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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가 이토록 뜨거운 물질이었던가. 이글거리는 열기는 발바닥을 타고 올라 온 몸을 후끈거리게 만들었다. 꽁꽁 언 얼음물은 5분이 채 되기도 전에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고, 노란 티셔츠는 얼마 걷지도 않아 땀으로 흠뻑 젖어 온 몸에 달라붙는다. 그러나 강렬한 더위도, 공기 안을 가득 채운 것만 같은 습기도, 근육통과 발 곳곳에 잡힌 물집의 고통도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지난 8월3일 5박 6일간의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 마무리됐다. 7월 29일 강정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동쪽과 서쪽 두 팀으로 나누어 제주 해변도로를 따라 걸으며 한 목소리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쳤다. 문규현 신부(전주교구), 나승구 신부(서울교구), 김성환 신부(예수회) 등 10여명의 사제와 30여 명의 수도자들도 함께 행진하며 평화를 염원했다. 행진 닷새째 날인 8월 2일에는 강우일 주교, 올리버 스톤 감독 등이 동참해 힘을 보탰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도 행진에 참가했다. 400명으로 시작한 행진단은 크루즈 참가자들이 합류하면서 마지막 날에는 600명을 넘어섰다.

 

▲8월 2일 서진팀이 오후 행진을 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문양효숙 기자]

▲8월 2일 서진팀으로 함께 행진하던 문규현 신부가 지친 행진단을 격려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600명의 식사는 강정마을에서 담당했다. 마을 부녀회 회원 10여 명은 새벽 3시에 의례회관에 나와 행진단의 식사를 준비했다. 두 대의 밥차는 하루 세 번 양쪽 행진단에 식사를 배달했고 마을 지킴이들과 수도자들은 설거지를 도맡았다. 의례회관에는 오이, 참외, 쌀, 옥수수 등 전국에서 보낸 행진단 지원 식품이 여기저기 가득했다.

 

부엌불과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찬 의례회관에서 만난 부녀회장 고옥렬 씨는 “몸살 나지 않으셨냐?”는 질문에 “어떻게 안 나겠나”며 웃는다.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이 새벽 2시 반이면 나오신다. 지킴이들과 수녀님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쉼 없이 설거지를 하신다. 그분들 덕에 할 수 있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행진단도 참 대단하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날씨에 그렇게 걷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8월 3일 제주시 탑동공원에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마무리하는 범국민 문화제가 열렸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강정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무대에 오른 문정현 신부. (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 김성환 신부(왼쪽)와 나승구 신부(오른쪽)이 "강정에 평화!"를 외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이렇게 많은 이들의 염원을 담아 걸었던 행진단은 하루 20km를 걷는 강행군 속에 목적지인 제주시 탑동 광장에 도착했다. 비가 오는 속에서도 ‘강정! 생명 평화를 노래하라’ 콘서트를 즐기며 서로를 격려했다. 행진단에 제주도민까지 1000여 명이 모인 이 날 콘서트는 자전거탄풍경의 강인봉, 이한철 밴드, 강정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공연과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영상 상영, 문정현 신부와 올리버 스톤 감독의 메시지 등으로 이어졌다.

 

문 신부는 "강정평화대행진으로 그동안 침체됐던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살아나게 됐다“며 ”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해군기지를 막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9살, 7살 두 딸 이안·이선이와 함께 행진에 참가한 이민수 클레센시아 (수원교구 상현동 성당)씨는 “아이들이 잘 걸어주었다”며 대견해했다.

 

“동생 이선이가 문규현 신부님이랑 이안이가 손잡고 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더니 ‘저렇게 손잡고 가니까 우리도 가는 거지? 우리만 걸었으면 그냥 버스 탔을 텐데, 이렇게 많이 걷다니 엄청 신기하다’고 말하더라. 중간에 걷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주변 어른들한테 ’우리 왜 걸어요?‘, ’저기 경찰들이 왜 있어요?’ 하고 묻기도 하고. 대답을 들으면 ‘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작년에 이어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두 번째 참가한 열한 살 노을 군은 “힘들었는데 다 걷고 나니까 마음이 뿌듯하다”며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동진 팀으로 행진에 참가한 성가소비녀회의 한 수녀는 “권력에 똑같이 물리력으로 대응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이런 평화로운 방법이 참 좋다”며 “동참한 분들은 이미 그 방법이 뭔지 잘 알고 계신 분들 같았다. 걷는 내내 힘든 내색 하나 없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든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정이 끝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레미제라블'을 부르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행진을 마치고 탑동공원에 도착한 어린이들과 문정현 신부가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내년에도 꼭 참가할 거예요"라며 활짝 웃어보이는 행진참가단 어린이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생명평화대행진의 마무리는 다음날인 4일 낮 12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진행된 ‘2013 구럼비 인간띠 잇기’ 행사였다. 이날 행진 참가자들과 강정마을 주민 등 700여 명은 해군기지 울타리를 따라 2km에 이르는 인간띠를 만들었다. 이들은 손을 맞잡고 함성을 지르며 “강정에 평화, 해군기지 반대”를 소리높여 외쳤다.

 

인간 띠 잇기 행사에서 “간절히 염원하던 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한 문정현 신부는 "우리 손으로 해군기지를 둘러싸면 해군기지 백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사제휴=지금여기)

 

▲문정현 신부가 인간띠 잇기 행사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방파제 위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들이 손을 잡아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문규현 신부가 깃발을 들고 뛰며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인간띠 잇기 행사 참가자들이 해군기지 공사장 담벽을 에워싸고 있다.(문양효숙 기자) [출처=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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