리 수술을 했다. 현재 신 씨는 몸을 굽히기 힘든 상황이며, 파스로 통증을 이겨내고 있다.

신 씨는 단식농성을 돌입한 배경에 대해 “회사 참 지독하다. 2003년에는 85호크레인에서 김주익 열사가 자결했었다. 그리고 지금 김진숙 지도가 크레인에 올랐다. 상황이 변한 게 없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었다”며 “똑같은 상황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크레인 중층에 올라 왔고, 정리해고가 철회 되고 김 지도가 무사하게 내려갈 때까지 함께 하기 위해 올라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측은 시간을 끌고 있고, 중간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고 답답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투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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