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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안에는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다. 노동자, 농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지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를 만들지만 현대차노동자라고 불리지 못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몸이 안 좋아도 오직 웃음으로 손님을 대해야 하는 수많은 감정노동자. 이렇게 이 땅에서 자기를 감추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과 춘향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자기를 감추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150여 일 동안 투쟁하고 있다. 전기원노동자들이 그들이다. 한국전력노동자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전력이 아닌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다. 하청과 비정규직, 도급.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통해 고용하는 것은 다 자기 잇속을 차리려는 일이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은 그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한국전력으로부터 하청받은 업체가 재하도급한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전기원 노동자들은 다 아는 이 고용구조를 한국전력과 하청업체는 부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IMF 때 엄청난 임금삭감을 경험했고, 배전현장은 안전보다는 빠른 공사가 먼저였다. 그리고 95년부터 지켜온 노동조합을 깨려는 하청업체와 투쟁하고 있다.

 

150여 일. 참 짧지 않은 시간인데, 이들의 투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죽음보다는 안전을 위해 스스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들어보자.

 

▲남원 전기원 노조 안성수지회장(우), 김희근사무장(좌)

 

배전공사라고 쓰고, 죽음의 배전현장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다니면서 전봇대 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다. 전봇대 흐르는 2만 2천 볼트의 전기가 가정에서 쓸 수 있는 220볼트가 되도록 변압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EBS 다큐 <극한직업>에서 수 십 미터 송전탑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높이도 공포지만, 이들이 더욱 조심하는 것은 수만 볼트의 전기였다. 전기가 언제 공기를 타고 이들을 덮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하늘 높은 곳, 이들의 작업장은 죽음과 싸우는 전쟁터였다.

 

“08년부터 10년까지 50명의 전기원노동자가 사망했다. 부상자는 수백 명이다. 서울에 한국전력 부속병원에 가보면 그곳은 야전병원이나 다름없다. 손 잘린 사람이 천지다. 그래서 한국전력에서 산업안전과 관련된 규정을 만들었는데, 현장에서는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가 사비를 들여서 민원을 제기한다. 사진을 찍고, 문서를 만들어 올리면 한국전력은 현장을 관리감독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변명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업체에 벌점을 주는데 형식적일 뿐이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한국전력’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공기업이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한전 직원이 전기공사’ 중인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사진은 사실 여기 거리에서 투쟁 중인 하청업체 전기원 노동자들이 매일 작업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과 배전시스템은 이들이 죽음과 맞바꾸어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전력은 안전이 무시되는 현장을 민원 넣었을 때,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국전력이 배전업체를 감싸다 보니 배전현장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안전보다 빠른 작업이 우선되었다. 그리고 배전업체 사장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을 해야 했다. 일요일도 없는 노가대 식 작업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2만 볼트 이상의 전기를 만지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작업을 시켰다.”

 

▲전기원노동자<자료제공 - 건설노조 남원전기원노조>

 

민주노조 역사와 함께하다.

 

“2년 전에 광주전남 전기원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했다. 60여 일 만에 끝났는데, 사측과 조인식을 하면서 그들이 다음은 전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전업체는 전국 사장단 모임이 있는데, 이곳에서 서서히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전북을 표적으로 삼아 이렇게 압박이 들어온 거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이 투쟁은 배전업체들과 맺었던 2010년 단체협약을 토대로 2011년 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 단체협약에서 19개 조항을 삭제요청했다. 약 50%인데, 이 말은 단협체결을 안 하겠다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임단협 체결하고 현장에서 바꾸자고 생각해서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도 900시간 요구했던 것을 160시간까지 양보했다. 그런데 1차 교섭부터 잘되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모습을 배전업체들이 보였고, 9차까지 결렬되면서 지노위에 갔다. 거기에서 조정결렬이 되면서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전북지역은 배전현장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역사도 민주노조 역사와 같이한다. 91년부터 ‘전봇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10시간 이상 노동이나 우천 작업 등이 조금씩 없어졌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작업환경이 개선되니 자연스럽게 조합원도 늘었다. 최근에는 남원/순창 지역 전기원 노동자 98%가 가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배전업체, 3억 묻고 노조 깨려 해

 

“배전업체사장들이 3억 원을 묻어놓고 노동조합을 깨려 한다.”

 

배전업체사장들이 작심한 모양이다. 배전업체들은 3억 원의 약속어음을 공동보관하고 전기원 노조와 개별적으로 단체협약을 맺으면 3억 원을 배상하기로 약속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들을 배전업체가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남원시의 불을 밝히는 역할을 했던 노동자들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들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으니 과연 이런 배전업체가 제공하는 전기를 우리는 마음 놓고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배전업체. 더욱 질 좋은 전기공급과 노동자들의 안전이 함께 보장되는 작업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배전업체가 할 일이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을 그저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처음에는 64명의 노동자가 함께했다. 그런데 노동탄압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24명으로 줄었다. 생계를 걱정하며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돌어간 사람들이 많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들이 벌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배전현장’.

 

비가 오는데도 작업을 강행하라는 배전업체,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 산업안전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작업현장, 이 모든 것을 묵인하고 있는 한국전력.

 

이 사각형의 테두리 안에서 전기원 노동자들의 하루는 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무리 매일 오르는 하늘이고, 매일 만지는 전깃줄이라고 해도 스트레스가 없겠는가?

 

함께 바꿔보자고 시작했다. 그래서 두 손 잡고 시작했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을 볼 때면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다. 바꾸자는 ‘죽음의 배전현장’이 바뀌지 않았는데, 생계 때문에 그 현장에 돌아가야 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년 동안 일하면서 우애를 다졌다. 그리고 전기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작업구간이 300M 정도 되기 때문에 무전기에 의지해 일하는데 팀워크가 없으면 안전사고도 많이 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친형제처럼 지내고 서로 생각해주고 그런다. 조합원들은 자기이익보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한다. 동지애다. 이제 악으로 버틴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다. 반드시 승리해서 남원지역 배전현장을 개선할 것이다.”

 

 

사측의 악랄한 탄압이 끈끈한 동지애로 뭉친 전기원노동자들을 위협하지만, 투쟁의 깃발을 스스로 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똘똘 뭉쳐야 살 수 있는 배전현장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기에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다시 이들이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잡초는 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서지만,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들만의 투쟁으로 지켜만 볼 일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를, 농민을 민초라 부른다. 민초의 끈질긴 삶에 이제 우리도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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