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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편집자 주> 오는 4월부터는 매주 수요일, 참소리에서 기획한 취재기사와 칼럼, 인터뷰 기사 등 다양한 기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평일에는 속보와 단신으로 참소리가 꾸며집니다. 봄맞이 개편 기대해주세요. 

 

“내 나이 57세다. ‘착복’은 정치인들에게나 쓰고 통하는 단어인 줄 알았다. 그리고 억 단위의 돈에만 쓰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단협 조항에 있다고 해서 3,100원을 입금하지 못한 것을 착복했다고 볼 수 있나”

 

지난 지난 3월 18일, 전북고속 천막에서 만난 김용진 씨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이 말부터 꺼냈다. 지난 1월 2일 3,100원을 입금하지 못한 사실이 발견되면서 2월 5일 해고통보를 받은 김용진 씨는 지금도 ‘착복’이라는 단어가 자신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에 몸서리를 친다.

 

▲30년 이상 전북고속에서 몸 담은 김용진 씨. 황당하게 해고를 당했지만 표정만은 밝다.

 

김용진 씨에게 해고 통보를 한 전북고속은 김 씨에게 직장 이상의 회사였다. 지난 1972년 승무원 조수로 입사하여 지금까지 40여 년을 전북고속에 몸 담고 있는 김 씨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도 회사를 버리지 않았다.

 

“97년 IMF가 찾았을 때 나에게도 1,600만 원정도의 체불임금이 있었다. 당시 약삭빠른 사람들은 퇴직하고 퇴직금을 정산해서 나갔지만, 장기근속자들은 회사 살려보겠다고 봉급이 잘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버텼다.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나중에 회사가 정상화 돼서 분할로 받았지만, 그 사람들 중에는 불명예로 관둔 사람도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노동자는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 97~98년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의 시기였다. 곳곳에서 정리해고와 정년 감축, 임금체불이 발생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짊어졌다. 전북고속도 당시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감차와 감원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노동자의 희생이 없었다면 회생은 불가능했다. 당시 김 씨가 그 고통을 받아들인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리 아버님이 전북고속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40년대부터 함께했다. 그리고 나도 주주로도 생활을 했다. 어릴 적부터 전북고속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고, 황의종 사장이 과장으로 재작하던 시절부터 입사해 함께하며 어려운 위기도 넘겼는데, 어떻게 나를 ‘착복’으로 해고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지난 1920년 ‘전북자동차상회’로 시작한 전북고속(주)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버스회사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처음 5대로 시작한 전북고속은 90년이 지난 현재 293대 00노선과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운영하는 전북의 대표적인 운수회사가 되었다. 지금도 전북지역 곳곳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전북고속 버스를 접할 수 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남에게 절대 못 박는 일은 하지 말고 베풀어라”

 

94년 전통의 버스회사, 김용진 씨에게 전북고속은 아버지의 땀이 묻어 있는 회사다. 그리고 3,100원 착복 혐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는 지난 2월 15일 재심 신청을 했다. 하지만 재심 징계위는 3월 5일 오전 김용진 씨의 해고를 확정했다.

 

▲천 원짜리 3장. 김용진 씨의 실수를 과연 착복으로 볼 수 있을까?

 

단체협약도 보호해주지 못하는 버스노동자의 현실

 

이번 일의 표면적인 쟁점은 과연 김용진 씨가 1월 2일 현금승객에게 받은 돈을 의도적으로 ‘착복’했는지 여부다. 김 씨는 “현금수납통만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결코 의도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버스에 CCTV가 모두 4대가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과연 그 돈을 훔치려는 마음을 누가 먹겠나. 현금수납통도 없는 상황에서 나와 같은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과 같은 일은 시외버스 회사에서 종종 벌어진다. 전북고속에서도 지난 2년 간, 두 차례 벌어진 바 있다. 회사에 따르면, 이들도 모두 해고나 퇴사 처리되었다.

 

“현금수납통이 없기 때문에 벽지노선을 뛰는 버스기사들은 현금 계산을 할 때가 많다. 지금이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벽지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버스기사들과의 현금 계산을 동네 장터 거래처럼 덤을 주고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어르신에게 3,100원 내라고 말을 하면, 내 손을 꼭 쥐고는 ‘내가 100원이 없네’하며 타신다. 그 어르신에게는 100원을 깍는 재미가 있는 것. 그러면 기사가 그냥 넘어가면 통과하고, 기사가 안된다라고 하면 속치마에서 잔돈을 꺼내 준다.”

 

현금수납통과 잔돈이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골에서 버스기사들이 겪는 흔한 일이라는 김 씨의 말에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전북고속 관계자는 지난 2월 초 기자와의 만남에서 현금수납통과 관련하여 “구간별 요금이 다 다른 상황에서 현금수납통을 시내버스처럼 설치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은 이야기”라면서 “시외버스 중에 현금수납통을 달고 있는 회사가 어딨냐”고 말했다.

 

▲김용진 씨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동료들이 서명한 탄원서.

 

회사는 김용진 씨를 해고하면서 내건 이유는 단협조항 위반이다. 한국노총 전북고속노조와 회사가 맺은 단체협약에는 해고사유로 “회사는 조합원이 회사의 재산을 횡령 또는 운송수입금을 부정 착복한 증거가 확실한 자는 노조지부와 협의없이 해고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렇게 무서운 조항이 있는 줄 민주노총 가입하기 전까지는 몰랐다”며 김 씨는 이 조항이 버스기사들에게는 살인적이라는 표현을 했다.

 

황태훈 민주노총 전북고속분회 상황실장도 “깔끔하게 우리가 돈을 손으로 만질 수 없도록 해주면 되지 않나”며 “김용진 씨의 일은 한 마디로 도둑놈을 회사가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노총 전북고속분회는 한국노총 전북고속노조에 비해 소수노조이다. 그러나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절차가 적용되는 지난 2011년 7월 전부터 단체교섭을 요구해온 터라 교섭지위는 가지고 있다. 법원으로부터도 ‘단체교섭응낙가처분’을 받아놓은 상태. 하지만 전북고속과 단체교섭은 2년 넘게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다.

 

▲김용진 씨가 매일 입는 조끼. 그는 후배들의 권리를 위해 함께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는 든든한 맡형 노릇을 하고 있다.
 

 

정태영 민주버스본부 전북지부 사무국장은 “버스노동자들에 대한 황당한 징계는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 “시내버스 한 노동자는 해고되었다가 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절차를 밟아서 다시 해고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풀어보려고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지만, 알다시피 지난 투쟁이 워낙 힘겨웠고 사측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단체협약을 통해 다 풀지는 못했다”면서 “회사가 작심하고 해고하는 경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현재 한국사회에는 없다. 노동부도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버스회사의 황당징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현재는 없다는 것. 정 사무국장도 씁쓸하게 웃으며 “싸우는 수밖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용진 씨 동료가 보낸 문자. 그는 김 씨의 해고를 '표적해고'로 보았다.

 

한편, 김용진 씨 주변 지인들은 해고 소식을 접하자 하나같이 “민주노총에 가입해서 회사에서 해고한 것”이라고 김 씨를 위로하며 한마디씩 했다. 이에 대해 전북고속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김 씨는 현재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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