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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큰빗이끼벌레 논란, 진보매체의 외모지상주의인가?

[기고] 4대강 공포마케팅의 희생양 큰빗이끼벌레

김무진(뉴스민)( newsmin@newsmin.co.kr) 2014.07.10 09:58

큰빗이끼벌레와 관련해 오마이뉴스의 보도 (2014. 6.18.[금강에 창궐한 흉측한 벌레... 어떻게 해야 하나]) 이후 각종 매체들은 재앙과 다를 바 없는 보도를 연일 쏟아냈다. 제목에는 ‘흉측한’, ‘괴이한’, ‘끔찍한’, ‘괴상한’ 등 혐오의 의미를 담은 수식어가 붙었고 ‘외계생명체’라는 비유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큰빗이끼벌레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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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centre-cerlatez.ch/


이렇게 생겼다. ‘흉측하고 괴이하고 끔찍하고 괴상한 외계생명체’ 같은 모습은 아니라고 필자의 사견을 달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긴 큰빗이끼벌레들은 다른 이끼벌레들처럼 군집을 이룬다. 다른 이끼벌레들이 돌이나 나무 같은 기질에 붙어 군체를 이루는 것과 달리 큰빗이끼벌레는 물을 기질 삼아 젤라틴을 배출하여 자기들끼리 뭉친다. 이렇게 뭉친 ‘군체’가 언론을 통해서 흔히 보는 큰빗이끼벌레다. 물론 잘못된 표현이다. ‘큰빗이끼벌레 군체’다. 물을 기질 삼아 뭉쳐있기 때문에 큰빗이끼벌레 군체는 99% 이상 물로 되어있다. 반올림하면 물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물 덩어리라고 하지만 특이하게 생겼다. 그래서 수식이 붙는다. 무언가 해로울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고과정이다. 그런 사고과정에 입각한 보도행태가 진보매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형적인 기사형식은 이런 것이다. 큰빗이끼벌레에 부정적인 수식어를 붙인 제목 아래 4대강에서 발견된 큰빗이끼벌레 군체의 사진이나 환경단체 관련자들이 군체를 들고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다. 기사 내용 중에는 사실이라면 노벨상감일 만큼 과학 상식을 뒤집는 내용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있는데, 사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사진이 워낙 압도적이니까.


그럼 하나씩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일단 사람들은 군체의 생김새에 불안감부터 느낀다. 생긴 게 흉측하니까 성질도 흉측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탓할 게 못 된다. 이질적인 외형에 공포를 느끼고 회피하는 것이 인류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화해온 탓이다. 하지만 소위 ‘언론’이라면 실제로 성질이 흉측한지 즉 독성이 있는지, 혹은 수질에 악영향을 끼치는지부터 먼저 확인하는 게 순서다. 순서대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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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낙동강 일대에서 발견된 큰빗이끼벌레. [출처=대구환경운동연합]


군체가 아무리 물 덩어리에 불과하더라도 그 안에 아주 미세하게 들어있는 큰빗이끼벌레가 테트로도톡신같이 소량으로도 치명적인 독성이 있거나 유기용매나 중금속처럼 축적되는 독성이 있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런 독성은 없다고 한다. 독성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았으나 위험성은 있다고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독성이 알려지지 않은 유기화학재제에 의한 산업재해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추정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며칠 전 큰빗이끼벌레 군체를 먹어보았다는 어느 진보매체의 기자 외에는 다른 증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해당 기자가 실제로 큰빗이끼벌레 군체를 먹었을 때 급성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군체의 99% 이상은 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독성에 의해서 급성 증상이 일어났을 가능성보다는 군체의 기질이 되는 강물 자체가 부영양화로 부패하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4대강이 부패했다는 주장에도 이러한 설명이 더 부합한다.


‘물이 부패했다’는 말도 조금 더 정확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미생물이 대사를 하면서 산물을 내는 과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개 있는 데 하나가 ‘발효’고, 다른 하나가 ‘부패’다. 같은 대사과정을 거치더라도 대사산물이 인간에게 이로우면 ‘발효’라고 하고 해로우면 ‘부패’라고 한다. 그런데 물은 미생물이 아니므로 부패할 수 없다. 물이 부패했다는 말은 일종의 은유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수질을 이야기할 때는 부패냐 아니냐로 이야기하지 않고 지표로 이야기한다. 수질의 대표적인 지표는 중학교 때 배우는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다.


큰빗이끼벌레는 이끼가 이름에 들어있어서 광합성을 할 것 같지만 사실 수중 유기물에서 에너지를 얻는 종속영양생물이다. 수중 유기물은 BOD를 높인다. BOD가 높아지면 물은 일급수에서 오급수까지 급수가 올라간다. 그래서 물의 급수가 올라갈수록 수질이 안 좋은 것으로, 급수가 내려가면 수질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큰빗이끼벌레가 많아지면 수중 유기물을 많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BOD가 내려갈 수 있다. ‘사실은 물을 맑게 하는 동물’이라는 보수진영의 주장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수중 유기물이 적어지면 물의 탁도가 개선되어 태양광의 투과도가 높아진다. 광합성을 하는 독립영양생물이 번성할 기회가 된다. 독립영양생물 중 요즘 ‘핫’한 것이 녹조다. 녹조와 같은 조류는 광합성의 산물로 번창하며 유기물을 생성한다. 다시 BOD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을 ‘부영양화’라고 한다. 세상에는 밥만 먹는 사람도 없고 배변만 하는 사람도 없듯, ‘사실은 물을 맑게 하는 동물’이라는 주장도 생태 순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이야기다.


이러한 순환 과정에서 알 수 있듯 큰빗이끼벌레에게는 BOD가 높은, 그러니까 수질이 나쁜 환경이 뷔페 정도 된다. 인지상정이라고 사람도 뷔페가 공짜라면 와글와글 몰리는 것처럼 유기물이 많아지면 큰빗이끼벌레도 많아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짜뷔페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사고도 나고 음식이 금방 동나서 사람들이 발길을 끊듯, 큰빗이끼벌레도 수질이 최저등급인 곳에서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따라서 수질의 지표생물이 될 수 없고, 수질의 악화를 표지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일부 매체에서는 큰빗이끼벌레 군체의 사진을 붙여두고 혐오스러운 이 생명체가 수질을 오염시킨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한다. 이건 큰빗이끼벌레 입장에서는 민형사 고소를 매우 심각하게 고려할 상황이다. 이는 인과관계를 뒤집어 기사를 작성한 것이며 ‘ㄱ’과 ‘ㄴ’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이므로 단연 최악의 보도행태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여기서 ‘수질오염’이란 BOD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큰빗이끼벌레가 생성하는 암모니아에 의한 오염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종속영양생물은 단백질 대사를 한다. 단백질 대사 산물 중에는 암모니아가 포함되어 있다. 큰빗이끼벌레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속영양생물은 양의 차이가 있을 뿐 암모니아를 배출한다.


마지막으로, 번성하지 않았던 종이 번성했으므로 4대강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는 주장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큰빗이끼벌레는 1990년대부터 국내에서 모니터링이 시작되었으며 199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95년 4월 3일 <동아일보>에서는 [경기지방 저수지 등에 "이상한 생물체" 태형동물 출현]라는 제하의 기사에 ‘ 20~60cm 크기의 이 생물체는 문어머리 모양의 흉칙한 모습으로 물가에 둥둥떠다니곤 한다’고 묘사를 한다. 이어서 ‘태형동물은 수온이 높아지는 봄철에 발아해 성체가 되므로 지난해 이상고온현상이 태형동물의 증식에 유리한 조건이 됐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2013년 평균기온이 40년만의 최고치로 1994년의 기록을 갱신한 고온이었다는 점은 상기해볼만 하다.


또한, 1995년 12월 26일 <한겨레>에서는 ['큰이끼벌레' 미국산 외래종 확인 한강-금강수계 등 전국 곳곳 확산]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당해 여름 나타났던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큰이끼벌레가 1~3급수 수역에 두루 분포하고 있으며 수질오염이 심한 곳에서는 죽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나 수질오염으로 인해 새로 출현한 생물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당시의 연구가 부실했다고 해도 최소한 큰빗이끼벌레의 전국적 출현이 올해가 처음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4대강 사업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기 위한 공포마케팅의 일환으로 진보매체들이 큰빗이끼벌레 군체의 외형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큰빗이끼벌레에서 4대강 사업의 폐해 간에는 큰 장애물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 외형을 묘사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이 생명체의 성질과 전혀 다른 선입관을 뚜렷이 주입시키는 수사들을 남발한 것은 분명 도를 넘은 일이다. 이렇게 비판적 사유를 배제한 채 자극적인 기사를 남발하며 주장의 선명성을 제시하려는 구태는 논리와 사실관계야 어쨌든 주장을 전파하는 것이 운동의 금과옥조라고 여기는 편의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초만 검색해도 상세한 설명과 각종 저널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이런 선전전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빈곤한 상상력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조급함이나 증오가 원칙을 바수어서 외곬의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은 좌나 우, 보수나 진보 중 어느 한쪽에만 특이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대중의 공감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진보매체가 가진 방향성이라면 큰빗이끼벌레와 관련된 일련의 지적들에 대해서는 분명 여러 번 되새김질을 해보아야 한다.


다윈 이후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고 불리는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명체는 그 자체로 죄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명제를 무시하면서 환경을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 이 글은 뉴스민에 기고되었습니다.


[참고]

http://www.bryozoans.nl/soorten/en/pectinatella_magnifica.html

http://eol.org/pages/601031/details

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0/11/10110114251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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