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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한진중 추석날 풍경, 정투위 합동차례 지내

용설록( icomn@icomn.net) 2011.09.14 11:04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채길용 지회장이 추석 이후 16일 임기 한 달 연장을 위한 총회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한진중공업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는 추석인 12일 오전 85호 크레인 맞은편 인도에서 조합원들과 가족, 지역 연대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합동차례를 지냈다.

 

추석날 85호 크레인 맞은편에 차려진 차례상.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과 가족, 지역 연대 시민들이 함께했다.

 

합동차례는 금속노조부산양산지부 서수현 수석부지부장의 축문과 함께 시작됐다. 차례상에는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철회'와 '조남호 처벌, 어용노조 타도'라는 글귀도 적혀 있었다.

서수현 수석부지부장은 축문에서 "85 크레인 동지들과 세 분의 열사와 94명의 염원을 담아 합동차례를 지낸다"며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당한 사람들의 절박한 하소연은 자본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조남호 회장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권력까지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정리해고 철회되는 날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화연결을 통해 명절임에도 한진중공업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조합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전화연결로 합동차례 인사를 하는 김진숙 지도위원.

 

"한진 현장 조합원들의 조직화가 최우선, 조금만 더 힘내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오늘 합동차례에 대구 영남대의료원 박문진 지도위원이 참석했다. 5년동안 엄청나게 투쟁하고 있고 고생도 많은 동지들이다. 우린 그나마 재능이나 영남대의료원이나 유성이나 이런 투쟁보다 훨씬 행복한 투쟁이라 생각한다. 전국에 계신 많은 분들이 한진 싸움에 진심으로 마음을 함께해주고 희망버스를 함께해주고 그런 힘들이 모여서 여기까지 왔다. 문제는 한진 현장 조합원들의 조직화가 문제다. 그것이 이 싸움을 가르는 마지막 승부수라고 생각한다. 힘드시겠지만 조금 더 힘을 내서 열심히 조합원들 만나고 함께하면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례상에 올린 음식은 전날 가족들과 조합원들이 직접 준비했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85 크레인을 찾아와 위안과 힘을 줬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도 추석 전날을 한진에서 함께했다. 정동영 의원은 가족대책위와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하며 한진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정조사가 이뤄지도록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추석 당일에도 걱정과 연대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85 크레인을 찾아왔다. 홍영표 의원이 한진중공업 이재용 사장과 직접 통화해 공장 안에 들어가려 했으나 거부당했고, 손학규 대표는 전화연결로 85 크레인과 인사를 나누며 국정조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약속했다.

몇몇 가족은 아예 추석 전전날부터 정투위 사무실에 머물며 추석을 보냈다. 가대위 A씨는 "일가친척들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고 투쟁 승리하면 그때 웃으면서 명절 쇠러 가고 싶다"며 답답한 마음을 내보였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은 대한민국 노동현실의 상징

 

영남대의료원 박문순 지도위원.

2007년 해고돼 5년째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박문진 지도위원은 합동차례에 참석해 "우리도 5년동안 긴 투쟁을 하고 있지만 한진중공업은 대한민국 노동현실을 정면으로 받아 안고 싸우고 있는 상징성이 있다. 꼭 승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에 있는 영남대의료원은 박정희가 만들었다. 1988년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다가 물러나고 2009년 6월 다시 7명의 이사 중 4명을 박근혜가 추천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박근혜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름없이 투쟁하는 비정규직 사업장의 힘든 사람들이 많다. 의료원 측의 갖은 탄압으로 조합원이 950명에서 70명으로 줄었지만 우리는 조직이 있고 상대가 있다. 박근혜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그림자투쟁 하겠다"고 밝혔다.

영남대의료원 해고 노동자들은 작년 12월부터 국회의사당 앞 투쟁을 벌이고 있고, 2011년부터 서울에 아예 방을 얻어 박근혜 의원 집 앞에서 투쟁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한진가족대책위에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크레인 중간 사수대 4명 중 한 명인 박영제 조합원의 가족들도 만날 수 있었다. 두 딸과 함께 85 크레인을 찾은 박영제 조합원의 아내 강갑례씨는 남편이 크레인에 있는데 추석 쇠러 가기도 그렇고 가장 없는 차례 지내기도 뭣하다며 평일처럼 추석 연휴를 맞이했다고 했다.

 

합동차례상을 차릴 때 크레인 위에서 내려다 보는 사수대(박영제, 박성호, 정홍형, 신동순 조합원)의 모습.

"연대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힘이 더 중요"

 

박영제 조합원의 아내 강갑례 씨는 남편의 건강를 걱정하면서 "4차 희망버스 때 TV 뉴스를 통해 한진중공업노동조합 깃발이 펄럭이는 걸 봤는데 거기 마땅히 지회장이 앞장서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화가 난다"며 "5차 희망버스가 출발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까지의 연대만도 고맙고 더 어려운 사업장에 희망버스가 가야 한다. 이제 한진은 한진 자체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아무리 연대를 많이 와도 내부 힘이 없으면 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해고생활 몇 달째냐? 더 치열하게 현 집행부(채길용 지회장)와 회사측을 상대로 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수대 박영제 조합원의 두 딸이 추석을 맞으며 아빠에게 쓴 편지.

 

박영제 조합원의 두 딸은 추석을 맞이하며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에게 편지를 써서 들고 왔다.

 

편지에는 '밥은 잘 드시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씻을 수 없어 근지럽고 찝찝하시겠어요. 밑에서 보면 손가락 한마디만 하게 보이지만 가끔 사진 찍힌 걸로 봐서 다행, 빨리 내려와서 수염도 깎고 목욕도 하고 나랑도 놀아주고...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사랑해요...'라는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1983년 입사한 박영제 조합원은 1986년 해고됐다 2006년 20년 만에 복직했지만 이번에 다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김진숙 지도위원과는 입사동기고, 1986년 노조민주화 과정에서 함께 해고됐다.

 

단식 29일째 신동순 조합원, "크레인에서 내려다 보니 김주익 지회장 심정 이해간다"

단식 29일째를 맞이하고 있는 신동순 조합원의 아내도 추석을 맞아 크레인 앞으로 왔다. 남편에게 단식 중단을 직접 호소했지만 남편에게서 단식을 멈출 의사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신동순 조합원은 "회사측이 정리해고 철회의 뜻이 없고, 현장 복귀한 조합원들도 일감도 없이 하루종일 컨테이너에 들어가 시간 때우다 가는데 정리해고 철회 투쟁에 많이 동참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는 협상만 마무리되면 현장 복귀할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노조 집행부 따로, 정투위 따로라 더 힘든 상태다. 조합원들을 보며 목숨을 버렸던 김주익 지회장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신동순 조합원은 단식 이후 몸무게가 15kg정도 줄었고 허리를 다친 적이 있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지만 회사의 입장변화가 없어 단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차례를 지낸 뒤 조합원과 가족들은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하며 한때나마 고향 친지들과 명절을 함께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달랬고, 어김없이 저녁집회가 열렸다.

 

 

저녁집회에서 김인수 정투위 부대표는 한진 상황을 설명하며 "6.27 이후 청문회 이틀 앞두고 한나라당은 '노사합의했는데 무슨 청문회냐?'며 빠져나갔다. 지금 제 2의 6.27을 또 만들려 하고 있다. 채길용 지회장이 9월 말 끝나는 임기를 한 달만 연기해 달라고 하는데 이를 반드시 저지하겠다. 국정조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투쟁하겠다. 조남호의 얕은 수를 국민들에게 다시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한진조합원들의 간절한 마음 전해져 많은 이들이 5차 희망버스 탈 수 있기를"

 

서울서 내려와 저녁집회에 참석한 A 씨는 "예전에 어느 단체에 후원하면 일상이 따라가지 않아도 입금이 연대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1차 희망버스 타고 나서 그게 얼마나 헛된 구호인지 알게 됐다. 행동이 따라가지 않는 입금은 자칫 내용없이 형식화되고 자기위안만 받을 수 있다. 자기 생활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5차 희망버스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희망버스가 이 문제도 가져가야 한다, 저 문제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너희들은 뭘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라도 한발씩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희망버스를 준비하겠다. 그러나 투쟁 당사자들이 가장 중요하다. 대신 죽어줄 수 있지만 대신 그 삶을 살아줄 수 없다.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고통스러움이 하루속히 끝났으면 좋겠고 한진 조합원들의 그 마음들이 전해져 5차 희망버스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석날 저녁집회에 참석한 여균동 영화감독과 박성미 다큐 감독.

 

라디오 생방송을 하러 정투위 사무실을 찾은 여균동 영화감독과 박성미 다큐멘터리 감독도 저녁집회에 함께했다. 여균동 감독은 "크레인에 있는 분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거 같아 미안하다. 85 크레인은 단위사업장 노동자운동을 넘어서 많은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책임져라. 미안하다. 죄송하다. 한진도 강정도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박성미 감독은 "대학생들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지 말고 현장에 다녔으면 좋겠다. 이 자리에서 대학생을 볼 수 있어 기쁘다. 한진중공업 투쟁에 엄첨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 힘을 실어줄 사람들의 힘을 알았으면 좋겠고 조합원들이 용기 잃지 않고 끝까지 당사자로서 힘든 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비해고자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한 조합원은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여기 있는 것 같다. 여기 연대 오는 분들, 해고자 동지들께 감사하며 추석인데도 집에 가지도 못하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 큰절이라도 하고 싶다. 항상 고맙다. 잊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있어 이 자리에 모인다. 희망이 있어 싸운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싸우자"고 말했다.

 

임기연장에 관한 총회 개최 여부는 14일 쯤 결정날 듯

 

한진중공업지회 채길용 지회장은 추석 전 다대포와 감만동에서 보고대회 형식의 조합원 간담회를 통해 임기 연장을 해달라는 취지의 뜻을 밝혔고,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도 16일 임기 연장을 위한 총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정투위 관계자는 밝혔다. 그는 "임기 연장이 그리 만만한 문제는 아니어서 총회 계획이 그대로 진행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정투위는 우선 연휴 기간에 현장 복귀한 조합원들이 임기 연장에 찬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한진중공업 지회장 선거는 9월 말로 예정돼 있지만 총회에서 임기 연장을 하면 지회장 선거가 미뤄질 수 있다.

 

임기 한 달 연장에 관한 이야기는 금속노조의 노사정 간담회 결렬선언 이후 '94명을 위해 1400명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채길용 지회장이 붙인 이후 9일 채길용 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부탁했던 말이다.

 

임기 연장을 위한 총회가 열릴지에 대해서는 추석 연휴가 끝난 14일 쯤 정확히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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