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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청도 송전탑 싸움 현장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성탄을"

천용길 뉴스민( droadb@newsmin.co.kr) 2012.12.26 12:54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건설 현장


12월 25일 성탄절. 어떤 이는 교회를 찾아 예배하고, 어떤 이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이는 연인과 사랑의 시간을 보내는 날, 어떤 이들은 ‘솔로대첩’을 씁쓸하게 지켜본 날, 대구와 경산에서 50여 명이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성탄을 보내기 위해서다.

 

2012년, 송전탑과 싸움을 시작하며 폭력에 씨름한 사람들

 

한 해 동안 삼평리 주민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지난 2006년 송전탑 건설을 위해 한국전력은 주민설명회를 열었으나 형식적이었다. 다수의 주민은 이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2009년 공사를 위한 주민설명회를 하겠다고 한국전력에서 찾아왔을 때에야 공사 사실을 알았다. 이때 공개된 송전탑 건설 예정지는 마을을 지나가지 않았지만 2011년 송전선로가 변경된 사실을 알게 됐다. 주민과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올해 4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이 몸으로 공사를 막고 나서자 용역경비 50여 명이 투입됐고,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할머니들은 이때부터 공사장 출입구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과 함께 국정감사를 거치며 문제가 공론화되자 현재 공사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주민들은 “언제 또 진행할지 모른다”며 천막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7월부터 청도를 찾아 문제를 알렸던 대구 녹색당과 대구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행사가 기획됐다. 경산의 <시와찬미교회>, <희년공동체>와 같은 개신교인들뿐 아니라 SNS를 통해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50여 명이 삼평리를 찾았다. 자발적 모임이라 출발 장소와 시각이 제각각이어서 일찍 도착한 이들은 마을 주민과 윷놀이를 한 판 벌이기도 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도 구원"

 

오후 3시 30분 무렵 마을 주민 10여 명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시작됐다. ‘등대지기’ 찬송을 시작으로 <시와찬미교회>청년들의 특송이 이어졌다. 청년들은 삼평마을 할머니에게 성탄 편지를 손수 작성해 전달했다.

 

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는 누가복음 1장 39~45절을 언급하며 “이제야 찾아서 참으로 죄송하다. 주민설명회를 형식적으로 한 것, 뒤늦게 알고 주민들이 공사 반대하는 걸 아예 무시하는 점, 마을을 이간질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 주민들이 찬성하는 것처럼 거짓서류를 꾸미는 것, 마을 주민을 배제하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강정마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며 “법과 제도는 오직 자본 편만 든다.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행동에 나서 주민들이 직접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설교를 시작했다.

 

백창욱 목사는 “투쟁은 평화활동가나 노동자, 운동단체 일꾼들이 하는 일로 알았는데. 시골 할머니들이 싸운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할머니들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싸운 일은 민주주의에 길이 남는 일이다. 싸우면서 그동안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되지 않았나. 국가폭력이 국민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정부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도 구원이다”고 설교를 이어갔다.

 

이어 백 목사는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온 두 여인의 이야기를 보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임신한 사실은 사회적 통념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 여인은 잉태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율법이나 사회통념과 맞서 싸웠다. 이 두 여인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어머니”라며 “여기 계신 분들도 어머니의 힘으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에 함께하자”고 말했다.

 

▲ 대구새민족교회 백창욱 목사

 

성탄예배를 마친 이들은 마을회관으로 이동해 주민들이 마련한 청도추어탕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은주 삼평마을 부녀회장은 “정말 감사하다. 청도 풍각면과 각북면을 지나는 41개 송전탑이 다 지어지고 한 기만 막고 있다. 다 들어섰는데 뭐하냐고 말하지만, 저 한 기만 막으면 청도 송전탑, 신고리원전도 무용지물이 된다”며 “너무 어렵지만 계속 막고 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싸움에 함께해 달라”고 말했다.

 

삼평마을의 김미화 목사는 “할매들에게 공사 지연으로 3억원의 손해배상 통보서를 보내 경찰이 협박했다. 강정이나 우리 마을이나 똑같다. 삼평마을을 지키고 신고리원전 핵발전을 막자”며 “앞으로 성탄예배는 교회 안이 아닌 고난 받는 현장을 찾아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참가자들은 한국전력의 기습 공사를 막는 일에 함께하겠다며 지킴이 연락망을 구축했다. 이후 참가자들은 주민들과 송전탑 건설 현장을 둘러보며 성탄절 하루를 마무리했다.

 

한편, 지난 12월 16일 청도 삼평 마을회관에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밀양, 청도, 달성군 유가, 봉화지역의 주민들과 녹색당, 대구환경운동연합이 모여 <탈핵을 위한 전국 송전탑 반대 대책위>를 결성하고 공동대응을 통해 한국전력의 공사 강행과 싸워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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