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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청문회 신상털기와 프라이버시"

[화요일의 참소리] "장관 후보자 사퇴를 부른 과거 판결문 공개 논란에 대해"

오길영(신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jbchamsori@gmail.com) 2017.07.11 19:35

최근 장관후보에 오른 유력인사는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한 채 온 나라에 자신의 인생 전반의 스토리를 공개당하고 말았다. 처음이야 장관으로서의 적격여부를 살피기 위한 일이었겠으나, 뜨거운 감자였던 판결자료가 공개되면서부터는 그 논의의 중심이 점차 ‘신상털기’로 변모해 갔다. 연일 뜨거운 논쟁이 이어져 갔고 결국 그는 이 ‘사태’를 ‘사퇴’로 매듭지었다. 그러자 모두들,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이번에는 또 다른 후보자의 ‘신상털기’로 관심을 옮겨간다. 그렇게 열심히 털어대던 이야기가 사퇴와 동시에 ‘공중분해’되어, 다시금 언급하고자하는 언론도 국회도 없어져 버렸다.

"후보자 정보 공개 앞에 여러 물음표들" 


그렇다. 이런 방식이 우리네 ‘신상털기’의 전형이다. 필요에 의해 털 때는 혹독하게 털어도 아무런 제한이 없고, 털 이유가 없어지면 밑도 끝도 없이 바로 폐기처분해버리는 식이다. 그 이후의 뒤처리에 대하여 책임을 지거나 매듭을 짓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누군가에 대해 수집하는 정보들은 대체로 ‘약점’들이어야 하고, 수집의 목적은 주로 효과적인 ‘치명상’을 입히기 위함인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 중에 ‘생채기’를 내고 심적 고통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이 모든 것들이 ‘탈탈’ 털린 당사자가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 사건과 함께 청문회로 요란한 요즘, 정보의 활용과 관련한 우리네 행태에 대하여 한번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정보를 이러한 용도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왜 정보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것일까? 언젠가 누군가에게 혹독하게 털리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리고 공적 사용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내밀한 정보를 만방에 공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공익이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합리화해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주체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 중지를 요청하거나 공개의 수준을 제한해볼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인가? 나아가 수집과정에서의 적법여부와 공개 자체의 법적 권한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물음은 이러하다. “이는 어쨌건 프라이버시 아닌가?” “개인정보는 법률로 보호된다는데,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되는가?” 상식적인 질문일 수 있겠으나, 사실 이에 대한 답변은 결코 쉽지 않다. 아마도 많은 법학자들조차 어리둥절할 질문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프라이버시를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수단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헌법은 분명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고 있다.(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손발이 되는 구체적인 법적 수단은 아직도 미비의 상태인 것이다. 즉 ‘빛 좋은 개살구’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이러하다.

“개인정보는 어쩌면 제대로 보호될 수도 있겠으나, 프라이버시를 직접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개인정보가 프라이버시이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뒤를 잇는다. 즉 개인정보를 보호하면 프라이버시도 보호되지 않는가? 다들 그럴 것이라고 헷갈리기도 하겠으나,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정보가 프라이버시의 일부분일 수는 있으나, 개인정보가 프라이버시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정보를 보호하면 프라이버시의 일부를 보호해 볼 수는 있겠으나, 그 전부를 보호해 낼 여지는 없다. 요컨대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는 서로 관련이 있으나, 이 양자는 사실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혼돈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겠다.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판결문을 한번 생각해 보자. 재판과 판결문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헌법 제109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그렇지 않으면 밀실재판이 되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공개재판주의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판결문이 공개되면, 결국 처벌을 받는 당사자의 성명과 비행의 내용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즉 공개재판주의라는 헌법원칙 때문에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한다는 또 다른 헌법원리가 침해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판결문을 공개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비실명처리를 한다(재판기록열람복사규칙 제7조 제3항 및 제4항 제5호). 즉 성명을 ‘ooo’이나 ‘A’ 또는 ‘갑’ 등으로 표시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공개재판주의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주요내용을 담고 있는 ‘사실관계’ 부분은 그 성질상 비실명처리가 불가능하다. 또한 사실관계까지 지워버린다면 판결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므로 판결문 자체의 의미가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결국 비행의 내용을 담고 있는 사실관계는 그대로 전달되어야 하므로, 개인정보를 ‘ooo’으로 처리하는 비실명조치를 통해 프라이버시의 침해까지 막아낼 수는 없다. 이렇듯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는 적잖이 다르고, 그 보호의 방법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장관 후보자의 판결문 조회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
국회에서 특정인의 판결문을 조회하면서 시작된 금번의 사건은, 처음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특정인을 지정하여 조회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이 비실명조치를 했는가를 둘러싸고 다소의 잡음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웃긴 일인가? 특정인을 조회한 경우에 대하여 그의 성명을 ‘ooo’으로 표시해서 오면 비로소 개인정보가 보호되는가? 이렇듯 이번 ‘신상털기’ 사건의 본질은,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가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인 것이다.  


프라이버시의 보호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그 논의의 수준에 있어 전반적으로 미완의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번 판결문 공개의 경우에도 그러하지만, 언론과 SNS를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만약 비실명 또는 익명처리가 된 상태로 내용이 공개되는 경우라면, 당사자를 알 수 없으니 누군가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어도 그만인 것인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다. 몇몇 관심 있는 실력자들이 온라인상의 정보들을 조합하면 ‘ooo'이 금방 실명으로 전환되기 때문에(재식별의 문제), 비실명 또는 익명처리 자체도 한계가 있다. 이 또한 문제이다.


지금의 시대에 있어 정보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는 새로운 자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블루오션으로 각광을 받아온 지도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진행해온 고전적 의미의 정보수집이란 워낙에 푸른 빛 만은 아니었다. 주로 누군가의 약점을 캐내기 위해 비밀스레 수집한 것들을 ‘정보’라고 불러왔다.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고전적 의미의 ‘정보 활용’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동시에, 새로운 정보의 시대를 개척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서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단순히 정보의 활용과 효율만이 아니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의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많은 질문들을 개인정보보호가 아니라 프라이버시의 보호에 관하여 질문한다면 그 누구도 반듯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신상털기’에 익숙해져 있고, 이를 통해 상처받는 이들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 왔다. 이제는 이에 대한 원칙을 정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필요에 의해 털 때 털더라도, 나름의 정도와 수준을 정하고 준수하는 것. 그리고 그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하여 누군가의 생채기를 최대한 줄여가는 것, 이러한 논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길영 교수는 정보통신법 분야를 전공하고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법학자이다. 또한 자동차 매니아로서, 자동차와 관련된 시민사회 운동을 병행하고도 있다. 한편 목가적인 삶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직접 나무를 자르고 망치를 치는 ‘DIY’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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