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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전선운동가”, 축지법 쓰던 정광훈 의장 망월동으로

김용욱( newscham@newscham.net) 2011.05.17 13:12 추천:12

“오늘 여러분들이 불러서 해남서 농사짓다가 축지법으로 여기까지 달려 왔습니다”


“한미FTA를 하자고 하는 대통령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직원이 될 뿐입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아우워 워드 이스 아우워 웨폰(OUR WORD IS OUR WEAPON) 따운따운 떠블유티오(DOWN DOWN WTO)”


“혁명가는 고정자산이 많으면 안 됩니다”


“오늘 여기 시청은 우리 투쟁으로 시장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이명박 시장이 아니라 민중의 시장입니다. 이 시장바닥에서 만장을 들고 거리로 나갑시다”


"전교조가 빨간 수박을 먹고 씨를 뱉으면 '참교육'이 열립니다” (정부가 전국교직원노조를 빨갱이라고 하자)


“이 나라는 혁명이 아니고는 민중의 행복한 세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5, 6, 7월에 이명박이 촛불에 3도 화상을 입고 아직도 안 낫고 있어. 유명한 의사한테 다 가 봐도 나설 약이 없어. 그러니 이명박이 의사는 안 찾아가고 검사를 찾는 겁니다”


"지배계급들은 오로지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로서 언론을 배후조종 하거나 이용해 왔고 수구 보수언론들은 이에 편승하여 활자와 방송을 권력과 자본에 종속시켜 왔던 것입니다"


"오늘 남한사회는 WTO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초국적자본의 투기장이 되었고 민중들은 그 '눈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나는 전선운동가 입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서울에서 노동자 집회 연대사를 할 때면 '축지법으로 해남에서 막 달려왔다'며 언제나 노동자들을 위로해주고 즐거움을 주고 떠나던 열혈청년. 자신은 전선운동가라고 단호하게 소개하던 농민. 전라도 사투리에 붉은 머리띠 사이사이 보이는 흰머리에도 아이처럼 순수했던 혁명가.


고 정광훈 의장이 주옥 같은 명 대중연설을 남기고 17일 광주 망월동 민중항쟁 열사들의 곁으로 떠난다. 더 이상 정광훈 의장의 연설을 들을 수 없지만 정 의장이 각종 투쟁현장에서 한 대중연설은 여전히 ‘정광훈 어록’으로 민중운동 진영의 가슴에 남아 있다.


농민으로 태어나 누구보다 반 WTO, FTA 투쟁에 앞장섰던 정광훈 의장은 금융자본주의의 야만성과 자본주의 모순을 대중연설로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공부했다. 그렇게 나온 정광훈 의장의 연설은 '조작된 동의', '신자유주의 눈물의 씨앗', '아우워 워드 이스 아우워 웨폰' 등의 단어가 어우러진 재기발랄 그 자체였다.


한 여름 뙤약볕이 쏟아져도 그가 단상에 올라서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금세 생기를 얻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며 전라도 억양을 담은 사투리로 ‘아우워 워드 이스 아우워 웨폰’이라고 되풀이 해 줄땐 통쾌하기까지 했다. 때로는 적들을 조롱하면서도 때론 적들마저 설득당할 것 같았던 그의 명연설 들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고 정광훈 의장의 장례 일정은 민주사회장으로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16일 저녁 9시 해남과 광주에서 동시 추모문화제를 진행하고, 17일 해남 군민광장 노제를 거쳐 광주 금남로에서 장례식을 엄수한다.


정광훈 의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해남군 농민회를 결성하고 20여 년 동안 농민운동을 해 왔으며 5.18 당시 시위 주도, 농민대회, 민중대회 주도, 한미FTA저지 등으로 3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정 의장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전국민중연대 대표,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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