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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절망의 85호 크레인 농성돌입

김용욱( newscham@newscham.net) 2011.01.06 18:02 추천:1

6일(목) 새벽 5시 40분께 86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되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홀로 35m 높이의 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에 돌입한 85호 크레인은 2003년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 중단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당시 노조 지회장이던 故(고) 김주익 전 지회장이 129일 동안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매고 자결한 크레인이다.


▲출처: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 노사는 1월 5일(수) 오후 5시 30분부터 두시간동안 정리해고 문제를 두고 2차 노사 협의를 진행했으나 특별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쪽은 ‘희망퇴직을 추가로 받을 것이다’는 뜻을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6일 새벽 5시 40분께 황이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에게 “책상위에 편지글이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편지글에서 ‘지난(해)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다“며 ”그런데 또 400명을 자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잘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런 한진중공업 상황은 2003년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주익 전 지회장이 자결한 상황과도 비슷하다. 당시 김주익 전 지회장은 유서에서 "1년 당기 순이익의 1.5배·2.5배를 주주들에게 배상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원 정도의 배상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천5백억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이때도 한진중공업은 전년도 매출목표를 초과해 수백억 원의 흑자를 냈고 노조 탄압이 극심했던 2003년에도 2월말을 기준으로 1년 치 목표량이었던 9억 달러를 훨씬 초과한 12억 달러 어치의 수주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사쪽은 임금단체협상에서 계속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노조에 적극적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교육명령을 내리고 무급휴가 사용을 강요하는 등 노조탄압 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다.

또 노조간부 구속, 징계, 손해배상청구·가압류, 교섭회피까지 악랄한 노조탄압정책으로도 사회적 문제까지 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 김주익 지회장은 사측과 임단협이 해결될 때까지 129일동안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해오다 자결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했었다.


고 김주익 전 지회장과 함께 노동운동을 했고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번민이 컸다”고 했다. 김 지도위원은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한진중공업에서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 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라며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85호 크레인 농성돌입 심정을 밝혔다.


▲출처: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소식을 전해들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는 현장에 노조간부들을 긴급히 배치했다. 또 금속노조, 민주노총 부산본부, 한진중공업 지회 등은 긴급히 회의를 열어 김진숙 지도위원의 안전과 정리해고 철회투쟁 방향을 두고 논의하고 있다. 노조는 이날 오전 11시 85호 크레인 아래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조합원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1년 7월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원에서 3개월동안 용접교육을 받고 1981년 10월 1일 대한조선공사에 정식 입사해 선대조립과에서 용접을 했다. 김 지도위원은 86년 7월 노조대의원 활동을 하다가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등의 이유로 해고된 후 25년동안 해고 상태다. 김 지도위원은 해고된 이후에도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 왔으며, 현재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기 전에 쓴 편지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 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 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사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 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해)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또 400명을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된 시간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물한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 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살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씨는... 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거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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