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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결사의 자유를 확대라는 측면에서 가장 부합하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는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노조 무력화에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법 개정이 시급해 보인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30일 오전 ‘복수노조·창구단일화 피해사업장 증언대회’를 개최하고 전북지역에서 복수노조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사례를 발표하고 법 개정의 시급함을 성토했다.

 

 

복수노조 제도는 일명 ‘노동악법’으로 불리는 개정노동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포함되어 2010년 1월 통과되었고 2011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개정노동법 통과 당시 타임오프 제도와 함께 쟁점이 되었던 복수노조 제도는 특히 ‘교섭 창구단일화’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문제로 지적 받았다. 개정노동법 29조 2항에는 교섭 창구단일화에 대해 이같이 명시하고 있다.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조직형태에 관계없이 근로자가 설립하거나 가입한 노동조합이  2개 이상인 경우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여야 한다.”

 

이 조항에 대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없는 소수노조 등의 노동 3권이 박탈되는 등의 노동자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된다”며 이를 통해 사용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같은 법령 41조 “쟁의행위의 제한과 금지”에는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결정된 경우에 그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의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의 찬성이 없으며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며 사실상 쟁의행위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해 노동계에서 개정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노동계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전북지역의 경우만 보더라도 피해사업장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광수 민주노총 전북본부장은 “처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준비하다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조항을 접하고 포기한다”면서 “법 시행 전에는 10명이 되더라도 노조를 해보자고 결의하고 노조의 정당성을 동료들에게 알리는 등 방법이 있었는데, 지금은 차단되었다”며 작년 7월 복수노조 제도 시행 이후 노조 설립의 어려움은 전했다.

 

이어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이마저도 과반을 넘기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파업 등 노사분규 사업장 대부분이 ‘창구단일화 제도’ 피해

 

이번 증언대회에서 소개된 피해사업장은 5곳으로 현재까지도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인해 노사갈등이 풀리지 않는 사업장들도 포함되었다. 이들 5곳은 2010년 이후 한 차례 이상씩 극심한 노사분규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소개된 사업장은 보건의료노조 익산병원지부이다. 이 사업장은 현재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현재 익산병원지부장과 부지부장 등 4명은 지난 2010년 파업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중앙노동위원회까지 승소를 했지만 병원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법정다툼 중에 있다.

 

 

익산병원지부는 현재 조합원이 23명으로 한국노총 지부 36명보다 적다. 그러나 익산병원지부는 지난 2010년 9월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2011년 임금협상을 위해 복수노조 시행 이전부터 교섭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창구단일화를 이유로 교섭을 거부해왔고, 한국노총 지부가 과반수 노조라며 이들과 2011년 9월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익산병원지부는 법원에 단체교섭응낙가처분을 냈고, 법원에서 “창구단일화법 시행 이전 교섭노조로 창구단일화 대상이 아니다”며 익산병원지부와 병원 측이 교섭할 것을 결정하여 현재 교섭 중에 있다.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사업장으로는 공공운수노조 전북평등지부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도 빠질 수 없다.

 

평등지부는 지난 6월 130여 명의 전주대/비전대 청소용역노동자 중 113명이 가입하여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복수노조 제도 시행 전까지 약 2차례 교섭을 진행되었지만, 7월 7일 전국 30여개 온리원 매장 판매원들까지 포함된 210여명이 가입한 온리원노동조합이 생기면서는 교섭이 진행되지 못했다.

 

▲최근 파업에 돌입한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로 피해를 보고 있다.

 

이후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치는 등 노사관계는 파행을 거듭하다 8월 중순 1차 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총 6차례 파업이 있었으며 평등지부는 사측이 형식적으로 교섭자리에 앉아만 있다고 강하게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현재 전주 버스운행 중단 사태와 사측의 직장폐쇄로 투쟁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전북지부도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장 중 하나이다.

 

전주 시내버스 5개사는 지난 4월 초 “한국노총의 교섭요구가 있어 개정된 법에 의해 교섭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민주버스본부와의 2011년 단체협약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민주버스본부는 “한국노총이 요구한 교섭은 2012년 임금교섭으로 우리와 사측이 진행 중인 2011년 단체교섭과는 별개이기에 창구단일화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교섭을 요구했다.

 

약 1달 간 이 공방만 오갔을 뿐 교섭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가 지난 5월 23일 민주버스본부가 사측이 요구했던 개별교섭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하지만 사측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일부 사업장만의 조건부로 6월에 교섭하자는 입장을 냈다. 호남고속과 전북고속은 교섭권한이 없다며 거부한 상태이다.

 

 

그러나 민주버스본부는 예정대로 교섭을 5월에 진행하자고 요청하였고, 5월 25일, 29일 교섭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교섭이 거부된 상태이다.

 

이밖에 지난 작년 6월 회사 내 샤워장 등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로 큰 문제를 일으켰던 DKC 역시도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인해 상당기간 단체협약을 체결하는데 애를 먹은 사업장이다.

 

“개별교섭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창구단일화 강제절차 없애야”

 

이처럼 민주노총 전북본부가 사례로 발표한 사업장들은 개정노동법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조항으로 인해 노사분규가 더욱 심화되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 제정된 법이 오히려 노사분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 포착된다.

 

이장우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소장은 “한 사업장에서 복수로 노조가 설립되면 조합원이 많아지게 되고, 당연히 조합원이 많아지면 노동자의 힘이 강화된다”면서도 “그러나 현행 복수노조 법은 창구단일화 등의 조항으로 인해 친 사용자적 노조를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어용, 황색노조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민주노조를 억압하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문제가 전북지역에서 동일하게 반복 중이다”며 “민주노총에서 요구하는 개별교섭을 쉽게 할 수 있는 창구단일화 강제절차를 복수노조 법에서 없애야 한다”고 복수노조 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한편, 지난 4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노동계가 제기한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위헌 소송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당시 노동계는 “소수노조와 신설노조 등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크게 제약을 받는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으나 헌재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불가피한 제도”라며 “교섭창구 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이를 보완하는 조항도 있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3월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교섭대표로 참여하지 못하는 노조들의 파업권 역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며 “교섭대표로 되기 위한 일정비율을 충족하는 노조가 없을 경우 모든 노조에게 단체교섭권을 허용할 것”을 한국정부에 권고하며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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