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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한국타이어 ‘업무상’ 백혈병...“엄마를 믿어”

정재은( cmedia@cmedia.or.kr) 2011.05.19 11:08 추천:9

“우리 가족들은 용기를 갖고 있어요. 엄마가 잘 치료 받으실 거란 믿음이 있어요. 엄마가 안 좋게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 안 해요.”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금산 자택, 모친 권 모 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병원을 오가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20대 후반 K씨. 그녀는 가녀린 체구에 기운 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머니’에 대한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살아났다.


말을 못하는 엄마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1996년부터 일하던 K씨의 모친 권씨는 2010년 11월 ‘급성림프아구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한국타이어 가류공정 및 수리작업장에서 반제품 타이어 운반 및 불량타이어 수리 보조 일을 한 권씨는 근무 중 한솔 등에 유기용제에 포함된 벤젠 등으로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보고,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에 요양신청,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권씨는 삶과 죽음을 오갔다. 가족들은 골수 이식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대전의 한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권씨는 결국 서울의 한 병원에서 올해 4월 재대열 이식을 받았다.


“조그만 희망을 가지고 엄마를 서울 병원으로 모셨어요. 가족들 검사 해봐도 맞는 골수가 없었어요. 재대열 이식은 다른 수술보다 회복율이 낮다고 했어요. 의사도 수술 전 살 수 있는 확률이 50대 50이라며, 골수이식에 비해 힘들다고 했어요. 지금 백혈구 수치 올리는 주사도 계속 맞고 있고, 다 나은 게 아니라 5년 동안 재발이 없어야 정상인처럼 살 수 있데요.”

 

k씨의 꽉 쥔 두 손에서 그녀의 바램이 읽힌다. 그녀는 한국타이어가 한솔 등 유기용재를 사용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전했다.


권씨는 현재 무균실에 입원 중으로, 면회가 어렵다. 하루 한 번 한 시간씩 가능한 면회로 가족들은 위안을 삼고 있다. 하지만 권씨의 기력이 점점 쇠약해지며 전화 통화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권씨와 간단한 전화 인터뷰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전화를 했지만, 그녀는 ‘엄마 왜 그래? 힘들어? 말 못하겠어’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몇 차례나 묻다 전화를 끊었다.


“말할 기운이 아예 없고 먹는 것도 다 토하세요. 누워만 계세요. 말을 못 하니까 전화해도 1-2분 넘기기 힘들어요. 하고 싶은 말씀이 많을지 몰라도 힘이 없어서 말을 못해요.”


어머니의 건강이 제일 걱정인 그녀는 산업재해 신청 과정 등에 대해 어머니에게 다 말하지 않는다. 업무상 질병 판정 결과가 계속 늦어져 아버지와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가고, 답답한 마음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도, 이 과정이 어머니에겐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버렸다.


“엄마에게 걸러서 말씀드리지 다 말씀드리지 못해요. 그냥 결과 기다리고 있다고 하죠. 엄마가 걱정하시면 건강이 더 안 좋아지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산업재해 신청할 때 조사 때문에 인터뷰 했는데, 그때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응급실에 몇 번 실려갔어요. 그런데 결과가 안 좋게 나오고, 계속 늦어지면 엄마가 많이 아파질까봐 걱정이예요.”


숨 막히는 한국타이어 냄새


처음에는 눈물만 났지만 이젠 화가 난다는 K씨에겐 이해 못할 일들이 많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원과 모친 대리인 자격으로 금산공장 내 2차조사를 나갔을 때, K씨는 공장에 들어서자마자 고무 타는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익숙해졌겠지’ 하며 이해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K씨가 본 공장안 모습은 모친이 말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환풍기가 있어 냄새도 잘 빠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한국타이어가 계속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개선을 좀 했겠죠. 특히 (유해)물질이 무엇이며 다 안전하다는 책자를 일하는 곳에 비치했어요. 엄마가 일할 때는 그런 거 없었다고 했거든요.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말해요. 엄마는 환기가 안 돼 공장안이 연기로 가득 찼고 심지어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사람들이 일했다고 했어요.”


한솔 취급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측은 한솔은 2000년 초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 대전지역본부도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 대해 작업환경 측정을 했지만 그 결과 벤젠은 검출되지 않았고, 다른 유해물질도 검출되지 않았거나 기준치 미만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반면 권씨를 비롯해 노무사(대리인)들은 다른 의견을 냈다. 대리인들은 가류공정은 작업내용상 유기용제인 한솔 등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리인들에 의하면 권씨는 주로 생고무를 녹여 떼거나 불일 때(가류공정내에서의 불량타이어 해체작업), 기계에 묻어 이를 떼어낼 때(청소작업), 불량품을 수정할 때(가류(검사)공정 수리작업장), 옷이나 피부에 고무가 붙었을 때(개인 위생관리) 등 빨간색 한솔 저장고에 ‘뚜껑이 없는’ 고무로 된 네모난 한솔 통으로 한솔을 덜거나, 덜어 있는 한솔 통을 가류공정으로 운반할 때 수시로 한솔을 취급했다.


또 대리인들은 콧물과 침을 뱉으면 시커먼 분진가루가 섞여 나올 정도로 작업장 내 유해가스가 및 분진의 정체 등 환기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타이어 제조공장 특성상 작업장 온도가 내려가면 타이어가 굳는 문제로 작업장 내부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환기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K씨는 2차조사 당시 연구원과 주변인 진술을 받았을 때, 네 명 중 세 명이 한솔을 취급한 사실을 증언했다고 전했다. 모두 권씨과 비슷한 기간 일하고, 근무가 힘들어 그만둔 노동자들이었다. 나머지 한 명만 현재 근무하는 노동자로, 그는 일관되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단다.


또, K씨는 사내협력업체 사장이 산업재해는 ‘어떻게 신청했냐’ ‘왜 민주노총 법률원에 의뢰했냐’ 등을 묻는 것도 의아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 백혈병 발병이 드러나기 전부터,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사망사건과 직업병은 사회적 이슈였다. [출처= 금속노조]

그녀의 두 가지 바람


가족들은 권씨가 회복할 거란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한 가족의 삶은 엉망이 됐다.


그래도 가족들은 똘똘 뭉쳤다.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일상의 피곤함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경제적 고통을 겪는 아버지, 취업을 위해 공부중인 언니, 휴학 중인 남동생, 쓰러지셔서 요양 중인 할머니. 모두 권씨의 회복을 위해 나서고 있다.


K씨도 이번 사건을 경험하며 모친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남매를 키우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며 생계를 꾸려갔던 어머니의 삶을 말이다.


“엄마가 아프시니까 많은 얘기 못해도, 엄마 월급명세서 보고 놀랐어요. 3교대로 밤에도 일하는 데 적으면 110만원, 많으면 140만원 받으셨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인 줄 몰랐어요. 엄마가 그런 환경에서 일하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민주노총 소속 노무사를 만나는 일,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조사에 동행하는 일,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일... 이젠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이 모든 일이 그녀에겐 낯설기만 했다.


“솔직히 산업재해, 엄마가 아프고 나서 내가 당해보니까 복잡해요. 이건 뭐... 처음에는 산업재해 이런 것도 몰랐고, 친척 중에 산업재해를 받으신 분이 있어 그 얘길 듣고 알게 됐어요. 엄마를 위해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건,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게 됐어요. 결과도 6월에 나온다고 했다 9월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가 말이 바뀌고.”


바쁘고 낯선 일상 중 어렵게 인터뷰에 나선 이유도 어머니 때문이다. 한국타이어 회사측이 유해물질을 사용했다고 인정하는 것과 어머니의 백혈병이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는 것, 그녀의 바램은 딱 이 두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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