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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황천길 가는데,
그 발길이 안 떨어지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인간답게 살고 싶었는데,
설움에 겨워 나는 못 가겠다.
술 한 잔 따르지 않고 공장 앞 철조망이 웬 말이냐
어 허 어 허 어 허 어 허”

 

현대차 아산공장 정문 앞에 선소리꾼(요령잡이)의 구슬픈 목소리가 퍼진다. 상여는 박정식 열사의 설움을 구구절절이 풀어내는 선소리꾼의 요령소리에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열사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 ‘정몽구 구속’ 등이 적힌 만장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훠이훠이 휘날렸다.

 

상복을 입은 상주들과 박정식 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자리를 메운 노동자, 시민 등은 고개 숙여 엄숙한 표정으로 박정식 열사를 맞았다. 열사의 어머니 이춘자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세상에 하나뿐인 형을 잃은 열사의 동생 박 모 씨는 종일 멍한 표정이었다.

 

상두꾼이 꽉 움켜쥔 상여는 현대차 아산공장 앞에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렸지만 결국 공장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박정식 열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공장 한 바퀴 돌겠다던 노동자들의 요구는 현대차 사측에게 무시당했다. 현대차는 10년 넘게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박정식 열사의 시신조차 공장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또한 현대차는 공장 주변을 철조망으로 둘렀고, ‘몽구산성’을 쌓았다. 공장 철조망 담벼락 안은 회사 관리자, 밖은 경찰병력이 에워싸고 있었다.

 

▲사진 총괄= 전국공무원노조 충남본부 이장희
▲[출처= 미디어충청]

열사의 시신조차 공장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은데...온 몸으로 투쟁하자”

 

‘열사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 정몽구 구속!’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열사 전국노동자장이 5일 진행됐다. 고인이 자결한 지 53일 만에 치러지는 장례식이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노조 간부였던 박정식 열사 전국노동자장은 오전 10시 온양장례식장 발인을 거쳐 오전 11시 현대차 아산공장 정문 앞 영결식, 오후 2시30분 온양온천역 광장 노제에 이어 오후 3시30분경 장지인 천안풍산공원으로 이동했다.

 

▲[출처= 미디어충청]

▲[출처= 미디어충청]

 

박정식 열사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이 장례위원장을,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과 최만정 민주노총 충남본부장 공동집행위원을, 송성훈 현대차 아산 사내하청지회장이 호상(장례책임자)을 맡았다. 영결식은 인사와 조사에 이어 임성용 시인의 조시낭독, 박준 노동가수의 조가, 이삼헌 씨의 진혼무,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앞서 박정식 열사 투쟁대책위는 금속노조 보도자료를 통해 “열사의 뜻을 담은 요구를 쟁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억울하고 분통하지만 9월 1일 대책위 회의와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과 논의하고, 9월 2일 유족의 의견을 수렴해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며 “박정식 열사의 장례를 치르더라도 열사가 살아생전 힘차게 투쟁하였던 삶을 기억하고 뜻을 받들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결식에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목숨을 끊은 최강서 열사부터 박정식 열사까지. 서른다섯 시퍼런 청춘이, 젊은 노동자가 또 세상을 등졌다. 아프다. 그리고 죄송하다”면서 “우리가, 민주노총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사이에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은 열사 정신을 계승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반드시 이뤄내고 정몽구 회장의 불법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며 “유가족에게 깊은 위로와 죄송함을 전한다. 그리고 급히 마련된 장례식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에 달려와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 가야할 길이 남았는데 이렇게 열사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타깝다”며 “이제 동지는 다른 세상에 가버렸다. 박정식 동지가 이 세상에서 목 다한 일은 남은 우리들이 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의장 정태효 목사는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이란 판결을 받았기에 비정규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으로 오늘 우리 앞에 우뚝 선 당신을 큰 목소리로 한 목소리가 되어 불러본다”며 “고 박정식 정규직노동자”라고 외쳤다.

 

▲[출처= 미디어충청]

▲[출처= 미디어충청]

▲[출처= 미디어충청]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은 “박정식 동지의 유서를 볼 때 가슴이 떨려 몇 번에 걸쳐 보고 또 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쓴 유서 보고 얼마나 고통스러워했고 번뇌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실수가 가져올 동지의 분열, 자본의 탄압을 예견할 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해야 할 지 많이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며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유서에서 꿈과 희망을 끈을 놓지 말라고 힘주어 남겼다”고 강조했다.

 

송성훈 아산 사내하청지회장은 “투쟁할 때는 몰랐는데 장례를 치르기 위해 준비하면서 마음이 많이 착잡했다. 열사는 생전에 나 혼자 잘 되자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면서 “반드시 최선을 다해 투쟁해 마지막에 열사와 함께 웃을 수 있도록 하겠다. 유가족에게 이 자리에서 약속드린다”고 전했다.

 

열사의 어머니 이춘자 씨는 “내 마음이 착잡하다. 우리가 바라던 정몽구 회장의 사죄를 받지 못해 마음이 안 좋다”며 “그래도 정식이는 죽지 않았다. 우리 마음에 살아있다. 여러분이 지금보다 더 힘 있고 강하게 투쟁해서 정몽구 회장이 사죄하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영결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아산시청에서 온양온천역으로 1시간가량 행진하며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아산시민에게 호소했다. 이어 오후 2시 30분경 온양온천역 광장 앞에서 지민주 노동가수의 추모의 노래로 노제가 시작됐다.

 

노제에서 최만정 민주노총 충남본부장은 “현대자본이 대법 판결을 짓밟고 박정식 동지를 죽이는 순간까지 우리는 당신의 저항과 투쟁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비겁자였다”면서 “이제 박정식 열사가 꿈과 희망을 이루라고 명령한 길을 가고자 지치지 않는 연대투쟁으로 비정규직 철폐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쟁취의 날까지 온몸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출처= 미디어충청]

▲[출처= 미디어충청]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임성용 시인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누가 날더러 죽었다고 이야기합니까
한여름 그 무더운 7월의 뙤약볕 아래
서른다섯 청춘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아 나는 살아있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내가 살아왔는지
얼마나 뜨거운 분노의 거리를 내가 달려왔는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파업의 현장에서 노숙농성장 보도블럭에서
여전히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단단한 주먹으로 서 있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50일이 넘게 꽁꽁 얼어붙은 냉동고에서
나는 이렇게 나의 두발로 걸어 나왔습니다
나는 죽이고자 눈을 부릅뜬 자들 앞에서
내가 죽었다고 하지 마세요
나보다 먼저 죽어간 친구들 앞에서 
내 영정을 놓고 한송이 꽃을 바치지 마세요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나온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 10년의 길입니다
대법원 판결이행 정몽구 구소의 길입니다
저 끝없는 광야의 시간이 멎은 길
빛나는 태양이 가리키는 대지의 길
내가 가혹하게 사랑했던 노동자의 길입니다

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한 눈물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죽어도 결코 이대로는 죽을 수 없는 나는
환한 내 웃음이 머물던 자리
정의와 승리가 피를 흘린 자리
그 자리를 내 목숨으로 영원히 지킬 것입니다

 

박정식 열사 약력

1979년 4월 22일 충북 음성 출생(35세)
2004년 8월 25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엔진부 근부 시작
2010년 8월 노동조합 가입
2011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 선전부장
2012년~ 사내하청지회 사무장(현)
2013년 7월 15일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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