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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에 입사한 택배기사가 첫 월급을 이듬 해 2월 20일에서야 받았다고 하는데...”

 

5월 14일 늦은 오후 CJ대한통운 홍보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관계자는 “네?”라는 말과 함께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그제야 관계자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유는 이렇다. CJ대한통운에는 정직원 택배기사와 우리가 흔히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는 택배기사가 있다. 관계자는 기자의 질문이 정직원 택배기사의 임금체불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당황스러워 한 것.
 
특수고용노동자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과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개인사업자의 지위로 계약을 맺는다. 이 같은 계약은 택배업계에서 흔한 일. 이들 특수고용노동자 택배기사가 한 달에 한 번 받는 돈은 ‘월급’, ‘급여’가 아닌 ‘배달수익’, ‘수수료’로 불린다. 당연히 이들의 4대 보험은 자신들의 책임이다. 이들은 대한통운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대한통운 로고가 그려진 탑차를 타고 대한통운에 의뢰한 물품을 배송하지만, 이들을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로 불리는 것이 이 나라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

 

“내 첫 급여는 3개월이 지난 2월 20일에 받았다. 그 것도 10일치” 

 

기자가 CJ대한통운 홍보팀에 문의한 사연은 5월 2일 전주에서 노조에 가입한 정은진(가명, 36) 씨의 사연이다.

 

정 씨는 지난 2012년 11월 20일부터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배달수익’을 받은 것은 2013년 2월 20일. 무려 3개월이 지난 후에서야 노동에 대한 값진 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정 씨는 “2월 20일에 받은 것도 11월 2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일한 10일치였다”며 “2월 20일까지 일만하고 돈을 못 받아 생계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정 씨가 ‘배달수익’을 이렇게 늦게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동료 기사들은 “매달 15일에 보통 임금(이들과의 대화에서 ‘배달수익’, ‘임금’, ‘월급’, ‘수수료’ 등 다양한 단어가 CJ대한통운으로부터 입금되는 돈에 대해 사용되었다.)을 받는데, 이 임금은 보통 45일 전에 배달한 수수료를 정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와 같은 일이 독특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정 씨가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을 하기 위해 드는 초기 비용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정 씨는 “우선 용차(약 2,000만원)를 구입해야 하고, 차 보험료(약 100만원)를 내야한다. 그리고 스마트폰(약 20만원)을 사야하고 송장을 스캔할 때 쓰는 장비를 (약 35만원)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통운 마크가 있는 유니폼(동·하복 5만원)과 용차 도색비용(50) 등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정 씨의 말대로라면 대략 2,200만원의 초기 비용을 투자해야 비로서 택배기사로 일할 수 있다.

 

정 씨는 “사실 한·두 달 일하면 임금이 나오는 줄 알고 들어갔다. 그런데 3개월 후에 임금을 받았을 때는 살기 힘들었다”며 “힘도 힘이지만, 돈도 안 나오고 하니까 일에 재미를 붙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동료들은 이 3개월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보통 못 버티고 많이들 그만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결국, 14일 기자가 만난 택배노동자들은 이 3개월을 버텨낸 이들이었다.

 

“45일 후에 수수료 입금해주는 관행, 정산으로 불가피했던 일”
“정 씨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일”

 

무려 3달이 지나고서야 받을 수 있었던 임금. 홍보팀 관계자는 “정 씨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홍보팀 관계자와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택배기사들은 이전 달에 배달하여 발생한 수수료를 약 45일 후에 받는다. 홍보팀 관계자는 “다른 택배회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면서 “택배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고 배송지연 등이 생기면서 정산을 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가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고 보다 앞당겨 정산하여 지급하는 것은 협의를 통해 검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CJ대한통운택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 택배기사들의 한 달 고정수입은 그때 그때 다르지만, 대략 180만원 수준이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 당 4,400원 수준. 2013년 최저임금 4,860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김종학 CJ대한통운  전주분회장도 “차량 주유비, 송장번호를 적는 종이도 우리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면서 “식비와 세금을 포함하면 배달 건수에 따라 택배기사들은 180만원에서 230만원정도 받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장시간 노동에 비해 박한 임금이라고 설명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3월 배송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임금

 

“특수고용노동자라 어디 하소연도 할 수 없어”
정부, 특별법 보호 VS 노동계, 노동자성 인정해야 “특별법은 특고 양산 우려”

 

그렇다면 정 씨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이장우 소장은 “노동법을 적용한다면 정 씨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회사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전제하며 “노동법 상 규정은 없지만 그 달치 임금은 2개월 이내 지급해야 한다. 법에서는 이를 넘어가면 체불로 보는 것이 관례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씨의 사례에 대해서는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면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로 인정되면 보호라도 받을 수 있는데 완전 사각지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택배업계는 갑·을 관계가 명확하고 노동법으로 보호도 못 받고 있다”며 “이런 전근대적인 노무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대부분 대기업이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종학 CJ대한통운 전주분회장은 “최근 파업을 하고 다른 지역 택배노동자들과 교류를 가지고서야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아마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지 않았다면 계속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노동계는 ‘노동자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차별과 특수고용노동자 양산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올 초,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용노동부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권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런 추세를 감안하여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법안에는 근로기준을 마련하고 사회보험 보장과 권익을 보호하고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구제하는 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마련하려는 법안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 형태로 일부 개선을 하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노동계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가 개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를 위한 입법·정책적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노조가 아닌 단체를 조직할 권리만 보장하고 있다”면서 “법문상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명시하는 직접적인 보호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기존의 다른 노동자들마저 ‘간주근로자’로 전락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기준과 처우에 대해 논란이 있는 가운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형편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국민권익위는 노동계에 정 씨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가 노동계에 약 39개 직종에 약 250만 명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0%가 넘는 수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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