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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현대차 노조간부 자결 44시간, 무엇이 남았나

정재은( cmedia@cmedia.or.kr) 2011.06.13 09:57 추천:17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와 현장탄압에 맞서 자결한 고 박종길 열사로부터 촉발된 현대차 노사 갈등은 노조측 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와 회사가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13일(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노동조합장이 치러진다. 현대차지부(정규직노조)는 이미 시작된 올해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에서 타임오프와 관련해 해결 방안을 찾을 예정이다.

 

[출처= 현대차지부]


고인의 자결로, 현대차에서 타임오프제의 문제점이 부각됐지만, 타임오프제는 현대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노동계의 올해 핵심 요구는 노조법 전면 재개정이다. 이 가운데 고인이 타임오프, 이로 인한 현장(노조)탄압을 전면 제기하며 자결했다.


9일 오전 8시경 고인의 시신이 발견되고 11일 새벽 4시 10분경 노사 합의하기까지 44시간의 투쟁, 이 시간을 경험한 현대차 노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구두 보고 되고 문서 공개 되지 않는 '별도합의'
“생산 중단 기간 유급 처리...회사가 부담 느낀 듯”


현대차 아산공장위원회 대의원 A씨는 비대위가 회사와 5가지 합의 외 별도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A씨는 “비대위와 회사가 논란을 겪었지만, 생산 중단 기간을 유급처리하고, 노제(노동조합 장)를 치를 때 근태를 인정하는 것과 회사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 노조는 경찰-회사가 고인이 자결한 현장에서 시신을 강제 인도하려고 시도하자 9일 오후 2시 30분경 생산 가동 중단 지침을 내렸다. 이후 현대차 이경훈 지부장 아산공장에 도착해 전승일 아산공장의장 및 노조 간부들과 함께 조합원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


노조는 경찰-회사가 고인이 자결한 현장에서 시신을 강제 인도하려고 시도하자 9일 오후 2시 30분경 생산 가동 중단 지침을 내렸다. 비대위와 회사가 합의한 뒤 11일 오전 6시15분 라인은 재가동됐다.


이 사이 생산 중단된 기간은 9일 주간조근무(오후)-야간조근무, 10일 주간조근무-야간조근무(잔업 미포함) 이다. A씨는 “생산 중단 유급 처리라는 것은 라인이 끊긴 시간을 노동자가 근무한 시간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회사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도 핵심적으로는 노조에 생산 중단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별도 합의는 구두 보고되면서 알려졌고, 문서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A씨는 “합의가 끝나고 노조는 합의서(5개 요구안)를 줬고, 별도합의는 구두보고 했다. 문서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회사가 생산 가동 중단된 시간을 유급 처리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 그동안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노조도 이를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의원은 또 “비대위가 5가지 요구 외에 추가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대의원에게도 보고 하지 않아 띠엄띠엄 알고 있었다. 대의원 간담회를 하지 않고 비대위가 먼저 합의 한 뒤 보고한 것도 대의원들 사이에선 불만이다"며 "대의원들이 각 현장에 돌아가 합의 내용을 보고했다. 6시부터 생산 가동해야 하기로 했으니까 그 시간에 맞춰 신속하게 진행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쪽 현장에서는 노조에 특별히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비대위가 아니라 ‘열사대책위’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있었지만 그 외 크게 제기된 것은 없었다. 바로 라인이 가동된 것을 보면 다른 쪽도 그런 것 같다”면서도 “내가 대의원이 아니고 일반 조합원이라면 밖으로 문제점을 말하겠지만, 아무래도 노조 간부이다 보니 함부로 말하긴 어려운 조건이다”고 덧붙였다.


A씨는 또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번 합의 결과에 대한 현장 반응은 세가지다. ‘노조가 잘했다’, ‘잘했지만 미흡하다’, ‘잘못된 합의이다’ 이다”며 말을 아꼈다.


비대위 요구 ‘100% 수용’ 됐다 VS 보상 말고 없다
단협에 의한 노조 활동 보장...“단협이 없어 열사가 자결 한 게 아니다”


이번 합의에 대해 노조 간부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일부 조합원도 ‘짧은 시간에 원만히 합의’했다며 만족해 했다. 비대위가 정한 5가지 요구를 ‘100% 수용’했다는 이유다.


비대위와 회사의 합의 내용은 ▲유족과 협의하여 유족보상 위로금을 지급한다 ▲미망인과 협의하여 원하는 시기에 취업을 알선하고, 향후 자녀 1인에 대하여 본인이 희망시 직영으로 채용 ▲지원실장, 실명 거론자(2명)에 대해 본건을 (회사가)조사하여 관련 정도에 따라 엄정히 인사조치 한다 ▲공장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시한다 ▲단체협약과 노사관계 합의서를 준수하여 조합 활동을 보장한다 이다.


처음 비대위 요구와 달라진 내용이 있다면 ‘산업재해는 준하는’ 보상은 ‘유가족 위로금’으로, ‘미망인 직영(정규직) 채용’은 현재 초등학생인 자녀가 향후 희망할 시 직영으로 채용, 관리자 ‘처벌’은 ‘회사 조사’ 뒤 ‘엄정히 인사조치’이다.


하지만 합의안에 대한 일부 조합원의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대의원으로부터 합의 결과를 보고 받았다는 현대차지부 아산공장위원회 조합원 B씨는 “5가지 합의했지만 보상 문제 말고는 분명한 게 없다. 고인의 자녀가 10년 뒤 현대차로 입사한다는 것은 나중 문제다. 관리자 처벌도 나중 문제이고, ‘엄정한 인사조치’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공장장 사과도 언제, 어디에, 무슨 내용으로 게시할 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특히 B씨는 노조 활동 보장 요구에 대해 “단체협약에 맞게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는 것은 있으나 마나한 요구안이다. 우리는 단협이 있다. 단협이 없어서 현장탄압을 받는 것이 아니다. 타임오프로 단협이 무시되고 현장탄압을 받는 것이다. 열사는 타임오프 때문에 자결했다. 유서에 너무도 명확하지 않은가. 비대위 요구안은 특별한 게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조합원 C씨 역시 이번 합의안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안’이라고 일축했다. C씨에 의하면 2006년 아산공장 엔진부서 조합원 L씨가 과로사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당시 노조(아산위원회) 간부에게 확인한 결과 노조는 우여곡절 끝에 고인에 대해 ▲산업재해 처리 ▲고인 자녀 정규직 채용(현재 정규직으로 근무함) ▲장례비용 전액 회사 부담 등에 합의했다.


C씨와 마찬가지로 당시 사건을 언급한 조합원 B씨는 “현대차지부(울산공장)가 나서지 않아도 아산공장위원회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이 부분을 말하는 이유는, 이번 사안은 타임오프제로 인해 열사가 자결했는데 그에 맞는 투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며 “개인적으로 이경훈 지부장이 아산공장에 오고, 아산공장위원회가 공동 행보를 취하면서 타임오프제에 맞선 투쟁은 하지 않을 거라고 이미 예상했다”며 노조 집행부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또 B씨는 별도합의를 구두 보고 하고, 문서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별도 합의도 아무 내용이 없다고 본다. 사람이 죽어서 라인을 세우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게 현대차 노조의 역사다. 언제나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해왔다”고 꼬집었다.

 

▲11일 새벽 6시 15분부터 생산재계 됐다. 야간조 노동자들은 각 부서 대의원에게 합의 결과를 보고 받은 뒤 6시 15분부터 8시 까지 2시간 잔업을 했다.

“결국 남은 건 박종길 열사의 죽음 뿐”
타임오프제와 현장탄압, “열사가 우리에게 과제 남겼는데...”


회사가 고인의 죽음은 ‘개인적인 사유’로 치부했지만, 타임오프제와 이로 인한 현장탄압에 분노해 고인이 자결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차지부는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임단협과 동시에 타임오프제를 무력화 시키기 위한 투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열사의 뜻’을 이어 받는 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조합원 C씨는 현대차지부 집행부의 입장과 다르게 노조가 입번 과정에서 타임오프제에 맞서 투쟁을 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C씨는 “현대차지부는 기아차지부가 타임오프제에 맞서 투쟁할 때 내년 임단협(올해 임단협)때 현대차지부가 독자로 투쟁한다며 같이 하지 않았다. 박종길 열사가 자결했는데도 타임오프제를 무력화 시키기 위한 투쟁 대열에 또 나서지 못했다”며 “집행부의 투쟁 의지가 의심스럽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이 조합원은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은 모두 유급 처리 되면서 손해 본 게 없다. 현장탄압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타임오프제로 인한 현장탄압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도 회사는 노조로 인정하지 않고, 유인물을 빼앗는 등 일상적으로 현장탄압을 한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인정했지만 비정규직은 정규직화 되지 못하고 오히려 공장에서 쫓겨났다. 총체적인 현장탄압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조합원은 “열사가 우리에게 과제를 남겼는데, 우리는 타임오프제와 현장탄압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결국 남은 건 박종길 열사의 죽음 뿐이다”고 토로했다.


조합원 B씨는 “현대차지부가 박종길 열사의 자결로 인한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조기에 수습한 것 같다. 이번 사안은 매우 중대하며, 주말이 지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 협의하며 급하게 토요일 새벽에 합의한 것 같다”며 “이번 사태의 본질이 타임오프제 라는 것은 노조도, 회사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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