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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일제고사가 아닌 체험학습 날만큼은 아프지 않아요”

[현장스케치] 한 학기에 시험만 5번…경쟁에 신경이 곤두서는 아이들 <br/>도교육청의 학생 선택권 보장에도 아직도 ‘불이익’ 통보하는 학교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3.06.27 17:51

입시 위주 경쟁교육과 이로 인한 사교육비 부담 등은 사회 문제로 지적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부활시켰고, 박근혜 새 정부는 올해도 25일 전국 중3·고2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일제고사는 오로지 문제풀이와 점수향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반발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 시험을 거부하는 학생·교사·학부모도 여전히 일제고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단결석 처리 하겠다는 학교의 엄포에도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택한 이들을 따라가 봤다.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선택한 전북지역 학생들.

 

시험 부담감에 응급실을 향하기도… 이날만큼은 밝은 학생들


일제고사가 치러진 25일.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전북지역 학생 30여 명이 현장 체험학생을 떠났다.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 평등학부모회, 전북교육연대가 공동 주관한 현장체험학습 이름은 ‘친구와 함께 한옥마을로 떠나는 전주 투어’이다.

 

▲학생들이 전주 한옥마을을 거닐며 지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일제고사가 주는 스트레스는 잠시 학교에 두고 아침 9시부터 한옥마을로 이동해 경기전과 최명희 문학관, 전주향교 등을 관람하고 오후에는 빙상경기장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시험에서 해방된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전주 한옥마을은 그동안 가족들과 즐겨 찾는 곳이지만 친구 손잡고 이곳저곳 둘러보니 기분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학생들이 전주 한옥마을 내 여러 전시관을 돌며 이것 저것을 보고 있다.

 

전주 A중학교에서 온 최은재(가명, 15) 학생은 “이번 학기에만 중간고사, 기말고사 합쳐 모두 5번의 시험이 있다”며 “그때마다 경쟁심리가 생겨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온 유은지(가명, 15) 학생은 “일제고사나 시험을 본다고 하면 배가 아프다”며 “공부한 만큼 성적이 안 나올 것 같다는 불안감도 들고 석차가 공개되면 열등감도 생기고, 그래서 그런 것 같다”고 시험이 주는 부담감을 토로했다.


유은지 학생 어머니 유순영(가명, 48) 씨는 “(시험부담 때문에 배가 심하게 아파서) 응급실을 갈 때도 있는데 옆에서 지켜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는 아이의 말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아이가 오늘만큼은 아프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학교, ‘시험 거부하면 불이익 주겠다’ 엄포


그렇지만 학생들이 일제고사 대신 현장체험학습에 오기까지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불러 모아 시험을 보도록 종용했다.


유은지 학생은 “일제고사를 안 보겠다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교장선생님이 1년 동안 학교생활이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면서 “일제고사를 보지 않는 학생들이 많으면 자신이 징계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이날 체험학생에 참석한 학생 여럿은 유은지 학생과 같이 학교로부터 무단결석처리 또는 불이익을 통보받았다.


전교조 전북지부 정남희 참교육실장은 “출결처리는 학교장의 권한이다 보니 일제고시 미응시 학생에게 체험학습을 허용하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압박이 작용해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 장수중 고 김인봉 교장은 일제고사 체험학습을 승인해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으로부터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한옥마을 인근에 설치된 일제고사 반대 현수막.

 

전북교육청 정책은 학생 선택권 보장


그러나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일제고사 폐지 뜻을 펼치고 있고, 도교육청 정책도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실제 도교육청은 지난 11일 일선 학교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해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되 시험 응시 여부를 사전 조사하지 말 것’, ‘미응시 학생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을 준비해 제공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문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도교육청 지시사항은 일선 학교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체험학습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일제고사 폐지를 바라는 마음을 적은 방명록.

 

정 실장은 “일부 학교가 미 응시 학생을 불러 압박한 것은 문제”라며 “일제고사로 학교·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은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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