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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의회 교육상임위가 지난 18일 전북학생인권조례안을 ‘또’ 부결시켰다. 이로써 도의회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이 본격화된 2010년부터 실질적으로 4번이나 학생인권을 거부한 셈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가 학교교육과정에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각 교육청에서 제정하는 조례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자유,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헌법에 규정된 권리일 따름이다. 그런데 왜 학생인권조례는 3년째 제정되지 못하고 있을까.

 

김연근 의원 외 8명의 도의원이 발의한 전북학생인권조례가 25일 직권상정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힘을 쏟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3년째 반복되는 조례안 상정과 부결로 피로도가 높은 건 사실, 그럼에도 ‘왜 다시 학생인권조례인가’를 들어봤다. [정리= 경은아 기자]

 

인터뷰어: 문주현 기자
인터뷰이: 전교조 전북지부 오동선 정책실장
              청소년인권행동 전주지부 아수나로 손종명 활동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채민 상임활동가

 

▲채민 상임활동가, 손종명 활동가, 오동선 정책실장, 문주현 기자(왼쪽부터). 오 정책실장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학생인권조례제정 시도가 3년째다. 그간 도의회에 조례안이 제출된 것만 4번, 다 퇴짜 맞았다. 심정이 어떤가.

 

채민 상임활동가 (이하 채): 단일한 조례가 수차례 부결된 경우가 있는지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황당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예산이 많이 필요한 국책사업에 준하는 정도인가. 합리적인 사유가 있어서 부결된 것인가, 부결될 수밖에 없다면 대안제시라도 있었던 것일까. 모두 아니다. 혐오에 가까운 부결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교육의원들이 스스로 자질부족을 인정하고 사퇴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인권증진과 교육발전에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손종명 활동가 (이하 손): 참담하다. 도의원에 당선되면 스펙 쌓듯이 조례 제정하는데, 학생인권조례는 저지하는 게 스펙인가 싶었다. 교육의원이 관례적으로 ‘학생인권은 중요하다’고 했던 말은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오동선 정책실장(이하 오):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다. 참정권을 얻기 위한 싸움도 그랬고, 인종차별, 장애차별, 성차별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그 싸움과정에서 기득권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했고 심지어 전쟁까지 벌였다. 이제 학생도 인권을 가진 인간이고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지 3년이 지났다. 솔직히 좀 지치기도 하지만 역사는 인권 신장 흐름으로 갈 거라 확신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계속 어긋나는 건 교육의원들이 교권침해 우려,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소송에 걸려있다는 등의 이유로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탓이 크다. 전북학생인권조례운동본부는 “교육위원회 의원들은 차라리 ‘학생에게 인권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밝혀라”고까지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렀다.

 

오: 아직도 인권을 대립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는지 몰라도 차츰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의 권리를 보완해주는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해지고 있다. 실제로 전교조 전북지부에서 도내 교원 63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교사 61%가 학생인권조례를 찬성했고 반대는 24%에 불과했다. 교사들은 오히려 교권 침해로 교과부와 도교육청의 잘못된 정책(40%), 학교장의 비민주적운영(20%)을 꼽았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채: 교육의원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인권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교육청에 의해 공포돼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의 조례무효소송은 헌법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인권 보장을 후퇴시키겠다는 위험한 발상에 기초해 있다. 교육을 발전시켜 할 교육의원이 어떻게 위헌적인 교육부 소송에 동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손: 교육의원이 학생인권조례를 부결시키면서 항상 하는 말은 ‘시급하지 않다’이다. 시기상조, 교육현장 혼란 등을 언급하면서 3년째 변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교육의원 완장을 달고 있는지 자질이 의심스럽다. 학생인권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하루 종일 말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의 외침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부정입학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중 입시비리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줄 세우기 교육, 성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채: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라는 웹툰에 ‘인권 부적 받을래? 아니면 성적인상 부적 받을래?’라고 하는 게 나온다. 게임으로 밤 세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셧다운제’(청소년은 밤 10시 이후로 게임을 할 수 없게 한 제도)로 통제하고, 야간자율학습은 권장하는 사회다. 경쟁교육을 강요하니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계속 밀집된 공간에서 있다 보면 폭력성향이 높아지고 학교폭력으로 이어진다. 인권은 모두에게 잘하는 게 있다는 의미다. 경쟁사회, 이대로 올바른 것인지. 학생인권조례가 이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

 

손: 인권과 성적 양자택일처럼 보이지만 한쪽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인권이 있으면서 배움이 있어야 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알려주지 않는다. 성적과 경쟁만 우선시 될 뿐이다. 혹 스스로 인권을 배우더라도 ‘별난 놈’, ‘사회적응 못할 놈’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만큼 학교가 폭력이 일상화되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에 길들었는지 보여준다. 학생도 인간이다. 언제까지 학생인권은 유보돼야 하는가.

 

오: 교육은 지덕체가 조화롭게 발달하는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성적이 학생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인간성 파괴나 공동체 의식 붕괴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른들의 이런 모습에서 학생들이 무얼 배우겠는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이고 방법이든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게 학교이고, 사회인가. 특히 지난 이명박 정부가 정부정책 기조를 ‘경쟁중심’으로 잡으면서 교육에도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정책이 집행됐고 현 박근혜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방식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미래는 개인주의, 자기중심적 사회로 빠르게 변할 거다. 최소한 교육에는 ‘공동체의식, 협동, 우리, 함께’ 같은 단어가 중심이 돼야 한다.

 

교총 출신 교육의원들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학생인권조례가 직권상정으로 통과되더라도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이 실현되기가 어려워 보인다.

 

손: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다고 학교에 급진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례제정은 딱 학생인권이 교문에 발을 걸치는 단계라고 본다. 뒤에서 계속 밀어줘야 한다. 학생들이 인권주체가 될 수 있도록, 싹 틔우고, 거름 주고, 관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오: 조례가 만들어지고 현장에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할 거다. 실제로 교총 중심의 교장단이 반대하고 있는 만큼 다시 보수기득권 학교장들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조례가 만들어졌다고 어느 날 갑자기 인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채: 전북교육청이 체벌금지 지침을 발표하고 전달했지만 여전히 학생체벌은 심각하다. 얼마 전 학교운영협의회 한 관계자의 SNS에 전북 모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에게 심각한 체벌을 가해 한 학생은 얼굴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었고, 다른 학생은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가 생긴다고 이런 학교 현장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폭력과 위압이 일상화된 학교에서 인권이 자리 잡는 과정은 조례 제정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배 이상으로 들지 않겠나 싶다.

 

학생인권 실현의 첫걸음이 될 학생인권조례. 앞으로 학생인권이 살아 숨쉬게 하기 위해 어떤 계획이 있을지 듣고 싶다.

 

오: 일방적으로 학칙을 만들어 학생인권을 제한했던 것부터 교사/학생/학부모가 민주적으로 학교생활규정을 만드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 또 ‘교육의 질은 교사 질을 넘지 못 한다’는 말처럼 교원의 인권의식을 높여가는 각종 연수나 교육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더불어 학생자치활동 활성화와 학생 스스로 인권을 찾아가는 좌담회, 학생회 연대사업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손: 인권조례제정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앞으로 운동이 조례를 얼마나 보장받고 풍부하게 할 수 있을지 결정지을 거다. 학교 감시활동, 인권감수성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책자 배포사업 등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김연근 의원안 지지하지만 미흡한 부분도 많다. 도교육청 발의안에서 두발, 복장의 자유 세부내용이 빠지지도 했고, 자기권리가 침해받을시 보호받을 권리, 집회의 자유를 학교장이 제안할 수 있도록 하는 항 등도 그렇다. 부족한 부분 채우고, 수정하는 작업도 하려고 한다.

 

채: 직권상정 자체가 민주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교육의원 3년간의 횡포야말로 의회정치에 대한 폭거라고 본다. 일단 수정 없이 제정되도록 본회의 때까지 최선 다할 것이다. 또 교육감이 조례 공포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학생인권교육 시행 등 현장에 조례가 안착될 수 있게 하는 계획 세우도록 압박하는 활동하려 한다. 조례가 제정되면 혼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독을 빼내는 과정이다.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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