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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타임오프가 부른 싸늘한 죽음

정재은( cmedia@cmedia.or.kr) 2011.06.10 09:55 추천:56

타임오프에 항거해 9일 자결한 현대차 아산공장 박00(49세) 씨는 ‘노동안전보건위원(약칭 노안위원)’이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활동했던 그는 타임오프라는 벽에 막혀 회사와 싸워야했다.

 

결국 유서를 남기고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과 동료 앞에 선 그는 ‘이 한 목숨 던져서라도 노동탄압 분쇄에 앞장선다’고 남기고 떠났다.

 

▲박 조합원이 자살한 엔진사업부 화장실 앞을 아산위원회 간부들이 지키고 있다. [사진= 금속노조 강정주]

 


법으로 보장된 안전 활동도 타임오프로 제약
매트 설치, 의자 보수, 자재파렛트 소음으로 교체...
노-사 공동 안전 활동인데 노동자만 무단이탈, 무급

 

현대차지부(정규직노조)는 전임 상근자인 노조 임원뿐만 아니라 대의원, 노안위원, 교육위원 등 수 많은 비상근 노조 간부들이 활동한다. 아산공장위원회만 노조 전임 상근자 11명, 노안위원 5명, 교육위원 5명, 대의원 26명이다.

 

‘노안위원’은 노조 직책이기도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으로부터 출발했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이 법은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노사는 공동으로 위원을 구성해 현장의 안전을 위해 다양한 회의, 활동을 한다. 노조 체계와는 또 다른 형식으로 노사가 현장의 안전을 위해 협력, 이를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하지만 ‘노안위원, 근골실행위원(근골격계 실행위원), 근골(근골격계)신청 면담하는 시간마저 무단이탈로 일삼고 있다’고 고인이 유서에 밝혔듯, 산업안전보건법은 타임오프 시행으로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근골격계 실행위원은 근골격계 질환 환자가 발생할 시 면담해서 회사 환경안전팀(현장 안전관리팀의 일종, 노조의 노안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회사 조직)에 접수하는 일을 하는데, 실행위원들은 환자와 면담하는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노안위원이자 근골격계 실행위원이었던 고인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임오프가 적용돼 ‘무단이탈’로 '무급' 처리됐다.

 

과거 4년간 노안위원으로 활동했던 현대차 노동자 김 모(42세) 씨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사는 작업 개선, 안전사고, 작업환경측정, 안전점검, 산업재해 신청, 산업재해 불승인 검토 등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총체적인 활동을 한다. 노사가 협의해서 2003년 근골격계 실행위원을 만들기도 했다”며 “활동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환자와 면담하는 등 뛰어다녀야 하는데, 무단이탈로 처리하기 때문에 제대로 활동할 수 없다. 노안위원의 활동이 막히면 현장에 안전사고가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19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자 ․ 사용자 동수로 구성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 ․ 운영해야 한다. 현대차 노사 역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 분기별로 노사가 만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월 1회 열리는 안전보건개선팀 회의, 예방관리위원회 모임 등 노안위원들은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한다.

 

 

 

이중 올해 4월 27일 열렸던 안전보건개선팀 회의록 보면 노사는 근골안전매트설치, 의자 보수, 자재파렛트 소음으로 교체 등을 논의했고 작업 완료 사항까지 세세히 체크했다.

 

김 씨는 “타임오프는 노동자의 건강권까지 앗아가고 있다. 안전보건 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복지, 임금 향상 등을 위한 노조 활동도 제약당하고 있다. 더 나아가 타임오프는 노조 활동가의 발목을 잡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도 하지 못하게 한다”고 꼬집었다.

 

 

뉴엔진 신규라인 깔아 작업환경측정 하라면서 무단이탈?
타임오프로 사사건건 부딪혀 노사 관계 악화
“타임오프 아픈 사람 늘리고, 노조 탄압하는 악법”

 

특히 고인이 일했던 엔진1부는 델타엔진 후속 뉴엔진을 생산하는 곳으로 신규 라인이 설치된 부서이다. 현대차 회사는 작년부터 뉴엔진 생산을 위해 신규 라인을 깔기 시작했고, 올해 5월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작업환경을 측정해 현장의 안전과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4월 타임오프가 시행되면서 노조 노안위원이 작업환경을 측정할라 치면 매번 회사와 부딪혀야 했다.

 

고인과 같이 현재 노안위원인 고현승(32세) 씨는 “4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작업환경 측정을 안 하면 법 위반이다. 회사 환경안전팀은 다시 회사 지원팀에 근태 협조를 요청했는데, 회사 지원팀은 타임오프 때문에 근태 협조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무급이라는 것이다”며 분노했다.

 

고 씨는 이어 “작업환경 측정을 안 하면 회사가 법을 위반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급이면 측정하지 않고 법적 대응하겠다고 항의했다. 결국 회사가 근태협조를 했다”며 “법에도 보장된 현장 안전 활동을 못하게 하는 타임오프는 결국 노조 활동을 무력화 시키려는 제도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고인의 동료인 김 모(50세) 씨도 타임오프로 인해 고인이 힘들어 했을 뿐만 아니라, 노조 활동이 전반적으로 제약받는다고 우려했다. 고인을 옆에서 본 김 씨는 “그 전에는 안 그랬는데, 4월 타임오프가 적용되면서 회사가 근무 협조를 안 해줬다. 사사건건 관리자랑 부딪히니까 라인에 급하게 필요한 게 있어 제안하러 가도 무급이고, 아픈 사람 면담하러 가도 무급이고, 교육을 받는 것도 무급이고, 이건 노조 활동 하지 말라는 악법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고인과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강 모(34세) 씨도 “노조 간부들의 활동은 보장되어야 하고, 임금도 받아야 한다. 활동이 제약되니까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고인의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이동되자 유가족은 오열했다.

 

 

타임오프 근태관리 매뉴얼 '노조 활동 허가제'
노조 탄압 앞장서는 정부와 현대차

 

한편 현대차는 4월 타임오프를 시행하면서 ‘근로시간면제 관련 근태관리 매뉴얼’을 작성, 시행하고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타임오프 시행에 따라 법적 근거를 제시하며 ‘사전 승인 조합활동’과 ‘미승인 조합활동’으로 나눴다.

 

24명으로 전임자를 확정해 기간 전임은 ①노동조합의 사전 요청에 대해 노무주관팀 승인 ②각 부분 인사주무팀에서 해당 소속부서로 협조전 송부(대상자, 기간, 조합활동 내용) 하도록 했다. ‘미승인 조합활동’을 했을 시 해당자는 ‘인사 조치’ 되며, 조합활동을 위한 조퇴, 외출, 결근 ‘불가’ 이다.

 

노조 한 관계자는 “타임오프제에 따라 회사가 그대로 근태 관리를 한다고 해도, 노조 탄압에 정부와 현대차가 앞장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활동이 허가제다”며 “결국 타임오프는 노동계 전체 문제이며, 노사간 전면전이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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